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저주

전문가 칼럼입력 :2015/02/25 07:46    수정: 2015/02/25 09:49

이정규
이정규

작년에 비키(Viki) 창업자인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벤처정신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강연 말미에 그가 던진 한마디, “내가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혁신은 멀어집니다.” 촌철살인의 한 문장이 가슴에 꽂혔다. 전문가 되기를 바라지 말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전문가들이 빠지기 쉬운 경직성에 관한 경고의 말로 이해했다.

전문가(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여러번 말해 왔다. “한국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프로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는 전문가로 성장하려면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이고 실수를 많이 해 보는 과정을 지나야 도달할 수 있다. '말콤 그래드웰'은 일만시간의 단련을 통해 학습하고, 도전하는 사람은 언제가 전문가의 반열에 오른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기 힘든 전문가로 인정받는 순간 혁신이 멀어진다고 하니 무슨 얼토당토아니한 말인가?

전문가의 저주(curse of the expert 혹은 curse of expertise)라는 말이 있다. 같은 이름으로 시작하는 스탠포드 파멜라 힌즈(Pamela J. Hinds) 교수의 연구논문이 흥미롭다. 연구의 내용은 이러하다. 신참자의 작업성과를 예측하는 실험에 있어서, 전문가는 가장 부정확한 예측을 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업의 완료시간을 추정하는데 있어서정확도가 가장 떨어졌고, 새로운 대안을 생각하는 일에도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연구결과 가장 정확한 예측을 한 모집단은 중간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전문경험이 오히려 오판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현상을 전문가의 저주라고 이야기 한다.

전문가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일하는 환경이 변화가 적은 익숙한 일인 경우에나 유효하다. 익숙한 대상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척 보기만 해도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현장에서 자동차를 수십년 고쳐온 정비사는 엔진의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났는지를 바로 알고 처방을 내린다. 패턴인식에 대한 암묵적 지식이 내재화 되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전기자동차일 경우도 그러할까? 전기자동차는 엔진의 소리가 나지 않아, 의도적으로 엔진소리를 만들어주는 장치를 넣는다. 그렇지 않으면 보행자가 다가오는 차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되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달라진 패턴에 대하여 기존의 내재화된 지식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게 다가온다. 변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속이 붙는다. 속도가 빠르면 시야가 좁아진다. 시야가 좁아지면 환경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는 전문가는 자신의 경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현상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은 위험에 대한 인지가 늦고 행동이 굼뜨게 된다. 식자들이 미국과 중국의 디지털 솔루션 업체와 경쟁하는 국내 대기업 제조업체들의 미래를걱정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변화의 세계에서는 전문가를 지향하는 것만으로 부족함이 있다.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적절한 태도이다. 혁신가는 세상에 없거나 생소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세상에 소개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전문가로서 인정하고 떠받들어 준다하더라도 혁신가는 전문가를 자처하면 독이 된다. 실리콘밸리에서 혁신기업의 창업자는 20대가 많다. 최근에는 10대까지로 내려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수십년 동안 많은 전문가를 양성하면서 업계를 리드하던 기업들이 순간 혁신기업에게 추월 당한다. 어떤이는 영속기업을 이야기 하지만, 과연 영속조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 지기도 한다. 영속하는 세포는 힐라암(Hela Cancer)세포 밖에 없는 것처럼, 기업의 생성과 쇠퇴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까?

스티브잡스는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라는 테크닉을 통해서 개발자들의 파괴적 혁신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을 마치 영화 스타트랙의 가상현실 공간인 홀로덱(holodeck)으로 초대하여 비현실을 현실로 생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제품개발 일정과 솔루션을 애플의 엔지니어들이 무엇에 홀린 듯 달성 가능하다고 믿게 만들고, 결국은 그것을 만들어 내게 되는 현상을 경험했다는 여러 사례들이 그의 전기에 쓰여있다. 인식 패턴을 파괴시켜 버리는 능력이 잡스에게는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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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마음을 열고,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배움을 청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성장은 무한한 일이다. 그러하니, 전문가를 지향하는 그대여,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배우는 학생임을 자처하라. 고래로 부터 현인들이 가르친 지혜를 토마토에서 깨우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