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솥정(鼎)의 균형

전문가 칼럼입력 :2012/10/05 10:13

이정규
이정규

최인호의 소설 ‘상도’를 읽고 중국에서 작은 청동 정(鼎, 솥) 모조품을 구입했다. 이를 서가에 두고 자주 보고 있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에서 보니 그들이 발굴한 가장 오래된 ‘모공정’이라는 주나라 시대의 鼎을 국보로 귀하게 전시하는 것을 보았다.

중국의 고대로부터 鼎은 상제인 하느님에게 바치는 제사음식을 요리하는 귀한 도구였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鼎은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비유된다. 鼎의 세 다리는 기구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지만, 소설 속에서 鼎의 세 다리는 돈/명예/권력을 상징한다. 오로지 왕만이 이 세가지를 정상에서 모두 취할 수 있었다.

왕권의 통치하에서 평민은 단지 이 세가지 중에 하나만을 얻어도 훌륭한 일이다. 평민이 이중 2개, 3개를 모두 갖고자 욕심 낸다는 것은 왕권을 노리는 일로 간주되었다. 이 때문에 군주국가에서는 현명한 사람은 오로지 하나만 도모했다. 돈을 많이 번 거상이 권력을 탐하지 않고, 한나라의 재상은 재물을 탐하지 않아야 모함에 빠지지 않고 천수를 보존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의 경우는 누구든 국민의 마음을 얻는 자가 국가의 수장이 된다. 그러나 돈과 명예와 권력 어느 것도 독차지 할 수 없도록, 삼권 분립과 같은 사회적 견제장치가 가동되어 권력자의 종횡과 독단을 방지한다. 독재가 만연하는 후진국일수록 삼권분립은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셋으로 나뉘어 지면 균형이 잡히는 것이다. 재물의 경우에도 재물을 기록하는 자, 재물의 이동을 승인하는 자, 재물을 보관하는 자를 분산한 관리체제 하에서는 횡령과 사기가 발생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이 이중 두 가지를 함께 처리할 권한을 갖는 경우는 자산관리의 투명성은 보장할 수 없다. 이를 회계감사에서는 (세)권한의 분산 원칙(SoD:Separation of Duties)이라고 한다. 감사인은 재무제표의 투명성을 검증하기 위해 SoD에 이슈가 있을 만한 곳의 증적을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규모가 작은 조직에서 SoD는 말은 쉽지만 운영이 쉽지 않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개의 경우 후보자들은 여러 선거공약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3가지의 핵심키워드를 제시하곤 한다. 투표를 하는 시민들이 기억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간지에 실린 후보들의 연설문의 상관 네트워크분석표를 살펴보니 성장/복지/행복, 복지/성장/평화, 정의/평화/복지 등의 비슷한 3가지를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 같다. 키워드의 무게가 너무 큰 거대 담론의 주제들이다.

먼저 성장과 복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성장을 도모하면서 사회전반의 복지를 같이 볼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직의 속도가 빨라지면 시야가 갈수록 좁아지기 때문에 그늘 진 곳을 살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제3공화국 시절에도 그랬었다. 그러므로 성장과 복지는 함께 갈 수 없다. 성장하고, 복지하고, 다시 성장을 도모하는 것처럼 한 템포 쉬고 추스르고 가야 한다. 그래야 복지를 지속할 수 있는 돈을 모으고 힘을 축적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보수와 혁신 정권의 변화가 생기고,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최근 수십년 간의 정권 변화의 역정을 보면 우리 국민은 이러한 조직 다이나믹의 핵심을 이미 꿰뚫고 있는 듯 하다.

평화는 수평적 집단과 수직적 계층간의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이는 영원히 정적 상태로 유지 될 수 없다. 국내의 문제라면 갈등이 끊임 없이 발생하는 것이 건강한 조직이라는 상식과 상대를 존중하고 갈등을 감내할 수 있는 소통의 문화가 정착되어야 평화는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쌍방간에 힘이 없다면 상대를 얕잡아 보게 되고 소통은 없다. 국가간의 갈등 역시 양상은 비슷하다. 힘이 전제되지 않는 평화란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 있어서 힘은 경제력이고, 특히 안정된 국가의 힘은 탄탄한 중간계층의 경제력이다. 정권을 지원하는 중간계층의 뒷받침이 없다면 나라의 힘은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하바드대학 강의가 책으로 나와 우리나라에서 특이하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컬럼리스트는 우리국민은 상대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체제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유라고 푼다.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 것이다. 빌게이츠는 “인생은 불공평하다! 이에 적응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지만, 정의가 공평함을 말한다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다른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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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공평한 일은 내게 주어진 시간뿐이다. 시간은 넘친다고 자식에게조차 양도할 수도 매매할 수도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내게 있어서 “정의란 돈이나 권력으로 일이 모두 해결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민족은 핏속부터 돈과 권력을 가진 자의 건방짐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진 듯하다. 돈 위에 사람 낳지? 사람 위에 돈 낳는가? 그러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평정심을 가지고 소박하고 정의롭기는 너무 힘들다. 그래서 노브리스오브리제의 고상한 명예를 삶의 무게를 두고 쫓아야 한다.

복지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평화는 힘(권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의로움은 명예에 답이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鼎을 바라보는 심경이 새롭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