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가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개념을 접목한 신형 스위치 마케팅에 경쟁사 시스코시스템즈를 끌어들였다. HP 네트워킹 사업부의 각급 임원들이 나서 그 성능을 강조하고, 시스코 장비는 시장에서 원하는 개방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해 눈길을 끈다. HP가 시스코보다 개방형 네트워킹 인프라를 더 잘 지원한다는 명분인데,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SDN기술의 주도권 싸움으로 확대될 조짐이 보인다.
HP는 캠퍼스네트워크 스위치 시장을 선점한 시스코와 맞붙을 기세다. 캠퍼스네트워크는 정부, 기업, 대학처럼 한정된 공간에 구축하는 지역망을 가리킨다. 즉 HP는 자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SDN 트렌드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에 발맞춰 캠퍼스네트워크용 스위치 시장을 공략할 셈이다.
우선 스티브 브라 HP 네트워킹 글로벌 제품마케팅 매니저가 지난 25일 공식블로그를 통해 이달초 출시한 신형 스위치 '5400R zl2' 시리즈를 시스코의 '카탈리스트4500E' 시리즈 킬러라고 소개하며 두 장비간 성능을 대조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5400R zl2 시리즈가 시스코 카탈리스트4500E 시리즈보다 초당 패킷 처리량, 응답지연시간, PoE+ 동시지원 포트 갯수, 랙 점유공간, 장비 보증기간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같은날 카시 샤이크 HP 네트워킹 글로벌마케팅 총괄 임원은 컴퓨터리셀러뉴스(CRN)와의 인터뷰를 통해 HP 5400R zl2 스위치는 '대기업 시장을 겨냥한 간판 제품(flagship enterprise switch)'이라 묘사하며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SMB) 고객의 대역폭 고갈을 해소할만큼 이전 세대 모델보다 나은 성능과 처리용량을 갖췄다고 자평했다.
이런 식으로 성능과 더불어 HP가 강조하고 싶어하는 부분은 '개방성'이다. HP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SDN을 위한 네트워크 표준 프로토콜 '오픈플로'에 기반한 컨트롤러기술처럼 업계 표준을 지향하는 반면 비교 대상인 시스코 카탈리스트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브라 매니저는 카탈리스트4500같은 제품이 오픈네트워킹파운데이션(ONF)의 오픈플로같은 표준 기술을 지원하진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능명세서에 '향후 지원 예정'이란 표기만 돼 있다는 지적이다. 시스코의 SDN전략과 애플리케이션정책컨트롤러(APIC) 지원 정보가 '마케팅' 차원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이어서 시스코가 SDN관련 제품으로 캠퍼스네트워크 영역을 지원한다고 거듭 말하곤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제공하는 내용에서 캠퍼스 환경에 실제 SDN에 대응하거나 그렇게 만들려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반면 HP 5400R zl2 스위치 시리즈가 지난 2006년 같은 모델명(5400R zl)으로 등장했던 장비의 후속 제품이며 이전보다 고가용성 지원을 위한 여분의 관리모듈, 모든 포트에 동시 지원되는 전력통신(PoE+), 최대 초당 2테라비트(Tbps) 속도를 지원하는 백플레인, 향상된 '오픈플로' 성능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오 네리 HP 서버 및 네트워킹 담당 제너럴매니저 겸 수석부사장도 IT매체 디인콰이어러를 통해 고객들이 기존 인프라를 크게 바꿀 일 없이 새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의 이점을 온전히 누리고 준비된 시점에 SDN으로 이전케 해줄 개방형 네트워킹 솔루션 개발에 힘써 왔다고 강조했다.
시스코는 HP가 오픈플로 기술 지원에 적극 나선 SDN 초기 트렌드를 애써 무시하다가 뒤늦게 자사가 주도권을 챙길 수 있는 협력 체제를 확보했는데, 그게 바로 오픈데이라이트다. 여기엔 시스코, 주니퍼, 브로케이드, 에릭슨, 누아지네트웍스, IBM, 레드햇, 마이크로소프트, 시트릭스, VM웨어, HP, 델 등이 주요 후원업체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사실상 시스코가 큰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오픈데이라이트는 출범이후 오픈플로 지원을 포함한 SDN컨트롤러, 가상오버레이네트워크, 프로토콜플러그인,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처를 포함한 표준 오픈소스 SDN프레임워크를 개발, 공개하고 있다. 오픈데이라이트 이름으로 공개된 소스코드만 봐도 시스코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우선 오픈데이라이트의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시스코가 제공한 소스코드 기반이다. 시스코 SDN전략의 핵심 인력은 SDN전문 자회사 인시에미네트웍스 소속 엔지니어들인데, 이들은 오픈데이라이트 기술 초안 작성자로 대거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오픈데이라이트의 SDN기술에 시스코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HP는 이런 국면에 SDN 기술 주도권을 놓칠 경우 향후 사업에서 다른 업체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기가 어렵기 때문에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시스코를 더욱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글로벌 SDN업계에 관심이 많은 한 국내 관측통 역시 27일 시스코는 상용제품 '익스텐서블네트워크컨트롤러(XNC)' 최신 버전을 내놓을 때 (그보다 성능, 기능이 부족한) 구버전 소스코드를 오픈데이라이트에 푸는 식으로 기술 주도권을 가져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그런 환경에서 자체 상용 SDN컨트롤러를 갖고 있는 HP도 입지를 키우기 위해 VM웨어, 누아지네트웍스 등 다른 회원사와 손을 잡는 분위기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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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미디어 이위크가 26일(현지시각) 보도한 HP와 익스트림네트웍스의 SDN 관련 협력도 이런 반(反)시스코 동맹전선 구축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이날 이위크는 HP 5400R zl2 스위치에 오픈플로를 지원하는 것과 익스트림이 이달초 오픈데이라이트에 합류해 오픈데이라이트 컨트롤러 기술을 통합한 자체 SDN플랫폼을 내놓은 것도 양사 협력의 일환이라고 전했다. HP와 익스트림은 기업들이 과거 투자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SDN 환경으로 만들기 쉽도록 해준다는 명분을 공통적으로 내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