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인가의 최우선 조건으로 '혁신성'을 꼽았다. 혁신성의 의미를 조금 단순화해보면 '빅데이터 기반 맞춤형 개인화 서비스'가 될 듯하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글로벌 사용자들을 상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페이스북이나 넷플릭스, 링크드인처럼 고도의 SW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 결국 인터넷전문은행은 인가를 받기 위해서도 또 사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도 SW 역량이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다.
그러나 SW 역량을 키운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대한민국 경제의 잠재성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원인도 결국은 정부나 기업의 SW 역량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분석에 기반한 개인화 서비스라면 특히 그렇다. 이 분야의 경우 투자의 효과를 짧은 시간에 내기가 힘들고, 사업 수행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필요하다.
오랜 인내를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만이 성공할 가능성이 그나마 조금 있는 것이다. 발주처들이 IT 업체에 알아서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관행을 버리지 않고서는 이 모든 게 요원할 따름이다.
기업이 SW역량을 키우는 것은 멀리 내다 보고 갈고 다듬어 나가는 기나긴 여정에 가깝다. 시작은 우수한 SW개발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개발자 없이 SW역량 강화라는 기나긴 여정을 끌고 나가기는 만만치 않다. 과거의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서두른다면, SW역량 강화라는 배는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전문은행도 마찬가지다. 실시간 분석, 위치 기반 마케팅 환경 등을 개반으로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터넷은행 서비스를 자체 SW역량 확보없이 구현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알아서 잘할거라 생각하면 좋겠지만 현장에선 우려의 시선들이 적지 않다. 우수한 개발자들이 인터넷전문은행 서비스 개발에 합류할 수 있을지, 또 이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 국내 기업이 얼마나 되겠는지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버일 수도 있지만 인터넷전문은행 다운 서비스를 개발할 만한 SW역량을 갖춘 회사는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괜한 우려는 아닌 것 같다. 몇몇 인터넷 회사들을 제외하면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체 SW역량을 갖춘 회사들의 풀(Pool)이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된 이후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국내 사용자들의 눈높이는 많이 높아졌다. 해외에서 쏟아지는 혁신적인 서비스들을 국내 사용자들도 쉽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어설픈 서비스들이 발을 붙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 국내외 유명 기업들이 유능한 개발자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같은 환경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뛰어난 개발자들을 불러모으고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문화를 갖추는 것이 혁신으로 가는 길이라는 인식은 점점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 제공되는 공공 및 금융 웹서비스는 모바일 시대, 높아진 사용자들의 눈을 맞추기에 중량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혁신과는 거리가 많이 멀다. 공공이나 금융 서비스가 쓰기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쩔 수가 없어서 쓰는 이들이 많은게 현실이다. 민간 분야에서 혁신적인 웹서비스들과 금융-공공 서비스 간 수준차이가 그만큼 많이 벌어져 있다는 얘기다.
이를 감안하면 내년에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요즘 잘나가는 민간 웹서비스 수준의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갖춰야 그마나 좀 혁신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혁신적인 인터넷전문은행은 낙후 된 금융 서비스 전체의 혁신도 가속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또 불편해도 어쩔수 없이 쓴다는 꼬리표가 붙은 공공 웹서비스 혁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혁신의 선순환인 셈이다. 금융과 공공 웹서비스 환경이 개선되면 고착화된 한국 웹생태계의 불균형도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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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상황은 고도의 SW역량이 인터넷전문은행에 투입됐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SW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인터넷전문은행은 지금 나와 있는 인터넷뱅킹과 그게 그거라는 얘기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인터넷전문은행과 인터넷뱅킹이 뭐가 다르지?라는 반응이 나올까 우려하는 시선들이 많이 엿보인다.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보이는 회사들 다수가 의욕은 넘쳐 흐르지만 자체 SW역량은 많이 부족하고, 또 SW역량 강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업 문화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을 앞두고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