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여를 끌어온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보상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 질병을 얻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대표자 역할을 수행하는 황상기씨와 김시녀씨가 조정위원회의 중재 권고안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당초 조정안에 대해 대의적 틀에 따라 수용하겠다는 기존 반올림의 입장과는 대치되는 것이다. 이로써 외부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관련 3개 교섭 주체들이 모두 거부하면서 권고안에 대한 조정위의 추가 재조정은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일 황상기씨는 전일(8일) 반올림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황상기, 김시녀는 7월 23일 조정위원회에서 보상권고안 낸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씨는 "피해자 마음을 담지 못 한 조정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삼성은 피해자 노동력 상실분을 충분히 반영한 협상안을 마련하여 피해자와 직접 대화에 임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황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을 얻어 사망한 故 황유미씨의 부친이며 김 씨는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한혜경씨 어머니다.
앞서 반올림을 떠나 6명의 유족 중심으로 별도 협상 주체를 구성한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는 지난 1일 입장발표를 통해 권고안의 핵심인 공익법인을 통한 보상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가대위는 지난 30일 홈페이지와 언론사를 통해 배포한 자료에서 ▲공익법인에 의한 보상원칙 ▲권고안 제 5조 보상액 ▲공익법인 설립 발기인과 이사회 구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가대위는 이날 수정안을 조정위에 제출했다.
삼성전자도 조정권고안 발표 후 지난 3일 "공익법인 설립은 오히려 빠른 보상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의견과 함께 1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거부했다.
■반올림 '균열'...삼성 직업병 문제 해법 종지부 찍나
이들 교섭 단체들은 지난해 5월 삼성전자 대표이사인 권오현 부회장이 사과 의사를 표명하며 협상에 보다 성실히 임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협상을 시작했다. 당초 반올림과 삼성전자 등 양측간 협상이었던 국면은 반올림 내부에서 의견이 갈라지면서 반올림과 가대위로 나뉘어 세개 주체가 동시에 협상을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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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해 말 삼성전자와 가대위 측의 협의로 외부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제3의 조정위원회 구성에 합의했고, 반올림도 추후 이에 동의하면서 김지형 변호사(前 대법관)를 위원장으로 한 위원회가 출범하게 됐다. 이후 조정위는 숙고 끝에 지난달 말 최종 권고안을 내놨다. 조정위의 권고안은 ▲1천억원 기부를 통한 공익재단 설립 ▲재해관리 점검을 위한 옴부즈만 시스템 구축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법인 설립을 두고 삼성 측은 '빠른 보상을 방해할 수 있다'며 기금 형태로 운영하는 것을 제안했고, 반올림과 가대위의 유족 대표들도 결국 삼성전자와의 직접 협상을 요구하며 협상 주체 모두가 권고안을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따라서 향후 이들 협상 주체들간의 막바지 문제 해결을 위한 직접 협상이 이뤄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