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삼성전자가 출시한 첫 웨어러블 기기, 갤럭시기어는 갤럭시노트3와 첫선을 보였지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호불호를 떠나서 디자인이 지나치게 투박했으며 배터리 지속시간이 짧아 한 번 충전해서 오래 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나마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가능성을 보고 ‘노력상’을 주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낙제점’이었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시도한 퍼스트무브에 대한 기대감에 못미쳤기 때문이다.
다음달 출시를 앞둔 기어2는 이러한 지적을 의식해 디자인과 배터리 지속시간을 보완했다. 삼성전자 안드로이드 제품 브랜드인 ‘갤럭시’를 떼어낸 대신 오픈소스 운영체제 타이젠을 썼다. 초소형 휴대용 기기에는 버거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걷어내고 배터리 지속시간을 늘린 것이다. 카메라 위치를 옮겨서 손목끈도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얼마나 쓸만한 스마트워치가 됐을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카메라 위치 이동…착용감은 그대로
기어2의 크기는 가로·세로 크기가 58.4×36.9mm로 갤럭시기어의 56.6×36.8mm와 비교하면 크게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다만 두께는 11.1mm에서 10mm로, 무게는 73.8g에서 68g으로 다소 줄었다. 1.63인치(41.4mm) 320×320 화소 디스플레이도 그대로다. 다만 갤럭시 기어에서 도마에 오른 나사 홈 방향 정렬 문제는 나사를 아예 삭제함으로써 해결했다. 외형만 보면 나사가 있는 것은 갤럭시 기어, 없으면 기어2로 구분된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카메라 위치와 새로 추가된 적외선 센서·심박수 센서다. 먼저 카메라를 보면 손목끈(스트랩)에 달려있던 것을 본체 위로 옮겼다. 카메라가 손목끈에서 사라지면서 손목끈도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바꿔달 수 있다. 카메라 옆에는 리모컨처럼 가전제품을 제어하는 데 쓰는 적외선 센서를 달았다. 심박수 센서는 함께 출시된 웨어러블 피트니스 기기 ‘기어핏’과 마찬가지로 손목과 가까운 화면 아래 달았다.
디자인에 크게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느 손목시계처럼 가볍게 손목에 두를 수 없다는 갤럭시기어의 단점은 그대로다. 화면이 작아서 손목을 벗어나지 않거나, 화면이 크더라도 손목 곡선을 따라 감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화면도 큰데다 시계 몸체도 세로로 긴 직사각형이다. 게다가 손목끈도 두꺼워서 손목이 가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고역스럽다.
■배터리 이용 시간 늘었다…최대 3일
기어2 역시 기어핏과 마찬가지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삼성앱스를 통해 갤럭시 스마트폰에 ‘기어 매니저’를 설치한 다음 블루투스 페어링을 거쳐야 한다. 한 번 페어링을 거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갤럭시 스마트폰과 연동되며 사진이나 동영상, 심박수나 만보계 등 각종 정보를 주고 받는다.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타이젠을 썼지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데이터를 주고 받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다만 안드로이드를 쓴 갤럭시기어와 달리 루팅 등을 통한 개조는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최대 1GHz로 작동하는 듀얼코어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쓴만큼 성능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어야 하지만 배터리 소모를 낮추기 위함인지 화면 전환이나 앱 실행 속도는 썩 빠르지 않다. 내장 저장 공간은 4GB, 메모리는 512MB로 갤럭시기어와 같다.
정사각형 슈퍼 AMOLED 디스플레이는 갤럭시노트2에도 쓰였던 방식인 S스트라이프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한 픽셀 안에 빛의 삼원색인 레드(R), 그린(G), 블루(B)를 모두 넣어 보다 정확한 색상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배터리 용량은 300mAh로 갤럭시기어보다 15mAh 정도 줄었지만 배터리 이용 시간은 최대 3일까지로 늘어났다는 것이 제조사 설명이다.
■리모컨 기능 ‘활용도 낮다’
기어2에 추가된 기능 중 하나는 워치온 리모컨이다. 갤럭시노트3·갤럭시S5에 내장된 워치온 앱은 리모컨 기능과 함께 놓쳤던 방송이나 앞으로 방영될 방송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췄다. 기어2의 워치온 리모컨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리모컨 기능만 빼냈다. TV와 셋톱박스를 조작하는 기능을 갖췄고 간단한 인식 과정을 거치면 바로 쓸 수 있다. 장애물만 없다면 2-3미터 거리에 떨어진 TV도 무난히 조작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갤럭시 스마트폰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기어2에 리모컨 기능이 굳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워치온 기능은 전세대 스마트폰인 갤럭시S4부터 이미 내장되어 있으며 갤럭시노트3도 마찬가지다. 한 손에 들고 화면만 터치하면 되는 스마트폰과, 손목을 TV쪽으로 돌린 다음 다른 손으로 작은 화면을 콕콕 터치해야 하는 기어2 중 어느쪽이 더 편리한지는 자명하다.
심박수 측정 기능은 기어핏과 동일하다. 측정 아이콘을 누른 다음 잠시 기다리면 현재 심박수가 나타나며 측정된 심박수는 S헬스 앱으로도 전송된다. 혈관 변화를 파악하는 센서 특성상 손목 중앙을 지나가는 혈관과 센서가 밀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심박수 센서가 기어핏과 달리 정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 달려 있다. 혈압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정확한 측정이 가능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앱 위치 쉽게 바꿀 방법 없다
카메라 위치가 바뀌었지만 사진 촬영 화질은 큰 차이가 없다. 사진은 최대 1920×1080 화소, 동영상은 1280×720 화소로 찍는다. 밝은 곳에서 찍는 것이라면 그럭저럭 볼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풍경이나 인물사진을 찍는데는 적합하지 않다. 오토포커스 기능도 있지만 화면을 터치해 초점을 찍으면 바로 사진이 찍히며 찍은 사진은 스마트폰 갤러리에 동기화된다.
현재 기어2에서 쓸 수 있는 기능은 심박수, 카메라, S보이스, 보이스메모, 연락처 등 매우 다양하며 삼성전자가 개발자들에게 SDK를 공개하면서 앞으로 설치해 쓸 수 있는 앱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앱을 화면마다 입맛에 맞게 배치하기 쉽지 않다. 작은 화면에 나타난 앱 아이콘을 터치한 다음 일일이 끌어서 다른 화면으로 옮겨야 한다. 더 큰 화면을 단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는 별것 아닌 일이지만, 1.84인치에 불과한 기어2에서는 매우 고통스럽다. 스마트폰이나 PC화면처럼 더 넓은 화면에서 편집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우외환’에 내몰린 기어2
기어2는 디자인이나 배터리 지속시간에서 전작인 갤럭시기어보다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갤럭시기어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모호한 정체성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시계를 비밀무기로 쓰는 제임스 본드나 명탐정 코난이라면 몰라도 고만고만한 기능이 너무 많이 얽혀 있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손목형 컴퓨터라기에는 성능이 빈약하고, 시계형 핸즈프리라 하기에는 거추장스럽고 착용이 불편하다.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이라면 시계처럼 액세서리로 쓸 수 있겠지만 두껍고 갑갑한 디자인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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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심박수 센서와 리모컨 기능이 더해지며 혼란은 더 심해진 상태다. 피트니스 기능을 내세우기에는 부피와 착용감에서는 동생뻘인 기어핏에도 밀린다. 기어핏은 날렵해서 차기도 쉬운데다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달아 차기도 쉽고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새로 추가된 리모컨 기능도 마찬가지다. 음식점이나 술집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 대형TV 채널을 남몰래 바꾸고 싶을 때는 유용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여기에 구글과 삼성전자 경쟁사가 연합한 안드로이드 기어 진영도 문제다. 기어2는 갤럭시 스마트폰만 연동되지만 안드로이드 기어를 쓴 기기는 모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태블릿과 연동된다. 안드로이드 기어 용으로 개발한 앱도 모두 호환된다. 착용감에서는 기어핏을 포함해 다른 웨어러블 피트니스 기기에 밀리고 세력 싸움에서는 안드로이드 기어에 밀린다. ‘갤럭시’라는 이름도 뗀 마당에 굳이 기어2를 갤럭시 스마트폰에만 묶어 둘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