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사용해 커피 사 마셔보니…

지디넷코리아 손경호 기자 체험기

일반입력 :2013/12/25 14:42    수정: 2013/12/26 10:25

손경호 기자

지디넷코리아 손경호 기자 체험기

0.0045 비트코인(BTC) 드릴게요.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기자가 난생 처음 비트코인으로 3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봤다. 여기저기서 뉴스의 진원지로 급부상한 가상화폐 비트코인으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른 곳은 서울 송파구 석촌역 인근 한 카페였다.

며칠 전 페이스북 한국 비트코인 그룹에 비트코인으로 허니브레드와 딸기주스를 주문해서 먹었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 계기가 됐다.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코인맵(coinmap.org)에 표시된 위치를 보고, 석촌역 3번 출구에서 내린 뒤 카페를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아메리카노를 사먹고 싶어도 기자는 갖고 있는 비트코인이 없었다.

제가 현금으로 드릴테니 아메리카노 결제할 수 있는 만큼 비트코인을 저한테 주세요. 카페 사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하려면 스마트폰에 비트코인 전용 지갑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야 한다. 갤럭시S3로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접속, '비트코인 월렛(Bitcoin Wallet)'이라는 앱을 깔았다. 실행해보니 비트코인 계좌역할을 하는 주소가 자동으로 생성됐다.

이제 사장님이 비트코인을 건네줄 차례다. 아이폰을 쓰는 사장님은 '블록체인(Block chain)'이라는 앱을 실행해 내 비트코인 계좌 주소를 나타내는 QR코드를 스캔한 뒤 0.0050 BTC을 보내줬다.그 뒤 비트코인 시세를 알려주는 비트틱이라는 앱을 통해 0.0050 BTC가 3.325달러 정도라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환율로 계산하면 약 3천500원이다.

4천원 드릴게요, 500원 거슬러 주세요.

결제를 하려고 보니 주문대 앞에 비트코인 가맹점이라는 문구와 함께 QR코드가 눈에 띄었다. 비트코인 월렛에 있는 카메라 버튼을 눌러 QR코드를 스캔한 뒤 0.0045 BTC를 입력하고 전송버튼을 누르려고 했으나 'send'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사장님은 거래를 확인하기까지 길게는 10분 정도가 걸리니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조언했다.

비트코인은 10분 간 사용자들끼리 주고 받은 거래내역이 '블록'이라는 형태로 모든 비트코인 사용자들에게 공유된다. 각각 비트코인 계좌를 통해 거래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 분 간 대기시간이 필요하다. 그 뒤에는 실제로 거래가 이뤄졌는지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다.

다행히 10분이 안 된 시점에서 앱을 통해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제 구매할 차례다. 다시 카페에 비치된 QR코드를 스캔하고, 0.0045 BTC를 눌렀더니 이번에는 'send' 버튼이 활성화 됐다. 이전에 사장님이 0.0050 BTC을 보냈다는 거래 내역이 인증을 받은 것이다.

기자가 아메리카노를 구매하면서 느꼈던 점은 '재미있다'라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1BTC 거래 가격이 100만원을 넘어섰다, 거품이 꼈다, 투자수단으로서는 매력없다라는 말만 들었던 터라 비트코인으로 뭘 해볼 수 있을까 궁금하던 시점이었다.

카페 사장님에 따르면 기자가 결제하기 전에 두 명이 이곳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했다고 한다. 페북에 글을 올린 사람보다 먼저 결제를 시도한 것은 한 외국인 비트코인 마니아였다.

그는 홍대 인근에 있는,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었다. 기자와 마찬가지로 코인맵을 보고 홍대에서 이곳까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참고로 기자가 근무하는 곳도 홍대 근처다.

이 외국인은 약 2년전부터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이제 마니아가 됐다. 그 뒤 우리나라에 방문한 김에 거래가 가능한 곳을 찾아 지하철로만 1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을 방문했다.비트코인이 기존 통화체계에 대한 반발로 나온 대안화폐, 가상화폐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실제로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물론 한국은행에서도 비트코인과 같은 화폐를 실제 금융거래에 활용하기에는 불안정한 요소들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룩한 얘기보다도 와닿았던 것은 비트코인은 재밌다라는 사실이다. 사장님이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준형 카페제카 사장은 모바일 앱 개발자다. 카페가 위치한 곳 4층에는 그가 근무하고 있는 팸노트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사용자인터페이스(UI), 사용자경험(UX) 등과 관련된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카페에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한 것은 회사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이기도 했다.비트코인으로 뭔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박 사장은 새롭게 등장한 통화를 활용해 문화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존처럼 실현가능한 대안화폐인가, 투자수단으로서 가치가 있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코드로 비트코인을 이해한 것이다. 이를 활용하는 새로운 커뮤니티 혹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IT기술이나 문화적인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플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이 '애플빠'라는 새로운 문화코드를 만들어 낸 것처럼 비트코인도 IT 관련 얼리어답터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만한 흥미로운 '어떤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사장은 현재는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려면 달러로 환산한 뒤 다시 한화로 바꿔서 봐야하는 등 불편함이 있었다며 매장 내에서도 비트코인 시세에 대한 평균치를 자동으로 계산해 한화로 얼마인 지 알려주는 앱, 일반 POS단말기처럼 거래 내역을 집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 등을 개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1호 비트코인 결제가능 매장인 인천 파리바게트를 예로 들면서 비트코인이 마케팅 수단으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금으로 결제하면 될 것을 굳이 비트코인을 써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자가 체험해 본 비트코인 결제는 상당히 재밌는 '마이너 문화'로서 가능성이 엿보였다. 박 사장도 이러한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지인들은 자신이 보유한 비트코인을 건네주면서 한번 써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홍대에서 석촌까지 온 외국인이나 페북에 글을 올린 국내 사용자 역시 비트코인으로 뭔가를 해 본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박 사장은 앞으로 문화적인 관점에서 비트 제네레이션, 비트멤버, 비트샵이라는 개념으로 비트코인 생태계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 홍대, 가로수길 등을 돌며 여러 매장을 방문해 비트코인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할 사업자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트코인을 활용하는 매장, 서비스를 확보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현금 대신 받은 비트코인으로 매장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전기세, 관리비를 내고,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박 사장 역시 자신이 손님들이 결제하는 비트코인을 카페가 아닌 본인 소유 계좌로 전송받고 있었다.

비트코인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비트코인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현재로서는 생태계를 만드는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국내 비트코인 결제 1호점이 나온 이후로 수많은 매장에서 비트코인 결제를 도입할 것으로 보였으나 코인맵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약 5곳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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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비트코인은 외국인이 환전 없이 아주 적은 수수료만으로도 우리나라에서 결제할 수 있다는 점,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물품을 구매하거나 현지에서 수수료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현실적인 장점도 있다. 이밖에도 IT 얼리어답터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새로운 수단이라는 점 등에서 생태계가 조성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비트코인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던 김석기 로아컨설팅 이사는 비트코인은 기존 시스템을 벗어난 파괴적 혁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통화체제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잠재력을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기존 통화체계를 뒤엎을 수 있을만한 파괴적 혁신은 먼 미래 얘기로만 들린다. 반면 '문화코드'로서 비트코인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자에게 비트코인은 그렇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