새롭다는 게 혁신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혁신을 위해선 반드시 새로움이 필요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뜻이다. 앞선 기술도 마찬가지다. 혁신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게 있다고 꼭 성공하는 건 아니다. 제품 혁신은 이들 요소가 적절히 버무려져 소비자가 절로 고개를 끄덕일 만할 정도로 전혀 다른 쓰임새를 찾아낼 때 성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소비자를 감동시킬 설득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아이폰 이전과 이후 폰의 쓰임새가 완전히 달라진 게 대표적이다. 아이폰은 이미 여러 사업자가 앞서 내놓은 아이디어와 기술을 모아 대중적으로 구현한 첫 스마트폰이다. 아이폰 이전에도 폰을 스마트하게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쓰임새를 총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일부분만 시현함으로써 소비자 마음을 이동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삼성전자 차세대 스마트폰의 핵심적인 변화는 아무래도 접는(폴더블) 기능일 것 같다. 관련 정황을 포착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출시시기가 생각보다 이를 수도 있다. 믿을 만 한 것인지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내년 1월에 선보인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태다. 관련 특허 출원도 다수 확인됐다. 특히 접히는 부분의 본체 옆구리에 경첩을 단 특허 출원이 확인되면서 출시시기가 가까워졌다는 해석을 낳았다.
심지어 두 번 접히는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태블릿 디자인 특허를 확보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접는 스마트폰을 향한 선행 제품들도 잇따라 출시됐다. 스마트폰 옆구리에 구부러진 형태의 띠 디스플레이를 덧붙인 ‘엣지’ 제품이 그것이다. 이 모든 사례들은 디스플레이에 강점을 가진 삼성의 기술적인 진보를 의미한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리 멀지 않는 시기에 접는 폰이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제 삼성에 묻는다. 대체 왜 스마트폰을 접으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얼마나 풍부하면서도 간단명료하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향후 삼성 스마트폰 사업의 향배를 가를 가장 결정적인 키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기술 진보를 오롯이 혁신으로 연결시켜 경쟁자의 추격을 불허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삼느냐 아니면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 시키느냐를 가르는 문제일 수 있다.
엣지 제품은 삼성이 이 고민을 더 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다. 기자 기억으로 지금까지 삼성이 내놓은 스마트폰 중 외신으로부터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게 엣지였다. 하지만 반응만큼 판매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왜 그럴까.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좋은 반응의 대부분은 색다름과 디자인이었다. 문제는 새로운 활용가치에 대한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삼성도 아이폰이 오직 디자인만으로 시장을 흔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디자인을 넘어서는 대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계 첫째’라는 대답은 더 문제다. ‘빵점’에 가까울 만큼 아주 낮은 수준의 대답이다. 기술 선도는 테크 기업이 걸어가야 할 핵심적인 경영 이슈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시장의 판도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애플의 기술 선도력은 삼성에 비하면 한참 밑이라는 걸 누구나 안다.
기자 또한 이 질문에 대한 적확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질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안다.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옛 일반폰의 폴더형 제품과 접히는 스마트폰은 기술적인 난이도로 보나 용도로 보나 비교가 안 된다. 불량 없이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술적 성과임에 틀림없다. 거기에다 위 질문의 답까지 찾으면 경쟁자와의 ‘초격차’를 실현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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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시장 선도자(first mover)’가 돼라.” 아이폰 출시 후 삼성은 귀가 따갑도록 이 주문을 들어야 했다.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졌다. ‘대륙의 실수들’한테 빛의 속도로 추격당하고 있다. 접는 스마트폰 소식에 눈이 번쩍하고 떠진 것은 그래서다. 진입장벽이 높은 선도기술인 만큼 이를 철저하게 고객 관점에서 고민해 답을 찾는다면 ‘물건’이 될 것 같은 필이 온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왜 스마트폰을 접으려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