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SDS에 이어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서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에버랜드를 상장키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3세 경영권 승계 작업의 포석으로 보고 향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후속조치들이 추가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3일 이사회를 열고 상장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이달 중 상장을 위한 주관사를 선정하고 구체적인 추진일정과 공모방식 등을 결정한 후 늦어도 내년 1분기까지는 상장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실적 부진 등의 이유로 삼성에버랜드 상장이 당장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던 만큼 이날 발표는 전격적이다. 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를 염두에 뒀을 때, 기업가치가 50배 이상 차이나는 삼성전자와의 합병을 가정하면 우선 실적개선과 계열사 인수합병(M&A) 등으로 회사 외형을 키우는 작업이 먼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세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날 깜짝 발표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조심스레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달 11일 급성 심근경식으로 수술을 받은 지 2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진행되던 사업 재편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 계열사로 그동안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서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다.
업계에서는 삼성에버랜드 상장을 그동안 제기돼 온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한 포석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른 일련의 후속조치들도 함께 거론된다.■삼성에버랜드 전격 상장 추진 배경은?
삼성그룹은 1990년대 후반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에게 지분을 배분하면서 경영권 승계의 사전정지 작업을 시작했다.
이 중 삼성SDS는 이미 연내 상장을 발표한 상태다. 다만 지배구조 하위에 있는 삼성SDS 상장이 지분 현금화를 통한 상속세 납부 등 승계를 위한 자금 마련의 성격이 짙었다면,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유지하는 대신 지주사 전환을 통한 지배력 강화에 활용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상장을 통해 지분상속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삼성에버랜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버랜드의 상장으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3세들은 수조원대의 천문학적 자본이득을 얻게 됐다. 상장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세 자녀의 보유 지분가치가 높아지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그룹 내 핵심 계열사에 대한 취약한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주력 계열사들이 에버랜드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할 필요성도 있다. 상장을 통해 삼성SDI, 삼성물산, 삼성카드 등 순환출자 고리에 묶인 계열사들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시장에 내다팔고 이 자금으로 자사주 지분율을 높이는데 활용할 수 있다.
또 삼성에버랜드 자체적으로는 일련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증가한 차입금을 축소하고 재무구조를 건전화시키는 차원에서도 상장이 의미있다. 향후 사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신규 M&A 추진을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도 상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향후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는?
증권가에서는 삼성에버랜드 상장을 시작으로 삼성그룹이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가 되고 그 아래로 삼성전자가 주요 IT 계열사를, 삼성생명이 중간 금융지주사로 다른 금융 계열사를, 삼성물산은 비IT 계열사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다는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현재 지배력이 확고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을 제외하고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모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0% 미만으로 3세 증여시 세금 문제로 지분을 일부 상실할 경우 지배력이 더욱 취약해지는 상황이다.
또 순환출자 고리가 복잡하고 금산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문제도 있어 법적 규제가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3세 경영이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어떻게든 변화를 맞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LG와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현재 대기업 중에서는 삼성과 현대자동차만이 제대로 지주회사 체제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고려됐다.
증권가에서 유력하게 대두되는 시나리오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각각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한 후 지주회사의 경우 삼성에버랜드와 합병하는 방안이다. 또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삼아 금융계 열사를 그 밑에 두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가칭 삼성전자홀딩스와 삼성전자사업회사로 나누고 삼성물산 역시 인적분할을 통해 삼성물산홀딩스와 삼성물산사업회사로 분할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삼성전자홀딩스와 에버랜드를 합병하고 이어서 삼성물산홀딩스와 삼성전자홀딩스를 합병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연구원은 또 3개 합병 지주회사가 삼성생명 지분을 40% 이상 소유하게 되는데 이를 수평분할할 경우 자연스럽게 삼성생명을 금융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삼남매 간 분할 구도 어떻게?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남매의 기업 분할 구도는 아직 불명확한 부분이 남아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금융 계열을 이끌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리조트·중화학 계열을,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이 패션·미디어 부문을 이끌 것이라는 큰 그림이 대두되지만 아직 건설 부문과 중공업 부문이 남아있다.
현재 상태로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삼성SDI고 삼성SDI는 삼성전자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물려받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까지 차지하는 구조가 된다. 이부진 사장은 건설 부문에 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부진 사장으로서는 삼성SDS 상장을 통한 현금화로 삼성SDI가 가진 삼성물산 지분을 일부 사들일 수 있지만 전체 지분을 매입할 여력이 없는 만큼 건설 부문이 이부진 사장에게 넘어갈 경우 삼성물산을 2~3개 회사로 분할해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부진 사장이 삼성물산의 건설 부문만을 가져가고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삼성에버랜드의 조경·건설 부문과 합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다만 현재시점에서는 이부진 사장 보다는 이재용 부회장쪽으로 건설 부문 향방의 무게추가 기울어진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직 호텔과 패션, 미디어 부문에 대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삼남매가 당장 계열분리에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서둘러 계열분리를 하는 대신 당분간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남매가 일종의 전문경영인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기업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사업재편에도 가속도 붙는다
동시에 사업 연관성이 높은 회사 간의 지분관계 정리와 시너지 창출을 위한 사업재편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이미 삼성그룹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사업재편을 통해 각 계열사들은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고 중복사업들을 대거 정리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삼성SDI 지분 추가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SDI가 제일모직과 합병하면서 전자의 지분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삼성물산은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삼성SDI가 축적해놓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굳이 필요없는 삼성SDI 지분을 삼성전자에 넘기고 그 대가로 삼성중공업이나 삼성테크윈 등 계열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계열사 간 인수합병 방안으로는 삼성전기와 삼성SDI를 추가로 합병하는 방안도 거론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상장을 추진하는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삼성전자와의 합병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거론됐던 기업가치 향상과 주식시장 상장 중에서 상장 문제가 해소된 만큼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작업들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에버랜드가 수익성이 높은 호텔신라의 면세점 사업을 흡수합병하거나 제일기획, 건설 등 계열사를 인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상장을 통해 마련된 재원이 이를 위한 실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기업들의 사례에서도 오너 지분율이 높은 SK C&C나 현대 모비스 기업가치가 계속 높아졌던 사례가 있다”면서 “또 그동안 계열사 간 불필요한 경쟁을 많이 했는데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면서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3세 경영권 승계 걸림돌은?
업계에서는 삼성그룹이 3세 승계를 위해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이나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때처럼 사회적인 부담을 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세금 문제는 최대한 정공법으로 해소하면서 공익재단이나 인적분할 등 현재 법적인 테두리에서 가능한 방안들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익재단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우선 거론된다.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삼성생명 지분을 공익재단에 넘기거나 삼성SDS 지분을 삼성전자에 넘기고 신주를 발행받는 방식으로 지분 보유를 하는 등의 방식이다.
다만 그동안 재벌들이 별다른 규제가 없는 공익재단을 특정계열사에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증여세나 상속세 세금 문제와 소유 제한 등 규제를 피하면서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규제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한다.
이와 함께 삼성이 향후 계열사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 제도와 의결권을 최대한 활용할 가능성도 높은 만큼 자사주 제도에 대한 헐거운 규제 문제도 수면 위에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해외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하는 등 규제가 있지만 국내에는 관련 법이 없다. 때문에 해외 사례들처럼 법이 변경되면 삼성그룹 전체 지배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도 지배구조 문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수 있는 기준을 현행 취득원가에서 재무제표상 가격인 공정가치로 계산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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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법에 따르면 보험업은 타 금융업권에 비해 많은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수 있었지만 개정안이 통과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삼성전자 지분을 해소해야한다. 금융업권의 자산운용규제는 외환위기 이후 정비됐지만 보험업만 유일하게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뿐이어서 특혜논란이 불거졌던 부분이다.
업계관계자는 “삼성그룹이 3세 승계 과정에서 과거 에버랜드나 삼성SDS 사례처럼 여론의 악조건을 무릅쓰면서 세금 회피에 나설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보고 있다”면서 “다만 공익재단이나 자사주 제도에 대한 현행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고 보험업법 역시 삼성에 대한 특혜논란이 꾸준히 제기된 만큼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그룹 지배구조 전체에 껄끄러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