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혁명 이끄는 손안의 전자책

여전히 뜨거운 감자, 전자책 혁명이라는 파도

전문가 칼럼입력 :2014/01/14 09:54    수정: 2014/01/14 17:09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총장

“그들은 유통의 마술사이지만 열정이 없는 독자들의 영혼을 가두는 기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9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 개막식에 맞춰 위르겐 부스 프랑크푸르트도서전 대표가 전자책에 대해 쏟아낸 혹평이다.

하지만 실제 프랑크푸르트도서전 현장을 보면 3홀에서부터 8홀까지 곳곳에 디지털 이노베이션을 주창하는 핫스팟을 설치해 놓고 있었다. 4~5년 전에 4.2홀에 부분적으로만 설치되었던 디지털 섹션이 이제는 거의 모든 홀로 확대되고 있었다. 우리의 경우도 종이책 출판사보다 전자책 기업들이 1.5배 많은 수준으로 늘어났다.

앞에서는 전자책 선두그룹에 대한 혹평을 쏟아내고 뒤에서는 디지털 이노베이션을 확장해가는 이중적 태도를 취한 것이다. 그는 왜 이율배반적인 행보를 했던 것일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거나, 아직도 도서전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종이책 출판사를 위한 노련한 정치적 언사일 것이다.

더욱이 현장에서는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관계없이 아이패드와 대형 디지털TV 앞에서 콘텐츠를 홍보하는 것은 이제 기본이 되었다. 세계 스마트폰 사용인구는 26억 명에 달하고 국내는 3천7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 종이책 분야 리더들은 물론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하는 출판인 대부분은 정체성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 잉그램 회장은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고 있는데 갑판 위에서 의자 배치나 다시 하고 있을 것인가?”라고 비꼬았고, 제임스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는 “출판사들은 디지털혁 명이라는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겨야 할 때”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정체성 혼란에도 실험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출판사들은 과연 어떤 준비와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해외의 경우 하퍼콜린스나 펭귄그룹 같은 대형 출판그룹의 실험은 보다 거시적이고 전략적인데 반해, 국내 종이책 출판사는 EPUB과 PDF, 앱북(APP-Book) 사이를 오가며 어떻게 하면 종이책의 레이아웃을 정확하게 표현해 낼 것인가에 집중하는 경향이다. 종이책에 비해 아직 매출이 크지 않다보니 전자책에 대한 투자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경우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26일 파주전자출판지원센터에서 개최된 <한일 전자책 컨퍼런스>에서 일본 PHP연구소 오타 토모카즈 전자출판부 수석 디렉터는 출판사들이 전자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IT를 이해하는 전자책 담당자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전자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편집자와 영업자 사이에 커다란 공백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의 모 출판사 전자책 담당자는 종이책 담당자 사이에서 ‘안녕하지 못한 전자책 종사자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출판사들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 PHP연구소의 경우 저렴한 가격의 분량이 짧은 가격의 전자책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독서 호흡이 짧고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한 독자들의 특성을 감안한 전략이다. 그래고 앞으로 이러한 전략은 이미 출간된 종이책을 대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책 출간없이 오직 전자책으로만 출간되는 콘텐츠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라고 오타 토모카즈 씨는 말했다. 전자책이 보편화되어 있는 미국, 종이책 대비 전자책이 8~15%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중국과 캐나다, 그리고 우리보다 내수시장이 큰 일본에 비해 한국은 분명 약점이 많은 지역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그레이 50가지 그림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열혈강호』,『식객』 등의 앱북이 누적 10만부를 넘어서기도 했다. 퍼블스튜디오의 앱북 동화책 『옆집 아이』는 국내에서 2만 5천부, 해외에서 2만 5천부 통합 5만부 이상 팔리기도 했다. 또한 이펍(EPUB) 전자책 분야에선 그동안 장르소설이 전자책 시장의 70~80%를 차지하여 콘텐츠 쏠림 현상이 심했다. 하지만 장르소설이 50%대로 조정되고 대신 인문사회, 경제/경영, 자기계발 등의 분야가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기반은 교보문고의 샘서비스, 예스24의 크레마원 단말기, 유페이퍼 오픈마켓의 해외플래폼 확대, 북큐브네트웍스의 1억원 e작가상공모전, 바로북의 국내 콘텐츠 해외 배급, 네이버의 웹소설 등 다양한 실험이 맞물리면서 출판사들의 변화와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대기업이 참여하는 전자책 사업

국내에서 전자책 사업에 대한 크고 작은 실험은 외외로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다양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전자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전자책 유통채널과 구글코리아를 제외하고 대교출판의 프렌디북, 인프라웨어의 팔라우, 유엔젤의 토모키즈, NHN의 네이버북스, 카카오의 카카오페이지, 신세계I&C의 오도독, 삼성전자의 리더스허브, SK플래닛의 티스토어, KT의 올레이북, LG유플러스의 유플러스앱마켓, GS와 알에이치코리아 합작법인 탭온북스, CJ헬로비전의 컬처인터넷 등 10여 개가 넘는다.

이중에서 이제 막 시작하고 있는 탭온북스와 CJ헬로비전을 제외하고 유의미한 매출을 일으키는 곳은 네이버북스, 티스토어, 유플러스앱마켓 정도다. 나머진 사업을 이미 접었거나 존재감을 부각시키지 못한채 고심하고 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처음 출발할 때 자본력 또는 이미 확보하고 있는 고객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컸다. 자신들이 무얼 하든 갖다붙이면 성공하리라는 자만심이 얽히고 설켜있는 복잡한 전자책 생태계를 제대로 보는 눈을 멀게 했던 것이다. 물론 이미 안착을 한 곳도 따지고 보면 장르소설 분야 따라하기에 머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에 모 기업 전자책 담당자가 한국전자출판협회를 찾아왔다. 그는 내게 물었다. 다른곳과 차별화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나는 “해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수백종을 비싼 선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죄다 사다가 국내에 한꺼번에 풀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물론 비꼬는 말이었다.

스마트 기기에서 게임, 교육과 함께 전자책은 필수 콘텐츠이기 때문에 하드웨어, 이동통신, 포털 같은 대기업들의 진출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전자책 업계에서는 대기업의 자본력이 들어와 빈약한 전자책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들은 전자책 전문업체와의 M&A 또는 합작 대신 똑같은 콘텐츠 자원을 경쟁적으로 확보하거나 똑같은 비즈니스모델을 따라했을 뿐이다. 다만 GS와 알에이치코리아가 합작한 탭온북스나 CJ헬로비전과 예스24가 손을 잡은 컬처인터넷 등은 출발부터 선례와 다르기 때문에 또 새로운 기대를 해본다.

■글로벌과 콘텐츠 파워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자책 업계는 2009년부터 중장기 해외 진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지난해 베이징국제도서전이나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 국내 기업 20여개가 참가했다. 콘텐츠, 기술/제작 수출, 플랫폼 현지화 같은 뚜렷한 목적을 가진 덕분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잉그램, 방정, 하퍼콜린스, 오버드라이브, 코보 같은 굵직한 기업들과 파트너를 체결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이탈리아, 독일, 아르헨티나, 러시아, 스위스, 인도, 오스트리아, 말레이시아, 폴란드 등 20여 개 국가의 출판사들과도 상담을 진행중이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가 가지고 나간 콘텐츠는 앱북으로 만든 교육용 콘텐츠와 만화, 그리고 한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는 콘텐츠 원소스에 불과했다. 드라마 콘텐츠 원소스는 중국에서, 교육용 콘텐츠와 만화는 영미권이나 유럽권에서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 외 대형 프로젝트로 수출할 만한 콘텐츠 자원은 거의 없었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국내에서 창작되고 개발된 중대형 콘텐츠가 없다는 것은 내수 시장 활성화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치명적인 약점이다.

한때 영세한 콘텐츠 업체들은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 단일 앱북을 만들어 지난 몇 년간 많은 투자를 해왔다. 하지만 단일 앱북은 하루에도 수백개, 수천개씩 쏟아져 나오는 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소비자들은 아무리 좋은 앱북이 출시되어도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는 것을. 또 스마트폰에 설치된 단일 앱들은 친숙하거나 자주 사용하는 앱을 제외하곤 삭제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열린책들 세계문학』같은 시리즈물이나 가치가 있는 것들만 스마트 기기 내에 오랫동안 보존되고 활용될 수밖에 없다.

콘텐츠 업체들 대부분이 영세하다 보니 중대형 프로젝트로 탄생한 콘텐츠가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콘텐츠를 발굴하고 생산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그 효용성과 가치가 하락될 것은 분명하다. 내수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전략 콘텐츠나 킬러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한 출판사와 콘텐츠 업체들의 전략적 실천이 절실하다.

■21세기는 등화가친이 아니라 전자서가친(電子書可親)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중교통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도 앉아서나 누워서나 스마트폰에 집중한다. 중독이라 할만큼 지배적인 행위로 자리잡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은 너무 많다. 전화, 메모, 기록, 교통검색, 소셜네트워크, 금융, 쇼핑은 기본이고 게임, 온라인 강의 등 스마트폰으로 이뤄지지 않은 일상이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OECD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세계에서 책을 가장 읽지 않는 독서 후진국이라고 한다. 종이책 독서율이 낮기 때문에 전자책 독서율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청소년들이 성인들의 독서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스마트폰에 더욱 열중한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 사용엔 열중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성인이나 청소년이나 똑같다. 어른들이 책을 멀리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은 책을 읽어야 해”라고 할순 없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독서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판사나 콘텐츠 업체들이 질좋은 전자책 콘텐츠를 대량으로 발굴하고 보급하는 데에 힘을 쏟는 것과 동시에 책읽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낙인을 아로새기는 것보다, 잠을 자기 전까지 손에 떼지 않는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오히려 책읽는 사회를 만드는게 정답이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서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같은 하드웨어 단말기 업체나 이동통신사들이 스마트 기기를 출시하거나 판매할 때 전자책 어플리케이션을 필수 프리로드(Pre-Load) 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판매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는 청소년 권장도서나 교양도서 같은 필독서 탑재가 의무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나 관련 기업에서는 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가을 밤은 시원하고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에 좋음’을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꼭 등불이나 전기불이 없어도 이제는 계절이나 밤낮 구분없이 책을 읽을 수 환경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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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은 뷰어·제작·저작권·폰트 같은 소프트웨어와 단말기 기술 같은 다양한 ICT 기반에 책이라는 콘텐츠가 융합된 미디어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책 가격이 더욱 저렴해지고,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좋은 일은 수천 권의 책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담아 가지고 다닐 수 있어 기존과는 다른 독서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손 안에 수천 권의 도서관을 들고 다니는 21세기 지식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는 등화가친이 아니라 전자서가친(電子書可親)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