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잘 정돈된 독과점시장이라도 엉망진창인 경쟁시장이 소비자에게 유리하고 낫습니다.”
“국내 1위 단말 제조사와 이통사의 시장점유율이 50%가 넘습니다. 유통망이 이들 사업자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부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도입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통신‧단말시장의 경쟁이 활성화 돼야만 결국 소비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며 단통법 시행을 전후해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한 말이다. 사실상 제조‧통신 1위 업체의 시장지배력이 시장을 반시장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이로 인한 폐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단통법’ 이슈에 묻힌 방송 ‘합산규제’
단통법이 표면적으로는 휴대폰의 유통구조를 바꾼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시장지배력을 지닌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이와 유사하게 최근 방송시장은 시장지배력 남용을 견제하자는 ‘합산규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다. 하지만 통신비와 직결되는 단통법이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과 달리 합산규제는 사업자들 간 공방에 그치고 있다.
합산규제는 1개 사업자가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의 점유율을 더해 1/3을 넘지 못하도록 하자는 제도다. 통신보다 공익성‧공공성의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한 방송시장에서 특정사업자의 점유율이 시장지배적 위치에 오를 경우 그 폐해가 훨씬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여기에는 케이블, IPTV, 위성이 모두 동일한 유료방송서비스임에도 서로 다른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는 문제가 포함돼 있다. 아울러, 케이블과 위성은 방송법을, IPTV는 특별법 형태의 인터넷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을 적용받고 있다는 법의 이원화 문제도 담겨 있다. 최근 통합방송법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는 이유다.
이 같은 서로 다른 규제로 인해 케이블TV는 케이블TV가입자의 1/3, 전국 방송권역의 1/3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위성방송은 가입자 제한이 없으며, IPTV는 케이블-위성-IPTV가입자를 모두 합한 전체 유료방송의 1/3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케이블은 전국을 77개 권역으로 나눠 사업권을 지닌 해당 권역 내에서만 서비스가 가능한 반면, 위성과 IPTV는 권역 구분 없이 전국적으로 서비스가 가능하다.
2012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방송시장 경쟁상황평가에서 케이블, 위성, IPTV는 동일한 유료방송 서비스, 동일 시장으로 획정됐음에도 케이블이 상대적으로 가장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합산규제 논란, 왜?
반면, IPTV와 위성방송을 모두 서비스하고 있는 KT그룹은 이 같은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IPTV사업자가 위성방송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KT는 KT스카이라이프를 자회사로 보유하며 가장 많은 유료방송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9월말 현재 두 사업자의 유료방송 점유율은 28.1%에 이른다.
더욱이 규제의 형평성 이슈도 문제지만 KT그룹이 경쟁사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IPTV와 위성방송을 묶어 결합상품으로 판매하는 OTS(올레tv스카이라이프)와 DCS(접시 없는 위성방송)에 있다.
DCS는 위성방송을 위성안테나가 아닌 초고속인터넷(KT국사에서 위성신호를 받아 여기서부터 IPTV와 같이 초고속인터넷망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로 현재 KT스카이라이프가 서비스 제공을 준비 중이다.
때문에 경쟁사들은 OTS나 DCS 상품이 사실상 IPTV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가입자 점유율 규제가 없는 위성방송서비스로 판매하며 점유율 규제를 우회한다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OTS나 DCS 모두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KT-KT스카이라이프가 결합상품을 판매하면서 방송 서비스를 헐값에 판매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KT는 부산지역에서 OTS 상품을 6천원에 판매한 사례가 드러나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합산규제 처리 어떻게 되나
국회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 홍문종‧전병헌 의원이 각각 방송법‧IPTV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의 중이다. 정부도 한 발 늦었지만 방송법과 IPTV법을 합치는 통합방송법을 만들고 여기에서 시장점유율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KT-KT스카이라이프의 시장점유율이 28%를 넘어서면서 일단 방송법‧IPTV법 개정안 처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국회와 방송계 안팎의 중론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2년 내 KT그룹의 시장점유율이 33%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정부의 통합방송법 제정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12월 임시국회에서는 방법론만 결정되면 관련법 처리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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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회 관계자는 “지난 정기국회 때 관련법이 법안소위에서까지 갔지만 3년 한시법 도입 등 의견이 엇갈려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연기됐다”며 “하지만 IPTV법 제정 당시 OTS와 같은 상품이 없었기 때문에 특수관계자 규정 등이 미비했던 것인데 시장이 변한 만큼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점유율 규제를 현행 33%에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점유율을 조정하자는 이 같은 주장은 합산규제와 또 다른 이슈”라며 “또 이를 감안하더라도 3년 한시법 등의 대안이 있기 때문에 12월 임시국회에서는 표결을 통해서라도 개정안 처리가 마무리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