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심 인터넷 주소 관리 끝내야"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 뜨겁게 달아올라

일반입력 :2014/04/10 17:52    수정: 2014/04/10 18:39

남혜현 기자

미래 인터넷은 누가 주도해야 하나. 정부가 인터넷 관리 감독에서 한 발 물러서면 상대적으로 기업의 영향력만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시민 사회, 개발도상국을 어떻게 더 많이 인터넷 거버넌스에 참여시킬 수 있을까. 미국이 관리하던 인터넷 주소는 누가 맡아야 하나.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래 인터넷 생태계 주도권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라서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의 도감청 사태가 폭로된 '스노든 사건' 이후, 미국 주도의 인터넷 관리감독 체계에 대한 회의도 크게 일었다.

여기에 미국 정부도 내년 9월 만료되는 인터넷주소기구(ICANN)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46년만에 미국이 인터넷 주소 독점 관리를 포기하는 셈이다. 미국으로선 자국 주도 인터넷 질서를 크게 바꾸지 않는 한도 내에서 권한을 이양하려 하겠지만, 다른 나라, 또는 시민사회에는 새로운 인터넷 거버넌스의 판을 짜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이런 가운데 오는 23일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인터넷 거버넌스 미래를 위한 글로벌 멀티스테이크홀더 회의'가 열린다. 멀티스테이크홀더를 우리 말로 풀면 '다자간 협력체계'인데, 국가부터 시민까지 다양한 주체가 함께 인터넷을 운영해 나갈 효과적 방법을 찾자는데 목적을 뒀다.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도 의견을 제출, 회의에 참석한다. 그에 앞서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는 전문가들이 모여 인터넷 거버넌스를 둘러싼 아젠다를 훑어보고, 내용을 공유하는 세미나를 10일 오전 서울 잠실 광고문화회관에서 열었다.

■인터넷 거버넌스, 먹는건가요?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정의다.

인터넷은 누구나 쓰는 도구지만, 세세한 운영에는 여러 권력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때문에 논의의 핵심을 쉽게 정리하지 않으면 누구나 참여하라고 말하는 그 거버넌스는 결국 어려운 말에 갇혀 그들만의 잔치에 끝날 수 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미래창조과학부 송경희 인터넷정책과장도 지난 10년간 인터넷 거버넌스가 논의되어 왔지만 합의가 되지 않은 이유는 그 정의가 너무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기조발표를 한 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인터넷 거버넌스를 각국 정부, 민간 분야, 시민 사회가 인터넷 진화와 사용방법을 결정하는 공통의 원칙, 규칙, 기준, 의사결정 절차 및 프로그램을 각자 역할에 맞춰 발전시키고 응용하는것이라고 지난 2005년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 내린 정의를 근거로 소개했다.

쉽게 말하자면 인터넷을 잘 굴러가도록 하는 합의체를 가능한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만들고, 또 각자 역할에 맞춰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법무법인 김앤장 소속 백명훈 위원은 인터넷 자원이 인류사회의 중요한 글로벌 공공자원임을 인식 전환하기 위해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다자간협력체계로 넘어간다. 오병일 진보넷 위원은 진정한 다자간협력체계 모델을 구현해야 한다며 가능한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참여, 투명성, 책임성, 균형성, 취약 그룹에 대한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인터넷 생태계를 운영하는 주체가 강대국 위주로 꾸려져 왔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주체로 개발도상국의 힘이 커져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었다. 또 정부 외에 시민사회의 영역이 커져야 제대로 된 '거버넌스' 성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전했다.

오 위원은 또 인터넷은 사적인 망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민들의 자산이라는 공공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이 있다며 립서비스로 다자간 참여를 말하는 것이 아닌, 효과적이고 유연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경희 미래부 과장도 다자간 협력체계를 주요 제안으로 내놨다며 앞으로 ICT 선도국으로서 보다 구체적인 구현 및 실천방안 등에 대한 의견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 사회 미국 중심 인터넷 주소 관리 끝내야

국제인터넷주소기구(ICANN)와 인터넷 할당번호 관리기관(IANA)의 기능 세계화에도 논의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다른 나라 정부들 역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로, 올해 브라질 회의에 상정된 안건 중 핵심이기도 하다.

박윤정 한국뉴욕주립대 교수는 미국 스노든 사건을 계기로 미국 행태를 용납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독일이 중심이 되어 제기됐다며 ICANN 거버넌스를 다시 생각하자는 정치적 메시지가 전달됐고, 올 10월 열리는 ITU 전권회의에서도 각국 정부들도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브라질 회의에 참석하는 국가들이 ICANN 원칙과 로드맵에 대한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ICANN 운영 방법을 놓고 미국과 다른 국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민병원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은 기존 ICANN 중심 거버넌스는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인터넷 거버넌스 변화에 적절하게 적응하고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대로 회의 주최국인 브라질은 보다 급진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ICANN을 비롯한 인터넷 거버넌스가 신로 하락의 문제에 부딪히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감시, 첩보 활동에 대한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중앙집중적인 인터넷 거버넌스 구조를 분산형으로 바꿔 소수에 이익과 권한이 집중되는 현재 체제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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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서도 ICANN 한계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놨다. ICANN 이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및 국제기구와도 협약을 체결하고, ICANN의 법적 지위를 국제법 및 국제 규정에 두자고 주장한다. 미국 국내법에 따른 ICANN 지위를 바꿔야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기존 인터넷 거버넌스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글로벌 원칙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부 대표들이 모이는 국제연합(UN) 등 공신력 있는 기구에서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준칙을 만들자는 것이다. 아울러 스노든 사태 등이 미국 주도 하의 거버넌스에서 생긴 문제이니 만큼 러시아, 중국, 브라질, 인도 등 브릭스 국가들의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