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스토리지의 전용 네트워크 프로토콜 '파이버채널(FC)'을 이더넷 방식으로 통합하려던 시도가 시장에서 퇴출되기 일보직전이다.파이버채널오버이더넷(FCoE)은 시장 창출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다.
FCoE는 약 8년전 표준화했고 5년쯤 전부터 시장에 등장했다. 용도별로 다양했던 스토리지 입출력(I/O) 포트를 통합하기 위한 프로토콜 중 하나였다.
등장 초기 FCoE는 고성능과 안정성을 요하는 SAN 스토리지 인프라의 FC 프로토콜을 이더넷 케이블에 통합해 쓰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상적인 시나리오에선 FCoE를 지원하는 I/O카드는 이더넷으로 통신하는 LAN카드(NIC)와 FC용 통신카드를 따로 장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장비 구축 비용이나 소비전력면에서 효율적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사실 꼭 그렇진 않았다. FCoE는 등장하자마자 그 실효성에 대한 비판과 의문에 직면했던 기술이었다.
우선 FC를 필요로하는 스토리지는 대형 기업에서만 쓰는데, FCoE로 바꿨을 때의 이득이 불분명했다. 대역폭이 초당 8기가비트(Gbps) 수준인 FC를 1Gbps가 대다수인 이더넷NIC에 통합했을 때 발생할 병목현상이나, FC를 감싸는 이더넷 프로토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으로 시장 확산이 더뎠다. 규모가 작은 기업에선 애초 FC로 통신하는 스토리지 요구가 적었고, 이들에겐 FCoE 지원 I/O카드마저 고가였다.
이더넷의 강자였던 시스코시스템즈가 FC를 쓰던 고객사들을 설득하면서 FCoE를 적극 밀었지만, 주로 브로케이드 제품을 쓰던 FC 유저들의 경우 시스코 스위치 제품을 동급으로 쳐주지 않았다.
2011년들어 FC의 속도를 따라잡은 10Gbps급 이더넷 제품이 보급되면서 숨통이 트이나 싶었다. 인텔은 메인보드에 FCoE 지원기능을 내장한 서버용 메인보드를 내놨다. 고가였던 FCoE용 I/O카드를 별도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계기가 됐다. IBM, 시스코, 브로케이드, EMC, 넷앱, 히타치데이터시스템(HDS) 등에서 FCoE 지원 서버, 스위치, 스토리지가 출시되면서 고객사도 하나둘씩 늘어 갔다. (☞관련기사)
지금은 어떨까? 스토리지 관련 업계 담당자들의 얘길 들어 보니 FCoE의 존재감은 사실 5년전에 비해 더욱 희미해진 모양새다. 한때 FCoE 지원사격에 나섰던 스토리지업체 EMC와 SAN스위치업체 브로케이드의 근황을 통해 이를 짐작 가능하다.
엔터프라이즈 스토리지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EMC는 최근 주력 제품군에서 FCoE 포트를 걷어낸 상태로 공급하고 있다. EMC는 FC 기술의 본진인 미션크리티컬 고성능 스토리지 제품 V맥스와 중급 시장을 겨냥한 범용 스토리지 VNX 최신 모델에서 FCoE 포트를 지원하지 않는다. 본사가 주류 시장 확보에 기를 쓰고 있는 올플래시스토리지 '익스트림IO' 신제품에도 마찬가지다.
한국EMC 관계자는 현업 담당자들이 체감하는 스토리지 시장의 FCoE 관련 수요를 묻자 "주요 최신 제품군이 FCoE 기능을 기본 탑재하지 않고 추가 장비를 구성할 경우에만 쓸 수 있는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며 "제품 담당자들에게 문의 결과 FCoE를 쓰는 곳이 많진 않을 것이란 반응이 돌아왔다"고 답했다.
SAN스위치 전문업체로 이름난 브로케이드 역시 이더넷 케이블로 FC를 통합하려는 FCoE의 시도는 실패했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더넷은 FC로 데이터가 오가는 SAN스토리지에 걸맞는 일관된 성능과 안정성을 받쳐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보탰다. FCoE는 정체했지만 SAN스토리지용 FC 기술 수요는 계속 성장했고 SAN과 NAS를 위한 iSCSI도 함께 인기를 구가했다고 덧붙였다.
브로케이드코리아 시스템엔지니어 김현수 상무는 올초 미션크리티컬 환경을 겨냥한 NAS 스위치 'VDX6740' 출시 간담회서 "(시스코처럼) 이더넷 기반의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한 업체들은 2009년무렵부터 FCoE를 데이터센터 메인 I/O 프로토콜로 내세웠지만 이후 FCoE 외장스토리지 확산은 정체됐다"며 "연구실 규모에선 쓸만하지만 현업에 도입을 추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FCoE에 시들해진 시장 분위기는 한국만의 특징도 아니다. 영국 IT미디어 더레지스터는 아예 지난달 하순 보도를 통해 FCoE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링크)
보도에 따르면 FCoE의 직접적인 사인(死因)은 시장 확산에 실패했기 때문인데, 그 배경 요소는 한둘이 아니다. 불확실한 ROI에 비해 비싼 투자, 복잡성, 제품 업체간 제원 불일치로 인해 제 구실을 못했던 표준, 스토리지제조사의 비협조 등이 열거됐다. 보도는 또 2007년 시작한 FCoE 표준화 프로세스 참여사 대다수는 iSCSI와 FC를 지원하며 정작 FCoE는 그들의 로드맵에서 사라졌음을 지적한다.
FCoE의 확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시스코는 어떨까? 시스코는 '유니파이드컴퓨팅시스템(UCS)'을 통해 데이터센터용 x86 서버 시장에 발을 들였는데, HP, IBM, 오라클 등을 추격하는 후발주자의 차별화 포인트로 서버에 FCoE 기본 탑재를 내세워 왔다. 하지만 FCoE의 인기는 시스코 기대만큼 불붙지 않았고, 대신 시스코 UCS서버 사업은 그 나름대로의 타개책을 통해 성장해 왔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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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 본사 차원에선 더이상 UCS서버의 특장점으로 FCoE 기본 탑재같은 요소를 내세우지 않는다. 시스코는 서버 모델 자체를 용도별로 세분화하면서,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IoT)을 실현하는 기반 수단으로 UCS서버를 제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관련기사) 시스코가 네트워크 장비를 내놓으며 고성능 FCoE 지원에 방점을 찍었던 2년전 모습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관련기사)
더레지스터는 "시스코를 제외한 누구도, 시스코 파트너들조차 FCoE를 쓰길 원치 않는다"며 "EMC는 모르지만 넷앱 '플렉스포드' 구축환경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NFS를 사용하고 퓨어스토리지나 님블스토리지같은 그외 스토리지 공급업체는 FCoE를 아예 지원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