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계약 횡포 부린 돌비, 시정명령 받아

공정위, 부쟁의무 설정된 계약조항 등 삭제·수정토록 지시

홈&모바일입력 :2015/08/05 12:00

정현정 기자

글로벌 음향 표준기술 보유 업체 돌비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사업자에게 부쟁(不爭) 의무 등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설정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돌비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불공정 조항을 제외한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됐다.

5일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거래상지위 남용행위)를 위반한 ‘돌비 래버러토리즈 라이선싱 코퍼레이션’과 ‘돌비 인터내셔널 에이비’에 대해 시정명령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돌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 디지털 음향 관련 특허 및 기술을 바탕으로 라이선스하고 라이선시로부터 해당 로열티를 지급받는 것을 주된 사업모델로 삼고 있다. 특히 글로벌 디지털 오디오 코딩 기술표준인 AC-3에 대한 라이선스 권한을 가지고 있어 관련 업체들이 디지털 오디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비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

돌비로부터 라이선스를 받고 있는 국내 사업자(라이선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총 90여개 업체로, 돌비의 국내 로열티 수입은 지난해 기준 약 1억9천만 달러(약 2천억원)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부분은 돌비가 계약서상에 라이선시가 어떤 방법으로도 특허의 효력 또는 소유를 다툴 수 없도록 부쟁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을 설정한 부분이다. 62개 국내 라이선스 계약서에 해당 거래조건이 설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돌비는 라이선시가 특허의 유효성을 다툴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거래조건을 설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돌비는 라이선시가 자신의 지적재산권을 실제로 침해 또는 남용한 경우 이외에도 침해 또는 남용의 우려만 있는 경우까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거래조건을 설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공정한 손해배상 및 감사비용 분담 기준을 설정한 것도 문제가 됐다. 돌비는 라이선시가 보고한 판매 물량에 따라 로열티를 수취하므로 보고 물량이 정확한지 여부에 대한 감사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돌비는 라이선시가 사전에 보고한 물량과 감사로 확인된 물량의 차이가 미미한 경우에도 라이선시에게 손해배상 및 제반 감사비용을 전부 부담하도록 하는 거래조건을 설정했다.

라이선시가 취득한 이용발명(선행발명을 이용한 발명으로서 선행발명자의 허락을 받아 특허로 등록할 수 있는 별도의 재산권) 등 권리의 처분 및 행사도 제한했다. 돌비는 라이선시가 취득한 이용발명 등 권리에 대해 돌비에 배타적 양수권을 부여하고 제3자에 대한 라이선스를 금지하는 등 그 처분 및 행사를 제한하는 거래조건을 설정했다. 또 라이선시가 취득한 이용발명 등 권리 중 특허된 권리를 돌비 또는 돌비의 다른 라이선시에게 행사할 경우 라이선스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래조건도 넣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통해 상기 불공정한 거래조건을 설정·유지하는 방식으로 거래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미 체결된 라이선스 계약에 대해서는 해당 거래조건을 수정 또는 삭제하여 다시 계약을 맺도록 했다. 다만 불공정한 거래조건들이 실제 행사된 사례는 없는 점, 이들 조건에 관해 국내 라이선시와의 소송 등 분쟁의 대상이 된 사례는 없는 점, 새로운 유형의 계약서 도입을 통해 이미 상당 부분 시정된 점 등을 고려해 과징금은 부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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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이번 조치로 돌비의 국내 라이선시와의 불합리한 거래조건이 개선돼 라이선시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잇는 기반이 마련되고, AC-3 기술이 표준으로 설정된 디지털 오디오 코딩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종전에는 국내 라이선시가 돌비 특허의 유효를 다투거나 지재권 침해 관련 분쟁이 있는 경우 계약이 일방적으로 해지될 수 있었으나, 이번 조치를 통해 라이선시가 계약을 유지하면서 돌비와 분쟁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표준으로 설정된 기술은 다른 기술로 대체하기가 어려우므로 경쟁에 미치는 영향이 큰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돌비와 같이 표준으로 설정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특허권 남용행위 등 공정한 거래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당국의 보다 면밀한 감시가 필요하다”면서 “앞으로도 돌비와 같은 표준기술 보유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법위반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중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