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EFF “불법 정보라도, 포털에 책임 물어서는 안된다”

‘정보매개자책임 마닐라원칙’ 한글 사이트 오픈

인터넷입력 :2015/06/29 17:30    수정: 2015/06/30 14:17

“표현의 자유와 산업 발전을 위해 정보매개자들이 이용자들의 콘텐츠들을 감시하도록 의무화해선 안 된다. 또 법원 명령이 없는 한 콘텐츠가 삭제되거나 차단돼서도 안 된다. 마닐라 원칙에 맞춰 한국 법은 개정돼야 한다.”

미국 정보인권단체인 전자프런티어재단(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EFF)은 29일 ‘정보매개자책임에 관한 마닐라원칙’ 한글 사이트를 오픈했다.

이에 맞춰 국내 인터넷 자유 운동단체인 오픈넷은 EFF 선임 국제정책 담당관인 제레미 말콤을 초청, 정보매개자 책임에 관한 마닐라 원칙과 국내 법령의 수정 방향을 제시했다.

마닐라 원칙의 핵심은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와 같은 정보매개자에게 제3자 콘텐츠 정보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부과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설사 인터넷에 명예훼손 글이나 불법 정보들이 게재되더라도 이 책임을 정보매개자가 아닌, 게시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

왼쪽부터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전자프런티어재단 제레미 말콤 선임 국제 정책 담당관.

만약 정보매개자들에게 모든 콘텐츠에 대한 모니터링을 의무화하고, 발생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할 경우 합법적인 콘텐츠까지 걸러질 수 있다는 것이 EFF의 우려다. 누구나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공간인 인터넷에 검열된 게시물만 남게 되는 문제가 발생된다는 지적이다.

제레미 말콤은 “위험을 피하려는 회사 특성상 조금이라도 콘텐츠를 검열할 동기가 부여되면 우려되는 게시물을 삭제, 차단할 것”이라며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라도 기업에 면책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닐라 원칙의 또 다른 핵심은 사법당국기관의 명령 없이 정보매개자에게 정보콘텐츠 제한을 의무화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국내법의 경우 개인이 네이버와 같은 정보매개 사업자에 특정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면, 이를 접수한 회사는 불법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게시물을 삭제 또는 차단하도록 하고 있다.

EFF의 주장은 삭제나 차단 요청이 들어오면 정보매개사업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게시자에게 이를 보내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또 삭제 및 차단할 때는 최소 침해 원칙과 비례성 원칙에 부합해야 하고, 게시자에게도 복원권과 반론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 EFF의 논리다. 아울러 투명성과 책임성 관점에서 정부가 삭제, 차단 요구를 했을 경우 해당 기록을 보관하고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마닐라 원칙의 내용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마닐라 원칙에 근거해 한국법이 개정돼야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하게 된다”면서 “불법 판단을 받지 않은 콘텐츠를 삭제 또는 차단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불법 콘텐츠를 찾도록 요구하는 것들은 개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진정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매체가 인터넷”이라며 “마닐라 원칙의 목적은 정보매개자들이 불법 콘텐츠 모니터링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법적으로 의무화 하거나 강제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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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말콤 담당관이 마닐라 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픈넷은 9월 국회를 목표로 국회와 방송통신위원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요청만 있으면 합법적인 정보 차단까지 가능한 국내 법 철폐를 요구할 계획이다. 또 기술적 조치와 같은 일반적인 감시 의무 폐지를 주장하고, 공적 소통의 유일한 매체인 인터넷의 특성과 강점 등을 어필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온라인 서명 운동 등도 전개하기로 했다.

EFF는 내일부터 홍콩 마카오에서 열리는 인터넷가버넌스포럼(IGF)과 11월에 예정된 세계 IGF에서 정보매개자 책임에 관한 마닐라 원칙을 적극 홍보하고 전문가들과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