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초일류 기업이면서도 구글 등 다른 IT 회사와 달리 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해 인색하기 그지 없던 애플이 사상 처음으로 조(兆) 단위 규모의 대형 M&A를 성사시켰다.
비츠라는 음악 기업을 우리 돈 3조원이 넘은 가격에 인수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팀 쿡 체재의 애플이 본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대규모 M&A를 하필이면 왜 음악 분야의 기업으로 택했는 지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언론은 애플이 우리 돈 3조원 규모에 음원서비스 및 음향기기 업체인 비츠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애플은 비츠 브랜드를 그대로 살려 음원 사업을 하게되며 비츠는 자회사 형태의 별도법인으로 운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비츠 공동창업주인 닥터 드레와 지미 아이오빈도 함께한다.
■애플은 왜 하필 비츠를 인수한 것인가
비츠는 음악 애호가라면 알만한 업체지만 IT업계와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가의 닥터드레 헤드폰으로 유명세를 탔을 뿐 비츠의 주요 사업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비츠는 음원 서비스, 음향기기 업체로 힙합 가수 닥터 드레, 제작자 지미 아이오빈이 만들었다. 이들 창업자도 애플에 합류한다.
비츠는 비츠뮤직을 통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내에서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비츠 인수로 닥터 드레, 지미 아이오빈도 애플에 합류하게 됐다. 닥터 드레는 미국 힙합계에서는 거물이다. 지미 아이오빈은 U2 등과 작업한 음반 제작자로 아이디어가 넘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이오빈은 스티브 잡스와는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IT업계 관계자는 “닥터 드레는 미국 서부 지역의 음악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높은 인물”이라며 “애플은 이번 인수로 음악계 거물, 제품, 서비스까지 모두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닥터 드레 등은 인수가 아니라면 애플이 데려오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아이오빈, 닥터드레는 정체상태에 놓인 아이튠즈 서비스 확장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애플에 제공하는 동시에 미국 서부지역의 음악계에 애플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됐다.
음원 서비스 업계는 음반 제작업계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음원을 찾아 이를 서비스할 수 있도록 계약하기까지 신경전이 계속된다.
애플의 음원 서비스인 아이튠즈는 미국 음원 다운로드 산업의 하락 속에 정체를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음원 다운로드 횟수가 감소 추세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밀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 싱글 다운로드 횟수는 전년대비 6% 줄어든 13억 트랙에 그쳤다. 반면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판도라 등은 7천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모았다.
■비츠 인수, 팀 쿡 체제 애플 무엇이 달라졌나
파이낸셜타임스, 블로그 전문 사이트 복스 등은 팀쿡 스타일의 인수 방식에도 주목했다. 인수 대상, 방식에서 기존 애플이 취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분석이다.
복스는 “스티브 잡스라면 비츠를 절대 인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잡스 시절 애플과 팀 쿡 체제를 비교하기도 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CEO로 있을 때도 꾸준한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했다. 팀 쿡이 잡스와 달랐던 점은 인수 대상이다. 잡스 시절 애플이 인수했던 업체는 주로 소프트웨어, 반도체 등 특화 영역에 국한됐다.
잡스는 국한된 지엽적인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업체를 인수해 애플 제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 반도체 업체 PA세미 등이 대표적이다. 잡스에게 인수란 기술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 규모도 작았다. 그동안 애플의 최대 인수 사례는 운영체제 업체인 넥스트였다. 애플은 넥스트를 4억달러(한화 약 4천억원)에 사들였다. 넥스트는 그 규모가 작았을 뿐만 아니라 독자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 업체들은 아니었다.
팀 쿡은 비츠 브랜드를 인수 후에도 남겨두기로 했다. 비츠의 브랜드를 단 음원, 영상기기 사업은 지속될 전망이다. 자회사 형태로 애플과는 교류를 하겠지만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구축할 예정이다.
비츠는 게다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업체이기도 하다. 영상기기 분야에서 닥터드레 헤드폰은 우리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잡스가 소규모 인수, 특화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를 선호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외신에서는 팀 쿡이 애플의 혁신 역량 부재를 M&A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애플은 그동안 수십건에 이르는 인수 건을 진행하면서 단 한번도 공식 발표를 하지는 않았다. 비츠 인수만큼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알렸다.
■팀 쿡, 자기 색깔내기 본격화
비츠 인수에 대해서는 애플이 팀 쿡 체제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스티브 잡스가 독불장군처럼 애플을 손 안에 넣고 회사, 제품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했다면 쿡 CEO는 이와는 다르다.
잡스는 1997년 애플에 돌아왔을 때 자신의 색깔과 맞지 않는 제품에 대해서는 모두 개발계획을 취소했다. 자신이 관여할 수 있을만큼만 소수의 제품을 남겼다. 잡스의 완벽주의 속에 탄생한 제품이 아이맥, 아이팟, 맥북, 아이폰, 아이패드다.
잡스는 주주배당보다는 애플의 미래 투자를 위해 현금을 보유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자선 프로그램에도 인색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 CEO로 취임한 팀 쿡은 잡스와는 달랐다. 팀 쿡은 나홀로 권한을 행사한 스티브 잡스와는 달리 협력을 더 중요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팀 쿡은 SCM의 귀재로도 불린다. SCM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업체들과의 협력이다.
팀 쿡 체제에서 애플은 주주배당부터 변했다. 잡스는 주주배당에 인색했던 반면 팀 쿡은 주주배당을 시작했다. 매칭펀드를 활용한 자선 프로그램도 확대했다. 애플은 현재 3개 제품에 대해서 판매 시 일정 금액을 모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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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을 중요시하는 성격의 팀 쿡은 비츠를 자회사로 운영하도록 하면서 협력을 통해 애플 성장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애플은 최근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의 성장률 둔화 속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잡스 사후 혁신의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애플 주가 역시 올해 들어 11% 이상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