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번호는 그대로 두고 여러 분야에서 이와 연동돼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식별번호를 만드는 것이 총 행정비용을 낮추면서 정보누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안이다 - 동양미래대 최성락 교수
분야별로 아예 다른 식별번호를 써야한다. 주민번호와 연동된 또 다른 식별번호는 아이핀과 다름없다. 왜 병원에서 나의 납세정보를 알 수 있게 해야하나 -오픈넷 김가연 자문 변호사
우리나라에서 범용식별번호로 쓰여 온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과 함께 태어난 곳, 남녀성별 등의 정보까지 담고 있는데다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서비스에서 본인을 식별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이메일, 포털을 이용할 때도, 연말정산이나 병원에서 의료보험처리를 할 때도 주민번호는 필수다.
이 때문에 거꾸로 주민번호만 알고 조회가 가능하면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무슨 활동을 해왔는지, 개인적인 취향에서부터 병력, 범죄이력 등까지 모두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인 입장에서는 주민번호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내 사생활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싱, 파밍, 스미싱 등을 일으키는 범죄자들에게 주민번호는 이미 헐값에 구매할 수 있는 공개정보가 돼버렸다. 개편은 불가피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바꿔야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27일 강은희 의원 주최로 주민번호대체연구센터, 한국규제학회가 주관한 '주민등록번호 보호와 대체수단'에 대한 토론회에서는 크게 두 가지 안이 등장했다.
주제발표를 맡았던 최성락 교수는 주민번호와 연동되는 또 다른 일반적인 식별번호를 사용하는 안이 구축비용이 들고, 주민번호와 같은 범용식별번호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민번호에 비해 개인정보누출을 방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문제가 될 경우 교체가 가능한 사회보장번호 혹은 국민연금번호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안은 이미 주민번호와 연동된 대체 수단인 아이핀, 마이핀이 사용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분야별로 세무, 의료, 금융, 사회보장 등 분야별로 별도의 등록번호 체제를 쓰는 안이 낫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광운대 행정학과 김주찬 교수는 행정비용과 달리 해킹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었다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주민번호는 행정편의를 위해 만든 것인데 각 기관은 물론 산업체에서 온라인 환경에까지 확장해 쓰면서 문제가 커진 만큼 이러한 아예 주민번호를 쓰지 않고 각 분야별로 서로 연동되지 않는 등록번호 체제를 쓰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의견이다.
김가연 변호사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남는 온라인에서까지 주민번호를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이메일, 포털 등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주민번호(혹은 아이핀)를 사용하는 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생년월일을 밝히지 않고 물건을 사고, 글을 써서 배포하는 것과 비교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온라인에서 무조건 신원을 밝혀야 한다는 점 자체가 오히려 보안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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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주민번호의 가장 큰 역할이 노드(node)로 작동해 다른 분야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하고 있다는 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시절 전자정부 구축사업을 진행했던 경성대 행정학과 정충식 교수는 전자정부 구축사업 당시인 2005년~2007년에도 주민번호 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얘기가 있었지만 2조원~3조원 가량 비용이 들 수 있다는 말에 정부측에서 시작도 하지 못했던 일화를 들어 현재로서는 주민번호 대안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모으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 국민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