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 전체를 돕는 일을 하려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연결'이다.
스타트업과 선도 기업, 정부와 국내외 투자자를 한 데 엮어 제대로 된 IT 창업 판을 벌여 보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네이버가 5년간 100억 원을 후원하고, 정부와 인터넷·통신 기업이 협력해 만든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이하 얼라이언스)'가 지난 18일 문을 열었다.
사령탑은 기자 출신으로 다음커뮤니케이션 글로벌 센터장, 라이코스 대표 등을 역임한 임정욱 씨가 맡았다. 한국과 미국의 IT 생태계를 두루 겪은 그는 인터넷에서 '에스티마'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 임 센터장을 20일 오후 서울 삼성동에 자리한 얼라이언스에서 만났다.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위한 사랑방을 만들 겁니다. 스타트업을 활성화하고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돕는 게 미션이에요. 당장 한국 생태계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거창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한 두 가지라도 의미 있는 일을 지금 하겠다는 거죠.
얼라이언스 출범 목표는 정확하다. 투자가 아닌 생태계 조성이다. 돈이라면 정부나 벤처투자사들이 훨씬 많이 풀 수 있다. 스타트업에 돈과 경험이 필요하다면 얼라이언스는 그 두 가지를 얻도록 '관계'를 만드는데 초점을 둔다. 여러 주체가 한데 어우러지도록 이어주고 묶어주겠다는 것이다.
임 센터장이 보기에 관계의 부재는 스타트업 성장에 치명적이다. 예컨대 내 아이디어가 진짜 괜찮은데 한국에선 몰라준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다 투자할 텐데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현실적 조언은 꼭 필요한 처방이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멘토를 만나는 일은 다수 창업자에겐 하늘의 별따기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대기업과 연결이에요. 전체 생태계 사람들이 같이 만나서 공부하고 조언할 수 있는 분위기의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경쟁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남에게 베푸는 '선의'가 돌아다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스타트업으로 성공하면 거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써야 한다. 그가 말하는 생태계 구성의 조건이다. 우선 대기업이 스타트업들을 끌어주고, 이렇게 탄생한 유망 기업들이 또 다른 스타트업에 조언하는 구조는 전체 생태계를 튼튼하게 한다.
이람 캠프모바일 대표, 민윤정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사, 윙버스를 창업한 카카오 김종화 팀장이 얼라이언스의 비전에 공감했다. 이들은 4월부터 '오피스아워 포 스타트업(가칭)' 세션을 통해 스타트업들과 만난다. 이들은 허황된 성공 신화 대신, 스타트업들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 조언을 할 예정이다.
물론, 대기업 역시 스타트업과 만남에서 얻을 게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데 스타트업과 만남이 다소 혁신에 둔감한 대기업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외국처럼 대기업이 유망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창업자들은 또 다른 스타트업을 만드는 환경도 가능하다.
이렇게 빨리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요즘 상황에서는 스타트업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안테나를 세워 중요한 새 기술에 일찍 투자할 기회를 대기업이 갖게 되는 거죠. 아니면 인수를 한다든지, 인력 교류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구글도 이런 일들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네트워크를 통해 경쟁력을 쌓으면 글로벌 진출도 꿈같은 일은 아니다. 적어도 닷컴 버블이 있던 2천년대 초반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에는 벤처는 물론 대기업들도 미국 시장에 나갔다가 줄줄이 깨지고 들어왔다.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인정받은 한인들도 많고, 현지 사정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데 안된다고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하죠. 예전에는 맨땅에 헤딩하기 였고, 인맥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돈만 쏟아 부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정보도 많고 똑똑한 친구들도 많아요. 한국도 국제화 돼서 외국에서 다 아는 기업도 있고요.
환경의 변화가 크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얼라이언스는 생태계 구성원들을 엮어내려는 시도를 당장 오는 25일 경기도 분당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연다. 컨퍼런스 주제는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이다. 강연자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해본 경험담을 공유한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한인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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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들이 미국에서 뿌리 내리고 자리 잡는데 거의 100년이 걸렸어요.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끈끈하게 챙겨주고 밀어주죠. 한인들의 이민 역사는 그보다 짧지만 2·3세대까지 오면서 자리를 많이 잡았어요. 성공한 이들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건데, 서로 결속하도록 도와주고 한국에서 진출하는 스타트업들과 연결할 수 있다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중 임 센터장의 휴대폰 진동은 끊이지 않았다. 센터 문을 연지는 이틀에 불과한데 정부 부처부터 기업, 창업을 하려는 이들까지 그를 찾는 이는 다양했다. 이들 모두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이다. 얼라이언스가 그의 말처럼 '사랑방'으로 자리잡는다면 한국 스타트업들에 조금은 기댈 언덕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