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델피(Delphi)라는 도시에 가면 신탁(오라클)으로 유명한 아폴로 신전이 있다. 지금은 무너진 폐허가 되어 6개의 돌기둥만 쓸쓸히 서있는 신전의 입구에는 유명한 3가지 경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 “무엇이나 지나치지 않게”(nothing in excess)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증 그 곁에 재앙”(make a pledge and mischief is nigh)이라는 잠언이다. 첫 번째 글귀는 소크라테스가 평생의 화두로 지니고 다닌 말로서도 유명하고, 마지막 글귀는 당시에도 보증이 얼마나 큰 사회적 이슈문제가 되었으면 신전의 벽에 쓰여질 정도로 심각했던가를 반증하기도 한다.
내가 주목하는 글귀는 가운데 “무엇이나 지나치지 않게”라는 말이다. 동양에만 중용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도 삶의 균형에 대한 지혜를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이야기 할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삶의 3가지 화두를 가지고 있다. 바로 지향, 실행, 균형이다. 이중에서 특히 힘든 일이 균형이다. 비즈니스맨들에게 삶의 균형이 무엇일까 수년 전부터 곰곰이 생각해 왔고, 이를 다음의 7가지 균형(밸런스)으로 정리하게 됐다. 첫째 관리와 리더십의 밸런스, 둘째 디테일과 위임의 밸런스, 셋째 통찰과 실행의 밸런스, 넷째 몰입과 융통의 밸런스, 다섯째 일상과 위기관리의 밸런스, 여섯째 일과 라이프의 밸런스, 일곱째 육체와 영혼의 밸런스가 그것이다.
인생은 결국 밸런스의 문제이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편집광의 개인적 삶은 불행이다. 결국은 큰 것을 이루기도 전에 병들어 먼저 죽을 것이다.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를 균형에서 찾고 싶다. 일곱 가지 균형 중에서 마지막 두 가지는 앞의 다섯 가지와는 격이 포괄적 개념이라서, 이번 글에서는 아래의 5가지 비즈니스적 균형에 국한하여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관리와 리더십의 밸런스
징키스칸의 부하 중에는 예순베이라는 용감하고 날랜 수하 장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에 대해 어느 날 징키스칸은 이런 말을 했다. “예순베이는 참 훌륭한 용사다. 아무리 오래 싸워도 지치지 않고 피로 한 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병사들이 자기 같은 줄 알고 성을 낸다. 그런 사람은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징키스칸의 빌라크에 나오는 이 말은 관리와 리더십에 대한 중용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평범한 인간인 부하들의 속성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 자신의 능력에 눈높이를 맞추고 모자라는 부하를 다그치는 장수는 결코 훌륭한 장수가 될 수 없으며 지휘관으로 임용하지도 않겠다는 징키스칸의 장수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통제와 관리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감복하여 따라오게 만드는 리더십 사이의 밸런스는 관계관리의 핵심이다.
■디테일과 위임의 밸런스
쿠바에 가면 파노라마(Panoptic)식 아키텍처로 지어진 형무소 건물이 있다. 실용주의 철학자 중의 한명인 제라미 벤담이 고안한 디자인이다. 이 형무소의 디자인은 매우 독특하다. 도너스처럼 생긴 5층 원형의 건물에 수백명의 죄수 감방이 360도로 촘촘히 마련돼 있고, 빌딩의 중앙에는 간수를 위한 높다란 등대모양의 감시탑이 있다. 간수가 있는 공간의 조명을 낮추면 죄수들은 간수의 동태를 살필 수도 없고, 항상 자신이 감시 당한다는 생각으로 탈옥을 도모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떤 관리자들은 조직의 관리시스템을 이런 형태로 만들고 싶어 안달한다. 대기업일수록 이러한 도모를 더욱 많이 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다수의 직원들을 관리하려다 보니 인적 리스크가 상존해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자연적인 현상일 것이다. 이들은 직원의 ID카드로 항상 위치를 추적하고, 지나친 출입통제와 PC 관리툴로 직원의 모니터를 해킹하고 이메일을 검열하기도 한다.
조직의 창의성을 억제하는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하고 있다. 현명한 리더는 디테일을 관리하는 수준에 균형을 유지하고 적절한 권한 위임을 통해 조직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유도할 줄 알아야 한다. 지나친 위임도 문제이듯이, 지나친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도 문제이다. 관리 수준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통찰과 실행의 밸런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유목민인 돌궐족이거나 몽골족이거나 자신들이 한 곳에 안주해 오래 생활하게 되면 조직의 관료화를 조장하고 변화에 무감각해지고 외침에 대한 대응에도 비효율적이라는 통찰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역사적으로도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도 남송을 무너뜨리고 성안에 들어 앉은 이후에 멸망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역사적 지식에서 미래 전략의 통찰력을 끄집어 내야 한다. 통찰력은 생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행을 위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학습한 통찰력으로 현상을 분석해, 전략을 실행으로 옮기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판단능력이야 말로 생존과 번영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몰입과 융통의 밸런스
어린시절 숫자 퍼즐 맞추기 놀이가 있었다. 사각형의 틀에 8개 혹은 15개의 숫자나 그림퍼즐이 들어 있고, 이들을 이동해서 연속된 숫자나 그림을 완성하는 게임이다. 이러한 퍼즐 맞추기 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어느 한 곳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각각의 조각을 이동시킬 수 있다.
톰 드마르코가 지은 ‘슬랙(Slack)’이란 책에 이러한 퍼즐에 관한 그림이 들어 있다. 조직관리에서는 슬랙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명하지 못한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숫자 퍼즐의 마지막 빈 곳까지 채워버리는 것을 생산성과 효율증대로 오판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직은 옴짝달싹 할 수 없어서 외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업무 프로세스의 지나친 자동화도 이러한 문제를 야기 시킨다. 현명한 경영자가 조직에 여유와 빈 곳을 허용하면서 이를 관리한다. 관리자 8명 중 1명은 전략수립이나 신규사업과 같이 실적에 구애되지 않는 장기적인 일에 몰두하도록 융통성 있는 전문역량을 배양해야 한다.
■일상과 위기관리의 밸런스
수십 년 동안 매년마다 위기에 봉착했다고 떠들어 대는 기업들이 있다. 급속한 변화가 진행되니 항상 위기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좋을 수 있겠다. 그러나 쉼 없는 위기의식 고취는 위기에 무감각해지는 직원을 양산할 뿐이다. 좋은 약도 너무 자주 쓰면 효과가 없다.
‘골디락스와 곰 세마리’라는 로버트 사우시의 동화가 있다. 골디락스(Goldilocks)라는 이름의 어여쁜 소녀가 길을 잃고 곰 세마리 가족이 사는 집에 들어가 보니 아빠침대는 너무 딱딱해! 엄마침대는 너무 푹신해! 아기 곰 침대는 딱 좋아! 아빠 스프는 너무 뜨거워! 엄마 스프는 너무 차가워! 아기 스프는 먹기 좋게 미지근 해! 대강 이런 줄거리의 이야기이다.
우주 물리학자들에게 골디락스는 매우 친숙한 용어이다. 지구는 태양과 딱 알맞은 거리에 있어서, 물이 끌어 증발하지도 않고 물이 얼어 얼음이 되지도 않는 생명체가 살기 좋은 미지근한 골디락스 대역대를 공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의 일상도 이와 같아야 한다. 너무 뜨겁게 일관해서도 안되고 너무 차갑게 일관해서도 안 된다. 오랜 지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긴장도를 유지하는 것은 예술에 가깝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프림솔라인(Plimsoll Line)과 같은 위기관리를 해야 한다. 프림솔라인은 배의 만재흘수선이다. 영국의 정치인인 프림솔이 과적을 통해 많은 이문을 남기려는 화주나 선주의 욕심에 배가 침몰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입법화 했다고 한다. 프림솔라인은 생명선과 같다. 배에 화물을 실을 때,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안전선이다. 프림솔라인이 안 보인다는 것은 배가 운행 중에 침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직은 자사의 프림솔라인을 항시 관리해야 한다. 구성원의 이직률, 현금흐름, 고객의 이탈률 등이 프림솔라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고객 접점, 현업의 실무자들과 항상 원활한 소통문화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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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연이라는 젊은 여류시인이 쓴 ‘슈퍼맨의 비애’라는 시 한 귀절로 끝을 맺고자 한다. “세상을 이겨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는 환상과 위선의 균형을 찾아 헤맸다!”
독자들에게 화두를 너무 쉽게 말씀 드리면 생각할 것이 없을 것 같다. 필자도 하루 동안 이 시를 곱씹어 보았다.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는 딥스마트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