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업병 공익법인 해법 찾을까

반올림 빼고 가족대책위 포함 반대 목소리 커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5/08/04 17:02    수정: 2015/08/04 17:36

송주영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장 내 백혈병 등 직업병 근로자 보상 원칙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8년을 끌어왔던 보상 논란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조정위 권고안 숙려기간 마지막날인 어제(3일) 1천억원의 보상 기금을 조성하고, 유산·불임군을 제외한 11개 질병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권고안의 일부 항목을 제외하고 대부분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에따라 3개 이해 주체의 입장이 나왔으며, 이를 종합하면 공익법인 설립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남게 됐다.

피해당사자 모임인 가족대책위원회, 삼성전자는 공익법인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인 반면 반올림은 찬성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공익법인 설립안...가대위-삼성 '반대', 반올림 '찬성'

반올림은 공익법인 설립을 통한 보상을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 추궁이 약화되는 측면이 있다 할지라도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의 수행을 삼성전자에게 맡겨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며 "조정위의 제안처럼 재원마련 주체와 사업수행 주체가 분리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올림 관계자는 "삼성은 예방도 보상도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인데 이는 맞지 않다"며 삼성 조정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삼성전자는 전날 조정위 권고안을 수용해 1천억원 기금 조성 계획을 밝히며 “조정위원회가 권고한 사단법인 설립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을 통해 보상을 실시하려면 또다시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기금을 조성하면 법인 설립에 따르는 절차 없이도 신속하게 보상을 집행할 수 있다”며 “상설기구와 상근인력 운영 등 보상 이외의 목적에 재원의 30%를 쓰는 것보다는 고통을 겪은 분들께 가급적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삼성전자 직업병 조정위원회가 23일 서울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직업병 권고안을 발표했다.

가대위는 지난달 말 ‘직접 협상’ 원칙을 내세우며 공익법인을 통한 보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경영간섭 우려 있는 공익법인, 도마 위에...해법 찾을까?

조정위의 권고안인 공익법인 안건에 대해서는 가대위,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도 모호한 역할론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정 기업 직업병을 다루는 공익법인은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경영간섭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조정위가 제안한 공익법인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순수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익재단은 ‘지속 가능 기업’이 기업 경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공익재단, LG공익재단 등이 설립돼 활동하고 있지만 특정 기업의 환경, 노동자 보상 문제를 다루기 위한 목적으로 외부 인력으로 설립된 공익법인은 알려진 사례가 없다.

조정위가 권고안에서 정의하는 공익법인의 사업목적은 모호하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조정위는 공익법인과 관련 “조정권고안에서 제시하는 보상 및 대책관련 사업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며 “이에 한정되지는 않으며 그 이외에도 이사회에서 공익법인의 설립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결정하는 사업을 수행한다”고 밝혀 공익법인의 업무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공익법인이 과도하게 경영간섭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공익법인 설립 위험부담 큰 안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사업장 내 질병과 근로환경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바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전향적으로 보상하겠다고 나선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공익법인 설립안과 관련 “삼성전자가 낸 돈 중 30%를 법인이 쓰겠다는 이야기기인데 그것이 말이 되냐”며 “보상을 위해 마련한 돈을 왜 엉뚱한 곳에 쓰냐”고 강조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경영간섭 우려가 있는 공익법인 설립안은 받아들이면 안된다”며 “(반도체)사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는 국내 수출산업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반기업정서를 등에 업은 옴부즈맨의 과도한 경영간섭, 규제가 사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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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는 세계 경기 침체, 수출 부진 속에서도 올해 1~7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66%의 수출 실적 상승률을 기록하며 339억달러의 수출 판매고를 올렸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산업경영학부 교수는 “총수가 공익법인을 만들어 다시 원기업을 통제하려는 통제용 공익법인은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다”며 “하지만 공익법인이 경영에 관여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같은 공익법인이 설립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나쁜 사례를 남겨 다른 공익법인들도 위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