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웨더 vs 파퀴아오' 뺨친 1인방송의 '환상 쇼'

데스크 칼럼입력 :2015/05/04 11:44    수정: 2015/05/04 13:3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격언 그대로였다.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매니 파퀴아오가 벌인 ‘세기의 대결’ 얘기다.

화끈한 승부를 기대했던 복싱팬들은 경기 직후 엄청난 불만을 쏟아냈다. 나이 지긋한 팬들은 1970년대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키 간의 대결까지 거론했다. 당시 대결에서 이노키는 경기 끝날 때까지 바닥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좀 더 젊은 팬들은 마빈 해글러와 토머스 헌즈 간의 세기의 대결이 그립다고 털어놨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30년 전인 1985년 4월 벌어진 두 선수의 경기는 복싱 역사상 가장 화끈한 승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두 선수는 2회까지 시종일관 난타전을 벌인 끝에 해글러가 헌즈를 KO로 눕혔다.

프로복싱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슈거레이 레너드, 토머스 헌즈, 마빈 해글러, 로베르토 듀란 등 빅4가 연이어 라이벌전을 벌이면서 전 세계 팬들을 흥분시켰다. 하지만 이후 종합격투기가 득세하면서 요즘은 변방으로 밀린 상태다. 이번 대결이 싱겁게 끝나자 “이래서 복싱은 안 돼”란 반응이 쏟아진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 TV 방송에 위협적 펀치 날린 페리스코프

이번 대결이 구형 스포츠 복싱의 한계만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60년 이상 안방극장을 지배해온 TV 방송 역시 몰려드는 위기를 몸으로 체험해야만 했다. 떠오르는 1인 방송 페리스코프가 날린 강펀치 때문이었다.

페리스코프는 지난 3월 26일 트위터가 선보인 모바일 앱이다. 아프리카TV나 유스트림처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동영상 생중계를 할 수 있으며 현재는 iOS 앱만 나와 있다.

페리스코프가 강력한 것은 트위터란 뒷배경 때문이다. 앱을 깔고 트위터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트위터 친구들이 연동돼 뜨는 것. 이렇게 뜬 방송 중 볼만한 것들을 시청하면 된다. 그 뿐 아니다. 언제든 방송 진행자가 될 수도 있다. 그냥 카메라로 찍으면서 ‘방송 시작하기’ 버튼만 누르면 바로 생방송이 시작된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MGM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경기는 말 그대로 돈잔치였다. 경기 입장권은 최하 3천500달러(약 380만원)였다. 링사이드 좌석 암표 값은 25만 달러(약 2억7000만원)까지 치솟을 정도로 비쌌다.

그 뿐 아니다. HBO와 쇼타임이 공동 중계한 경기를 시청하려면 90달러(약 9만7천원)를 내야했다. 그마저 HD 방송은 시청료가 100달러(약 10만8천원)였다. 식당이나 맥주집 같은 곳에서 경기를 상영하려고 해도 5천 달러(약 540만원)에서 최대 1만5천500달러(약 1천675만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내야 했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페리스코프를 통해 공짜로 봤다. 경기 시청자들이 TV 화면을 동영상 카메라로 찍어서 내보냈기 때문이다. 경기 시간 내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페리스코프로 생중계를 해줬다.

페리스코프 생방송의 장점은 또 있다. 트위터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경기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각종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 경기 특성상 이런 장점은 보는 재미를 배가시켜줄 가능성이 많다.

그러다보니 매셔블, 판도데일리, 씨넷 등 많은 매체들은 “이번 경기 최대 수혜자는 페리스코프”라고 평가했다. 딕 코스토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도 경기가 끝난 직후 “승자는 페리스코프(and the winner is.... Periscope)”란 글을 올렸다.

■ 저작권 문제 해결 땐 위협적

물론 엄밀히 말하면 페리스코프 생방송은 저작권 위반이었다. 주관 방송사인 쇼타임과 HBO 역시 트위터 측에 동영상 생중계를 막아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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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페리스코프를 이용한 1인 생방송이 던진 메시지는 강력했다. 저작권 문제만 빼놓으면 대형 방송사의 ‘편성권’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퀴아오와 메이웨더 간의 ‘먹을 것 없었던 잔치’에서 진짜로 먹을만했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이제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미디어 혁신이 우리 주변에까지 내려와 있는 느낌이다. 메이웨어와 파퀴아오가 벌인 ‘허무하기 짝이 없는 쇼’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짜 쇼도 어쩌면 바로 그 부분인지도 모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