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영욕의 시간 뒤로하고 희망을 품다

1세대 벤처 신화에서 파산 직전까지…재도약 주목

홈&모바일입력 :2015/07/17 18:37    수정: 2015/07/18 11:26

이재운 기자
팬택은 경영 위기와 함께 비어있던 팬택 사옥 1층 '베가 갤러리'에서 '팬택을 빛낸 별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해왔다. [사진=팬택]
팬택은 경영 위기와 함께 비어있던 팬택 사옥 1층 '베가 갤러리'에서 '팬택을 빛낸 별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해왔다. [사진=팬택]

‘부활’ 보다 ‘회생’이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현 상황. 그래도 여전히 벤처의 뜨거움이 남아있고, 대기업 사업부 인수 경험으로 패기 넘치는 기업. 사라지기 아까운, 그럼에도 해법이 쉽지 않은 브랜드.

팬택의 과거와 현재를 나타내는 표현은 많다. 다만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급부상 중인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새 출발을 꿈꾸는 팬택의 영욕의 역사를 돌아봤다.

■삐삐 만들던 박병엽, ‘걸리버’와 ‘스카이’를 삼키다

팬택은 지난 1991년 3월, 아직 ‘IT’라는 말이 대중에게 생소하던 시절 맥슨전자 영업사원이었던 박병엽 전 부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약 1년 뒤 호출기(삐삐) 제조사업을 시작한 팬택은 1997년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한다. 창업자의 승부수는 이때부터 빛난다. IMF 금융 위기 속에 DJ 정부의 IT 산업 육성이라는 파도에 올라 탄 팬택은 회사 덩치를 키웠고, 2001년 11월 현대큐리텔을 인수한다.

‘걸면 걸리는 걸리버’를 만든 큐리텔의 인수로 팬택은 대중들에게 강한 기억을 각인시킨다. 팬택앤큐리텔의 출범으로 회사 규모와 명성을 동시에 키운 팬택은 2005년 SK텔레텍을 인수하며 또 한 번 시장에 충격파를 던진다. 당시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던 ‘SKY’를 품으며 팬택은 일약 ‘메이저 제조사’로 발돋움한다.

당시 일각에서는 ‘휴대전화는 대기업의 사업’이라며 팬택의 행보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시각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팬택의 미래는 밝게만 보였다.

팬택은 SK텔레텍을 인수, 스카이 브랜드를 통해 시장에 회사의 존재감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사진=팬택]

■첫 번째 위기, 결국 그는 떠났다

스카이 브랜드를 품은 다음해인 2006년 12월, 팬택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10개 채권은행에 기업개선(워크아웃) 작업을 요청한다. 첫 번째로 찾아 온 위기였다. 이듬해인 2007년부터 1차 기업개선절차를 시작했고, 2009년에는 팬택앤큐리텔을 합병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 박병엽 부회장은 회사를 떠났다.

2011년 12월, 팬택은 5년만에 첫 번째 위기를 털어내고 정상화를 선언했다. 창업주도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다시 날아오를 일만 남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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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팬택은 베가 시리즈에 대한 큰 호응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한 때 삼성전자에 이어 점유율 상으로 국내 2위에 오르는 등 대기업 보다 발빠른 대처로 기회를 잡는 듯 했다. 하지만 계속된 실기 속에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지난해 3월, 팬택은 2차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시장 환경과 관계 업체들의 반응은 녹록치 않았다. 이동통신사들은 팬택의 도움 요청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 해 6월 채권단인 이동통신사들에게 출자전환을 타진했으나 이통사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다음달인 7월 24일 이통사들은 팬택에 채무상환을 2년간 유예하는 결정을 내린다. 간신히 숨통을 틔운 셈이다.

팬택 상암동 사옥

일주일 뒤 채권단은 팬택에 대한 워크아웃을 결정한다. 하지만 8월 11일 만기가 도래한 200억원 규모의 채권을 갚지 못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이때부터 고난의 매각 작업이 시작된다. 10월에는 인수의향서 접수를 마감했지만 마땅한 대상자를 찾지 못했고 결국 기한을 연장했다. 같은 달 팬택은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낸다.

11월 21일, 연장됐던 본입찰 응모를 마감했다. 응모자는 없었다. 팬택의 미래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강해졌다. 창업주 박 부회장은 결국 회장에 오르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충분히 성공했을 때 오를 거라던 회장직은 결국 그를 거부했다.

■지리한 '희망 고문'의 연속

올 1월, 깜짝 인수희망자가 나타났다. 빨리 계약하고 싶다며 법원에 수의계약을 요구한 이는 재미 한국계 자본이 국내 자본과 손을 잡고 구성한 원밸류에셋 매니지먼트 컨소시엄이었다. 이들은 IT 분야 투자 포트폴리오 확보 차원에서 팬택을 인수, 중국 시장을 공략해 ‘한국의 샤오미’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법원과 매각주관사는 이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투자의 기본인 ‘자금력’을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법원은 3월 6일 원밸류 측과의 계약을 포기한다고 발표한다. 마지막 희망에 대해 상처를 준 셈이다.

4월 17일, 법원은 3차 공개매각 절차에 돌입한다. 국내 2곳, 미국계 1곳 등 3곳에서 의향서를 제출했다. 미국계 응찰자에 대해서는 한 IT 대형 기업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중에도 제대로 된 곳은 없었다. 4월 20일, 법원은 “적격자가 없다”며 매각 불발 소식을 전한다.

이틀 뒤 팬택 임직원들은 결국 스스로 ‘고용 보장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회사만 살릴 수 있다면, 자신들의 고용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들은 6일 뒤 회생 의지를 담은 ‘추억의 사진전’을 상암동 본사 로비에서 열기 시작했다. 이들의 청춘과 열정을 바친 회사의 회생을 기원하는 몸짓이었다.

그럼에도 인수희망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석가탄신일 다음날인 5월 26일 팬택은 이준우 대표이사 명의로 회생절차 포기를 선언한다. 모든 이들이 ‘이제 팬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법원은 약간의 시간을 더 주겠다며 파산선고를 잠시 보류했다.

팬택 관계자가 게재한 베가 시크릿노트2 사진. 워크아웃 작업에 따라 빛을 보지 못한 이 제품의 반복은 이제 없는 걸까. (출처=http://blog.naver.com/ultrayoung/)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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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옵티스 컨소시엄이 등장해 인수 의사를 밝혔다. 곧장 실사에 돌입한 옵티스는 앞서 삼성과 도시바의 합작법인인 ODD 생산업체 TSST를 인수한 전력이 있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뒤로하고 옵티스 컨소시엄은 7월 17일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통신장비 업체인 쏠리드도 합류했다. 정준 쏠리드 대표는 현재 한국벤처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다.

팬택은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이주형 옵티스 대표는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해 IP-TV 스마트폰을 만들어 팔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 현지 사업경험이 있는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회장으로 영입하기까지 했다. 정치인 출신을 영입한데 따른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팬택은 이제 생존과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