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S와 미디어 혁신, 그리고 테크놀로지 기업

데스크 칼럼입력 :2015/01/06 15:53    수정: 2015/01/06 16:0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한 동안 인문학이 화제가 됐다.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를 거듭 강조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잡스가 다녔던 디자인 명문 리즈대학이 인문학을 강조했다는 점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잡스가 강조한 ‘리버럴 아츠’는 인문학 만은 아니다. 리버럴 아츠는 어학·자연 과학·철학·역사·예술·사회 과학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 교양을 포괄하는 단어다. 따라서 ‘테크놀로지와 인문학의 결합’이란 화두 역시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라는 좀 더 넓은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 버즈피드와 복스가 만들어낸 환상

최근 들어 자주 거론된 화두는 미디어도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다. 특히 최근 버즈피드가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캐피털(VC)인 안드리센 호로위츠로부터 5천만 달러를 투자받은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투자를 주도했던 안드리센 호로위츠 측은 버즈피드가 미디어회사일 뿐 아니라 테크놀로지 기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했다고 밝혔다.

더버지를 비롯한 선진적인 신생 미디어를 대거 보유하고 있는 복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특히 복스는 선진적인 콘텐츠 관리시스템(CMS)을 갖고 있는 점 때문에 선진적인 미디어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런 흐름에 또 다른 불을 지핀 것이 전통 미디어인 워싱턴포스트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지난 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뒤 기술 부문에 많은 투자를 했다. 최근엔 워싱턴포스트가 CMS를 외부에 라이선스 하기로 하면서 이런 인식이 힘을 실어줬다. 많은 매체들이 “워싱턴포스트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미디어들이 테크놀로지 기업이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떤 강점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CMS다. 선진적인 CMS가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척도라는 인식이 꽤 많이 퍼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11년 말 탄생한 IT 전문매체 더버지(The Verge)다.

더버지를 만든 조수아 토폴스키는 원래 엔가젯 출신이었다. 하지만 엔가젯이 AOL에 인수된 뒤 경영진과 갈등을 빚던 그는 2011년 4월 회사를 떠난 뒤 한 동안 거처를 놓고 고민했다. 그러다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복스미디어였다. 코러스란 뛰어난 CMS에 매료된 때문이었다.

뛰어난 CMS를 구비하고 있으면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봐도 되는 것일까? 최근 미국 미디어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문제를 놓고 가벼운 논쟁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소식을 전해준 기가옴의 기사에 따르면 고커 창업 멤버인 엘리자베스 스피어스가 논쟁의 불씨를 던졌다.

그는 이 글에서 디지털 미디어들이 새로운 것을 할 때 범하는 다섯가지 실수 중 하나로 ‘테크놀로지 기업이란 환상’을 꼽았다. 뛰어난 CMS를 갖고 있을 경우엔 ‘미디어 기업=테크놀로지 기업’이란 잘못된 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버즈피드에 투자한 안드리센 호로위츠의 크리스 딕슨도 화답을 했다. CMS는 미디어 기업을 구성하는 거대한 퍼즐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아예 CMS는 택시 공유 업체인 우버나 리프트가 사용하는 전자 배송시스템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 CMS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터 분석과 마인드 변화

딕슨의 진단에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 미디어기업과 버즈피드 같은 미디어이면서 테크놀로지 기업이기도 한 곳을 가르는 기준은 대체 뭘까? 이에 대해 기가옴의 매튜 잉그램 기자는 ‘데이터’라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콘텐츠가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버즈피드가 트래픽을 대폭 늘릴 수 있었던 핵심 비법은 ’눈길 끄는 제목’과 ‘~하는 몇 가지’란 리스티클로 잘 알려진 특유의 기사 형식이 아니었다. 독자들의 행태를 사전에 분석한 뒤 그들의 욕구에 맞는 콘텐츠를 적재적소에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비결이었다. 그게 바로 테크놀로지 기업인 버즈피드의 핵심 경쟁력이다.

버즈피드가 지난 해 데이터 과학자인 다오 구옌을 발행인으로 승진시킨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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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부터 국내 미디어 기업들 사이에서도 ‘혁신’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많은 미디어들이 뼈를 깎는 혁신을 꾀하고 있다. 혁신을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눈이 가는 것은 CMS일 것이다. 사이트 혁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독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매튜 잉그램 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콘텐츠와 미디어를 독자와 함께 하는 상품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한 ‘마인드 변환’을 통해 진정한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