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텔스타, 위성통신시대 열다⑦지구촌 시대

일반입력 :2013/12/31 21:47    수정: 2014/01/11 10:07

이재구 기자

10■텔스타, 18분간 대서양안을 연결하다

1962년 7월10일 오전 3시45분.

10,9,8,7,6,5,4,3,2,1,0. 발사!

이륙추진 중량이 400톤도 안되는 토르 델타(Thor Delta)로켓이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발사대를 박차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오후 7시 30분 경. 분리돼 나온 위성이 궤도로 들어선 후 지구를 6바퀴 째 돌고 있었다.

이윽고 AT&T의 회장 프레더릭 카펠이 전화를 걸어 텔스타를 통해 린든 B 존슨 미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부통령 각하. 메인주 앤도버 지상기지국의 프레드 카펠입니다. 잘 들리십니까? 아시다시피 이 전화는 텔스타 위성을 통해 거는 것입니다. 잘 들리십니까?(How do you here me?)”

그러자 부통령이 말했다.

“잘 들립니다. 카펠씨(You're coming through nicely, Mr. Kappel.)”카펠이 대꾸했다.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이어서 존슨 부통령이 격려의 말을 쏟아냈다.

“오늘 아침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발사한 모든 미국인들을 기쁘게 했습니다. 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우리가 최초의 우주를 정복한 이번 성과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자 카펠 ATT회장이 화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미국민들이 정부와 민간기업이 협력해 이룬 이 뛰어난 성과를 보고 기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

존슨부통령도 맞장구쳤다.

“정말 그래요. 미국인들 모두가 만족할 겁니다. 이 텔스타 테스트결과는 매우 가치있고 상용위성을 만드는 지식을 제공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존슨 부통령의 이 호의적인 언급에 대해 프레드 카펠 AT&T회장은 기대감넘치는 답변으로 통화를 마쳤다.

“저희는 정말로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 텔스타가 이런 기능을 하게 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되십시오, 부통령 각하.”

그로부터 한시간도 채 안돼 텔스타 프로젝트에 참여한 프랑스기지국에서는 또렷한 실시간 텔레비전 신호를 수신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받은 화면은 메인주의 앤도버 기지국을 배경으로 미풍에 펄럭이는 성조기 영상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영국 지상파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쇼가 미국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안녕하십니까, 찰스 콜링우드입니다. 인류는 오늘 통신위성 텔스타가 가져다 주는 약속으로 거보를 내디뎠습니다. 오늘 아침 발사된 텔스타는 완벽하게 궤도에 진입했습니다.”

이날 저녁 방송에서 찰스 콜링우드 CBS앵커는 감격스럽게 선언했다.

발사 다음날 미 동북부 메인주 앤도버 지상기지국.

텔스타통신위성의 증폭 신호를 받은 프랑스 플뤼무르 바두 기지국으로 미국의 TV화면이 세계최초로 전송돼 생생한 화면을 제공했다. 텔스타가 유럽에 전한 최초의 TV화면은 앤도버 기지국의 돔형 안테나와 성조기였다.

하지만 극적인 장면은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약 2주 후인 1962년 7월23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장. 케네디 대통령이 연단에 나오기 전에 중계된 인상적 장면은 텔스타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켜 주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입장이 늦어지자 CBS카메라는 마침 시카고에서 열리는 있는 시카고 컵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간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장으로 잠시 화면을 연결시켰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방금 이 경기가 게임이 텔스타와 연결돼 유럽으로 전송된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유럽의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나운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소리는 껌으로 유명한 리글리사가 후원한 시카고 리글리 구장 관객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했다. 타자 토니 테일러가 공을 우익수 조지 앨트먼 쪽으로 쳐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화면은 워싱턴의 케네디대통령 기자회견장으로 옮아져 갔다.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18분 간의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하루 텔스타위성이 18분 동안 열어놓은 ‘하늘의 창’은 시카고 리글리구장에서 워싱턴을 오가면서 미국,캐나다와 유럽의 시청자들에게 첨단 기술의 위력을 여과없이 과시했다.

텔스타는 이 역사적인 날 하루의 18분 동안 이 날의 스포츠, 정치,경제를 아우르면서 대서양 양안의 미국과 캐나다 유럽인들에게 통신위성과 첨단기술의 성과를 각인시켰다.

발사 다음 날 뉴욕타임스는 텔스타를 가리켜 “새무얼 모스가 한세기도 더 전에 발명한 최초의 전보송신에 필적하는 통신의 위업”이라고 격찬했다.텔스타 발사 6개월 후인 1962년 크리스마스날.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은 텔스타 위성에 대해 “눈에 보이지 않는 100만개의 눈이 집중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하지만 벨연구소가 위성의 성공에 도취될 수 있었던 것도 한순간 뿐이었다.

케네디정부와 미의회는 우주통신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사기업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다. 한편으로는 이미 다른 모든 사기업을 세계적 위성사업에서 밀어낸 AT&T의 거대한 독점사업적 규모와 공격적 사업 성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텔스타 발사 성공 한달여 만인 1962년 8월 31일. 미 의회와 케네디 대통령은 벨 시스템이 국제위성통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통신위성법 컴샛(COmmunication Satellite AcT ․ COMSAT)이었다. 이에 따라 AT&T는 국내통신사업 밖에 할 수 없었다.

통신위성법에 따라 컴샛사(Communication Satellite Corporation․ CSC)가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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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 해인 1963년 7월 26일. 이 법에 따라 최초로 발사된 위성은 정지궤도 위성 얼리버드(Early Bird)였다.

CSC는 2년 후 기업공개(IPO)를 했다. CSC는 단 한푼도 벌지 못했지만 500만주의 주식은 인당 50주로 제한돼 주당 20달러에 판매했다. 1956년 포드사의 IPO이래 최대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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