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운영의 핵심은 슬랙과 감성

전문가 칼럼입력 :2014/11/13 07:32

이정규
이정규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한 공리주의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1748.2.15~1832.6.6)은 자신의 철학을 건축에도 적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오래전에 디자인한 판옵틱(Panoptic) 아키텍처는 지금도 쿠바에 건물형체가 남아 있다.

건물의 모양은 이러하다. 등대와 같은 높은 감시탑을 중앙에 두고 죄수들의 방이 도너츠와 같은 형태로 둥그렇게 층층이 둘러쳐 있다. 단 한명의 간수가 수백개의 감방에서 죄수가 무엇을 하는지 훤하게 감시하고 통제한다. 이 얼마나 엄청한 효율인가? 그러나, 이러한 건물 구조는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현대에도 CEO들은 "판옵틱 - 한눈에 모두 볼수있는 - 조직관리"를 도모하려는 끝임없는 유혹을 느낀다.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표화하고 시각화하여 상세히 파악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세부적인 일을 CEO가 판단하고 조치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이러한 일은 실무자와 팀장들이 맡아서 처리할 일이다. 당장은 섬세하고 부드럽게 처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고객접점의 직원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실무자에게 권한 위임을 하고, 접점에서 신속히 처리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위에서 너무 나대면 실무자는 소신있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상사의 눈치만 살피게 되고 책임을 떠맏지 않으려 모두 입을 다문다.

'오너십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을 휴맥스에서 만들었다. 오너십의 총량은 일정해서 자기 일임에도 옆이나 위에서 너무 나서면 당사자는 오너십을 덜 느끼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상사나 다른 부서에서 나의 일을 대신 챙겨주니, 실무자들은 어느새 오너십과 책임의식을 버리게 된다. 여행을 갈때 남편이 모든 스케쥴과 예산을 관리하면, 부인은 “다음엔 뭐해?”하고 묻는 것과 같다.

관리자나 경영자는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 미션이 아니라, 직원들이 일을 잘하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업무이다. 물론 직원이 신입사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부적인 일을 살피고 코치하여 빠른 시간에 스스로 일을 분석하고, 결정하고, 수행해 나갈 수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기업에서는 항상 크고 작은 문제가 매일 매일 일어나게 되어있다. 직원의 숙련도가 떨어지거나,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정책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잘 준수하지 않아서, 예상치 못한 외생변수로도 난감한 일은 언제나 벌어진다. 이러한 일에 관리자가 화를 내고 호통을 친다고 상황이 금방 개선되지는 않는다.

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고, 원숙한 사업활동에는 상당한 학습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발생된 '문제'를 야단칠 것이 아니라, '익숙치 않은 현상이 발생했군?'하고 새로운 학습의 기회로 삼는 문화가 필요하다. 인내심을 갖고 학습한다면, 당장은 눈에 띄지 않을 지 모르지만 3~5년의 변화를 비교해 보면 어느새 성숙한 수준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경영자와 직원간에 일관된 학습문화 유지와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천체 물리학에 '골디락스'라는 용어가 있다. 영국의 동화작가인 로버스 사우시의 '소녀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동화에서 유래가 된 말이다. 어린 골디락스가 길을 잃고 헤메이다 곰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화에는 “식탁위에 놓인 스프가 아빠 것은 너무 뜨겁고, 엄마 것은 너무 차갑고, 아기 그릇의 스프는 먹기 좋게 미지근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태양계에서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은 골디락스 대역을 공전하고 있다. 덕분에 지구에서는 물이 전부 얼지도 증발하지도 않아서 생명활동이 가능하다. 성숙한 조직관리는 이와 같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아야 한다.

개발자들의 유명한 멘토인 톰 드마르코는 조직에는 '슬랙(여유)'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3개x3개 그림 맞추기 퍼즐처럼 9번째 조각부분이 비워져 있어야, 8개조각이 움직여 자기 자리를 찾는 이치와 같다. 조직 안에 슬랙이 없다면,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매일 매일의 당면과제 때문에 교육에 참여할 시간도, 혁신을 도모할 시간도 없게 된다.

조직의 활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슬랙을 허용하지 않고, 최소 투자에 최대효율을 끝임 없이 도모하는 경영자에게 책임이 있다. 빠른 시간 안에 단기 실적을 도모하지만, 장기적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고 회사의 진로 방향을 잘못 잡곤 한다. 조직을 너무 자주 바꾸고, 실적이 안나온다고 수시로 중간관리자를 갈아치운다. 이러한 상황이 입소문이 나버리면 좋은 관리자들이 찾아오지도 않는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나 합리가 아니라, 감성과 신뢰이다. 직원들은 똑똑한 리더보다도 마음이 따뜻한 리더에 부응한다. 이러한 마음은 인류가 동굴생활을 하면서 부터 내재화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동굴 입구는 족장과 리더들이 맹수와 적으로 부터 공동체를 지킨다. 동굴의 안쪽에서는 노약자와 여자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씨족들이 족장에게 갖는 팔로우십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발현된다.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언제 내쫓을지 모르는 경영자에게 누가 충성을 바치겠는가? 그러므로 리더는 조직내에서 부서간의 경쟁을 도모해서는 안된다. 경쟁은 조직밖의 경쟁자와 하는 것이다.

두뇌는 겉뇌와 속뇌가 있다고 한다. 겉뇌는 논리와 기억을 담당한다. 속뇌는 추론과 통찰을 준다. 새끼가 태어나선 엄마 젖을 찾아 빨고, 새가 둥지를 치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할 줄 안다. 이것은 속뇌에 내재화된 오래된 학습유산이라고 한다. 속뇌는 생존에 대한 본능이 학습되어 있고, 위험을 예견한다. 리더가 속마음을 숨기고 직원들을 호도한다고 해도,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우리의 속뇌가 본능적으로 알아낸다. 그러므로, 직원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리더는 바보이다.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층들 모두가 어리석은 자이다. 눈빛과 태도로 본능적으로 나를 업수이 여기는지 바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들은 진정성있는 감성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인은 “직원을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 내게 이야기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직원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리더로서는 적절한 자질이 아니다.리더의 역량은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역량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젊은 청춘을 조직과 리더의 성과에 바치는 귀중한 직원에게 은혜를 주고 덕을 베풀어야 좋은 리더이다. 미래지향적 좋은 리더는 아래와 같은 표징이 있다.

첫째, 리더가 잘못했다면 부하 직원에게 용서를 청할 용기가 있다.

둘째, 어떤 상황에도 호통치지 않으며, 직원의 자존심을 살피고 존중하는 태도로 조언한다.

세째, 직원들의 작은 성공에도 자주 칭찬한다. 칭찬은 평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미리 지불하는 선불금이다.

냇째, 모든 것을 아는 척하지 않으며, 직원에게도 가르침을 청한다.

다섯째, “보고”를 통한 감독 보다는, 직원이 주도하는 업무 코칭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여섯째, 여러사람이 참여하는 미팅시간을 줄이고, 현장에서의 대면 코칭을 도모한다.

일곱째, 조직의 프림솔라인을 만들고, 조직의 위험 관리를 한다. 프림솔라인이란 배의 만재흘수선을 말한다. 한계선 이상 선적을 하면 출항을 하지 못하게 하여, 배의 난파나 침몰을 사전에 관리하기 위해 만든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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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크론보르크 성에 그들의 전설적인 영웅 "홀거 단스케(Holger Danske)"의 동상이 있다. 홀거 단스케 동상은 의자에 앉아, 한손에는 방패를 한손에는 칼을 잡고 잠을 청하는 모양이다. 어른들은 이 동상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눈을 뜨고 분연히 일어나 조국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말해준다. 어린이들은 동상 앞에 다가갈 때면 사나운 영웅이 깨어나지 않도록 끝발로 조심조심 걷는다고 한다. 톰 드마르코는 리더가 일방적이고 독선이 심하면, 조직안에서 분연히 일어나는 홀거 단스케가 있다고 일갈한다.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건 정말 아니야"라는 말이 홀거 단스케를 깨우는 주문이다. 홀거단스케를 깨우지 않으려면 리더는 직원들에게 적절한 슬랙을 주고, 자발성을 북돋으며, 직원존중을 통한 감성관리에 유의하고, 골디락스 대역을 따라 회사가 경영되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아마존의 제프베조스의 할아버지가 똑똑한 손자에게 던진 충고를 읽어 보았다.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똑똑한 머리를 갖는 것보다 더어렵단다."똑똑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함께 가지면 좋겠지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따뜻한 감성이라는 메시지일 터이다. 독자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리더들로 성장하기를 기원드린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