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산업의 중심인 실리콘밸리의 남녀 차별 문화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던 여성이 결국 패소했다. 하지만 이번 패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제대로 거론되지 않던 여성 차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만만찮은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27일(현지시각) 엘런 파오가 전 직장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CPB)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평결을 했다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KCPB는 앤드리센 호로위츠 등과 함께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투자 회사다. 중국계 미국인인 파오는 지난 2005년 KCPB에 입사했으며 7년 간 근무하다가 지난 2012년 5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파오는 회사에서 성차별을 받았다면서 1천600만달러(약 18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파오는 소송을 제기한 직후인 그해 10월 해고됐다.
■ 트위터-페이스북 등도 연이어 소송 휘말려
프린스턴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파오는 하버드대학에서 법학전문박사(JD)와 경영전문석사(MBA)를 받았다. KCPB에서 해고된 파오는 현재인 소셜뉴스 사이트로 유명한 레딧의 임시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파오는 KCPB에 재직하는 내내 성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여성이란 이유 때문이 승진이나 연봉 협상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것. 또 중요한 미팅이나 저녁 자리에서 제외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고인 KCPB 측은 파오가 해고된 것은 다른 파트너들과의 불화 때문이었다고 맞섰다. 승진에서 누락된 것 역시 전문적인 경험과 기술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법률적인 공방에선 파오가 완패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법원 배심원들은 파오가 해고된 것은 여성 차별과 무관하다면서 KCPB의 손을 들어준 것.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 동안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던 실리콘밸리의 여성 차별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상당한 파장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파오가 법정에서 증언한 이후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전 직원들이 회사를 상대로 성차별 소송을 제기해 관심을 끌었다.
먼저 소송에 휘말린 것은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었다. 페이스북에서 기술 파트너로 활동했던 치아 홍이 지난 16일 여성 차별을 이유로 샌프란시스코 남부 샌 마테오 카운티 지역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치아 홍은 “일할 때 하찮게 취급받았을 뿐 아니라 왜 집에서 아이를 돌보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사흘 뒤에는 트위터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티나 황이 가세했다. 티나 황은 지난 19일 트위터가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승진에서 누락시켰다면서 샌프란시스코 지역법원에 제소했다. 티나 황은 소장에서 “트위터 지도부의 79%가 남성일 뿐 아니라 2013년 12월 이전까지는 이사회에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 '아이비리그 출신' 이력 때문에 더 주목
앨런 파오 사태 이후 실리콘밸리의 ‘마초문화’는 곳곳에서 거론됐다. 특히 파오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열렸던 기술 컨퍼런스인 SXSW와 세계 최고 지식 플랫폼인 TED 등에서도 실리콘밸리 여성 차별 문제가 공론화됐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파오의 이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파오는 미국 명문대학의 상징인 아이비리그 학위가 세 개나 있을 뿐 아니라 주요 기업 고위직을 역임하는 등 드문 케이스라는 것. 이 때문에 이번 여성 차별 소송에 더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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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비 시스템즈에서 부사장을 역임했던 카렌 캐트린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에 있는 많은 남성들은 자신들의 회사로 능력 위주 사회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서 “따라서 성 차별 문제는 (실리콘밸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나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KCPB가 워낙 유명한 투자회사인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성 차별 문제가 (실리콘밸리에서도) 중심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