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뀐 저널리즘 지형도…풍경 넷, 생각 넷

데스크 칼럼입력 :2015/03/29 10:36    수정: 2015/03/30 08:28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풍경 1]

지난 3월 12일 네덜란드의 뉴스 스타트업인 브렌들이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그리고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3대 언론사가 브렌들의 건별 뉴스 판매 서비스에 파트너로 참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지난 해 5월 등장한 브렌들은 ‘저널리즘계의 아이튠스’를 표방하는 서비스다. 네덜란드 주요 언론사의 모든 기사들을 한 곳에 모은 뒤 개별 기사 별로 판매하고 있다. 일단 구입한 기사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입 비용을 환불해준다.

기사 가격은 언론사가 설정한다. 현재 브렌들에서 판매되는 기사 한건당 평균 가격은 20센트. 우리 돈으로 환산할 경우 약 200원 수준이다. 이렇게 생긴 매출은 브렌들과 언론사가 3대 7로 나눈다. 이 서비스는 약 10개월 만에 20만 가입자를 모집했을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풍경 2]

그로부터 열흘쯤 뒤인 지난 24일. 이번엔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 주요 언론사들에 콘텐츠를 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뉴스였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 포털 뉴스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언론사들과 협상 중이란 소식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버즈피드 뿐 아니라 ‘저널리즘의 자부심’으로 통하는 뉴욕타임스도 페이스북에 뉴스를 공급할 것이란 소식이었다.

페이스북이 자신들의 플랫폼 내에서 뉴스 서비스를 하려는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끊김 없는(seamless) 서비스’ 제공. 페이스북에서 링크를 누른 뒤 별도로 브라우저를 띄우는 게 독자들에겐 불편하다는 것. 두번째는 언론사 사이트 로딩 속도로 평균 8초로 지나치게 느리기 때문에 그냥 자기네 플랫폼에서 보는 게 훨씬 더 편하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니먼저널리즘랩을 비롯한 일부 언론 전문 사이트나 전문가들은 ‘저널리즘이 세계 최대 플랫폼에 항복’했다는 논조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뿐 아니라 워싱턴포스트도 페이스북 콘텐츠 제휴업체로 참여하는 데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풍경 3]

사흘 뒤에는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엔 워싱턴포스트가 플립보드 전용 페이지를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플립보드에 마련된 워싱턴포스트 페이지에는 현재 2016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 의원 관련 기사가 큐레이션 형태로 올라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는 5월부터는 모든 콘텐츠를 플립보드에 올릴 예정이다.

이번 특집은 잡지 형태 디자인을 채택한 점 외에도 대형 사진과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최근 보도 뿐 아니라 이전에 썼던 기사들과 함께 엮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플립보드에 올린 기사도 자사 사이트와 같은 유료 정책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한 달에 20건 이상을 볼 경우엔 돈을 내도록 한다.

[풍경 4]

마지막 풍경 역시 워싱턴포스트와 관련된 것이다. 지난 3월 16일. 워싱턴포스트 PR 블로그에는 글로벌 파트너 프로그램 제휴사가 245개로 늘어났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 관련 링크)

텍사스 트리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를 비롯한 46개 언론사가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제휴 프로그램에 동참했다는 뉴스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해 3월 신문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다. 초기에는 미국 내 지역신문들이 주타깃이었다. 말하자면 지역신문 독자들은 공짜로 워싱턴포스트 사이트와 앱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다. 이게 점차 확대되면서 텍사스 트리뷴,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같은 유명 언론사까지 가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재팬뉴스 같은 외국 사이트들도 동참의사를 밝히고 있다.

[생각을 이어가기 위한 설명]

앞의 네 가지 풍경은 최근 내 머릿 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자극들이다. 네 가지 풍경은 발생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뉴욕타임스 등이 브렌들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가장 앞에 나와 있다.

하지만 내가 저 소식들을 접한 순서는 전혀 다르다. 당연히 앞으로 이어갈 생각들은 저 시간 순서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수밖에 없다. 이 글을 계속 읽어갈 분들은 그 부분을 감안해주기 바란다.

자, 그럼 이젠 복잡한 내 머릿 속으로 같이 여행을 떠나보자.

[생각 1]

페이스북의 ‘뉴스 호스팅 서비스’에 뉴욕타임스가 참가할 것이란 소식을 처음 접할 땐 제 정신인가?란 반응이 툭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10여 전 이 땅에 처음 포털 뉴스가 등장하던 무렵이 오버랩됐다. 내 기억으론 처음엔 포털 관계자들이 언론사를 찾아다니면서 애걸복걸(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설득을) 하면서 제휴를 끌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완전히 반대 상황이 됐다.

당연히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됐다. 네이티브 광고에 초점을 맞춘 버즈피드가 참여하는 것은 이해가 됐다. 어차피 주수익원이 네이티브 광고 쪽이나 버즈피드 자체 플랫폼은 큰 의미가 없었다. 콘텐츠 자체가 곧 비즈니스 모델이기 때문이다.그런데 뉴욕타임스는 다르다. 우리처럼 배너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아니니 메인 페이지의 중요성이야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뉴욕타임스란 플랫폼은 저널리즘 활동의 상징성이 강한 곳이다. 그런 상황에서 페이스북에 종속될 게 뻔한 선택을 하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 2]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이 브렌들에 파트너사로 참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역시 처음 반응은 저 큰 기업들이 낱개로 팔아서 돈이 얼마나 될까?란 아주 순진한 생각이었다. 기사 한 건 평균 가격이 우리 돈으로 따지면 겨우 200원 수준인데, 란 생각.

당연히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기업들이 푼돈 벌려고 네덜란드 신생 언론사 플랫폼에 참여할 리는 없다. 세 기업 전략 담당자가 모두 미치지 않고서야. 뭔가 거대한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것 아닐까? 란 쪽에 생각이 미쳤다.

[생각 3]

그러다 접한 소식이 워싱턴포스트가 플립보드 전용 페이지를 만든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접하곤 곧바로 내가 썼던 ‘죽어가던 워싱턴포스트 살린 제프 베조스’란 기사를 다시 읽었다. (☞ 관련 링크)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이번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2월 슈피겔에 게재된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디지털 미래로 데려가고 있다’는 기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관련 링크)

베조스의 ‘워싱턴포스트 살리기’ 전략을 소개한 그 기사에 따르면 최근 베조스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앱이다. 제프 베조스는 앞으로 워싱턴포스트 앱을 아마존이 판매하는 킨들 태블릿에 기본 탑재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이 친구들이 언론사 자체 플랫폼보다 개별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닐까?”란 데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베조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당연할 텐데, 문제는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까지 비슷한 방향을 잡은 것 아닐까? 의문은 계속 이어졌다.

[생각 4]

그리고 접한 마지막 소식. 워싱턴포스트의 글로벌 파트너 프로그램 참가사가 245개로 늘었다는 뉴스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워싱턴포스트 PR 블로그에 올린 소식을 ‘워싱턴포스트(washington)’와 ‘혁신(innovation)’이란 두 단어로 구글링하다가 접한 소식이었다.

저 소식을 보면서 주목한 것은 워싱턴포스트 제휴사가 245개로 늘었다는 ‘자랑질’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텍사스 트리뷴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도 참여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멀리 일본에 있는 재팬 뉴스도 파트너사가 됐다는 부분에 더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해 3월 처음 제휴 프로그램을 시작할 무렵엔 지역 중소 언론사들이 주로 참여했다. 그런데 점차 굵직한 언론사들도 동참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네 가지 풍경과 네 가지 생각, 그리고 내 맘대로 결론]

처음 생각의 고리가 시작된 것은 페이스북의 뉴스 호스팅 서비스 때문이었다. 언론사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뉴욕타임스의 굴복(?)으로 인한 배신감(혹은 충격?)이 발단이 됐다. 그래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고, 읽으면서 엉뚱한 쪽으로 생각의 고리들이 이어졌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 시대 글쟁이 고종석이 15년 쯤 전에 펴낸 ‘코드 훔치기’란 책을 꺼내서 한 구절을 읽었다. ‘붙박이에서 떠돌이로’란 부제가 붙어 있는 ’개인들의 시대’란 글의 첫 머리였다. 고종석 특유의 과장이 살짝 섞여 있는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태초에 개인이 있었다. 개인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개인이 하느님이었다. 최후에 개인이 남았다. 멋쟁이 이론가들이 ‘노마드(Nomad, 유목민)’라고 부르는 그 떠돌이들은 휴대폰과 함께 있을 것이고, 노트북을 들고 지구의 이 도시 저 마을을 누빌 것이다. 바로 이 개인은 21세기 인류의 다른 이름이다.” (고종석, 코드 훔치기, 27쪽)

자, 이제 진짜 글을 맺자. 어쩌면 저널리즘에도 노마드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 아닐까? 아니 이미 온 것 아닐까? 명민한 세계 유력 언론사들이 혹시 그 흐름을 잡아채고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닐까? ‘노마드의 시대’가 왔는데, 나는 계속 ‘정주민의 시대’를 고수하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을 계속 하다보니 갑자가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이번엔 최인훈 선생의 고전적 소설 ‘회색인’ 첫 부분을 뒤적였다. 주인공 독고준이 쓴 글 중 일부. “우리나라에 식민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주장을 담은 그 글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었다.

“막 뺏고, 밟고, 퍼내도 아깝지 않을 그런 것이, 어딨단 말씀이오?

있지요.

뭡니까?

관련기사

사랑과 시간.” (최인훈, 회색인, 11쪽)

이리하여 나의 풍경과 생각 여행은 ‘사랑과 시간’이란 엉뚱한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다만 나는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할) 사랑과 시간이라는 조금은 억지스런 주장을 하긴 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