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제가 비트코인을 만든 이유는"

비트코인 설계자 사토시 나카모토와 가상 인터뷰

일반입력 :2013/12/10 09:31    수정: 2013/12/10 18:47

손경호 기자

[비트코인 설계자 사토시 나카모토와 가상 인터뷰]

얼핏보니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본질은 보지 못하고 수박 겉만 핥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도 풍겼다. 자신의 소중한 발명품이 투기수단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로또에나 따라붙는 '인생역전'식의 저렴한 기사들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설계한 사토시 나카모토씨는 기자와 가진 (가상)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둘러싼 이슈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공개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비트코인 관련 기사는 자신이 만든 취지에서 벗어난 것들도 많다고 반복해서 지적했다. 그런 만큼, 인터뷰를 통해 비트코인을 왜 만들었는지를 세상에 다시 한번 알리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걸 갖고 무엇을 할지는 세상이 알아서 하라는 투였다.

비트코인에 깔린 복잡한 구조를 한번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이 발행되고, 거래가 이뤄지는 과정이 암호학과 분산컴퓨팅 환경에서 구현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비트코인은 비트토렌트와 같이 P2P 방식을 활용, 사용자들의 참여를 통해 거래 내역을 보장하는 디지털 가상 화폐 시스템이다.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수시로 바뀐다. 9일 현재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인 마운트 곡스 기준으로 1비트코인은 83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에는 1비트코인 가격이 1천달러를 넘어섰을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다. 언론들이 비트코인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나카모토와 마주한 기자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비트코인을 만든 이유가 뭡니까?

나카모토씨는 달러 중심의 화폐 제도에 대한 변화를 이유로 꼽았다. 달러 체제를 믿지 못해서란 것이다.

2000년 초반부터 급격한 발전을 이룬 인터넷, 그리고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한 2008년 금융위기와 이를 통해 파생된 달러화에 대한 불신이 비트코인을 만드는 계기였어요.

만든 당사자의 입을 빌리면 비트코인은 온라인 결제 플랫폼 페이팔 등과는 DNA 자체가 다르다. 페이팔은 아마존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쇼핑몰을 각국 통화나 은행 종류에 관계 없이 결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이보다 앞서 개발된 인터넷 뱅킹도 이미 보편적인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들 시스템에는 주인이 있다. 비트코인은 이와 관련한 나카모토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페이팔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거래되는 가상 화폐는 모두 누군가에 의해 중앙집중적으로 통제된다는 점에서 제약이 많은 지불결제수단이었어요. 하루 아침에 실업자들을 거리로 내 몬 금융위기 역시 결국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등 글로벌 금융 환경을 거머쥐고 있는 '큰 손'들에 의해 좌우됐습니다.

이 같은 문제 의식은 사용자들이 직접 관리하는 통화시스템을 구현하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는 전 세계에서 국경에 제약 없이, 은행이 쉬는 날에도, 수수료는 거의 지불하지 않은 가상화폐를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비트코인에 대해 디스(Dis)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폰지(Ponzi) 사기에 비유하거나 곧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장담하더군요.

나카모토는 코웃음을 친다. 기가 찬 모양이다.

비트코인이 사기라니요. 거래 목적으로 만든 통화를 투기용으로 마음대로 쓰는 사람들 잘못 아닌가요?

나카모토는 본래 용도는 안전한 가상화폐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마치 투기열풍을 조장한 것처럼 비쳐지는 것이 상당히 불쾌한 듯 보인다.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폰지사기는 새로운 투자자들의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주는 다단계 금융사기죠. 그런데 비트코인이 과연 그런가요? 비트코인 생태계에서는 누가 언제 얼만큼의 비트코인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한 일종의 '거래장부'를 공동으로 관리합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이라면 수많은 거래자들의 공동감시체계를 피해가기 어렵겠죠. 일부는 최근 비트코인 열풍을 네덜란드 튤립 버블에 비유하기도 하던데 실상은 달라요. 튤립 가격 폭등은 과시욕과 함께 투기 열풍에서 시작됐죠. 그런데 비트코인을 보세요. 과시나 투기용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그동안 비트코인을 억눌렀던 정부규제라는 족쇄가 풀리면서 거래를 위해 쓸만한 가상화폐라는 점이 증명됐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랬다. 중국 인민은행은 공식적인 금융거래용도로서 비트코인을 제한했을 뿐 실제로 이 나라 사용자들 간 비트코인 거래는 여전히 가장 활발하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비트코인은 전자상거래를 위한 주요 결제 수단이라며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1비트코인 당 1천300달러 수준이 적당하다는 가이드 라인도 제시했다.

나카모토는 거품이 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거품이 꼈다는 일부 언론매체의 보도도 불편합니다. 1천달러 수준이었던 1비트코인 가격은 지금 83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죠. 사용자들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대가 형성될 뿐입니다. 설사 투기 수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시점에 다시 안정성이 유지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 채굴에 도전했지만 남은 것은 수십만원대 고성능 그래픽카드(GPU)와 매월 내야하는 전기세 영수증 뿐이었다고 말한다.

10분 간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모은 '블록'에 대한 해시값을 알아내면 25비트 코인이 주어진다. 현재 가격으로는 830달러X25비트코인=2만750달러(2천180만8천250원)이다. 그러나 한 명이 채굴해 25비트코인을 얻으려면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높은 연산능력을 가진 개인용 PC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100만원대를 호가하는 GPU를 동원해 비트코인 채굴에 나선 이들은 24시간 동안 0.0012 BTC(비트코인 단위) 수준에 머물렀다. 현재 환율로 따지면 약 1천원을 벌 수 있는 셈이다. 더구나 25비트코인은 컴퓨팅 자원을 투입한 채굴자들이 기여도에 따라 나눠갖는 식이다.

비트코인 채굴에 참여해 봐야 재미도 못 볼 것 같은데 조만간 사용자들이 관심을 끊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카모토도 고민하는 표정이다.

비트코인 생태계를 유지하려면 거래기록을 안전하게 승인, 관리하기 위해 여러 사용자들이 일정 보상을 얻는다는 조건으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해야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의 대답은 역설적이었다. 수수료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 통화체제에 비해 비트코인 거래로 인한 수수료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죠. 하지만 비트코인 거래가 늘어날수록 채굴자들은 더 많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비트코인 생태계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거래 수수료를 인상하는 등의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봅니다.

투기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던 나카모토는 생태계를 유지하는 채굴자들의 작업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비트코인을 개발하면서, 나카모토가 주목한 것은 암호학, P2P라는 기반기술이다. 일종의 암호(해시값)로 이뤄진 거래기록을 여러 사용자들이 자신의 CPU, GPU 등을 컴퓨팅 자원을 투입해 공동으로 구축한 네트워크 환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가상화폐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기자가 많이 취재하는 보안에 대해 물어볼 차례다. 솔직히 빈틈을 찾고 싶었다. 그럴만한 거리도 있었다.

하늘 아래 뜷리지 않는 보안시스템은 없는데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더군요. 실제로 비트코인 포럼 이용자 'allinvain'이 암호화 되지 않은 비트코인용 전자지갑을 사용하는 탓에 2만5천 비트코인을 도난당했고, 마운트 곡스 거래소는 저장된 이메일, 비밀번호 등 데이터베이스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을 당해 한 때 거래 자체가 마비 되기도 했죠. 최근에는 해커들이 좀비PC를 동원해 사용자 몰래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제로액세스 봇넷'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도발적인 질문에 그는 재도발로 받아쳤다.

비트코인의 보안취약점을 찾아 밤을 지새던 보안전문가 댄 커민스키와 해커들이 결국 비트코인 지지자로 돌아섰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은 모양이군요.

비트코인을 빼돌리려면 슈퍼컴퓨터 500대의 컴퓨팅 파워를 합친 것보다 8배 가량 높은 성능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도 힘든 일을 해커들이 감당하려고 할까요? DDoS 공격 가능성에 대해서도 할 말은 있습니다. 초창기라 마운트 곡스 거래소가 제대로 된 보안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던 탓이 크죠. 애초에 비트코인 생태계는 분산형으로 관리돼야 합니다. 마운트 곡스 외에도 BTC차이나, 비트스탬프, 코빗 등 여러 거래소가 설립되면 공격에 당할 위험성은 훨씬 줄어들게 되죠. 실제로 DDoS 공격에 대비한 장비나 서비스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구요.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100% 완벽한 보안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경우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에 대한 문제라기 보다는 그로 인해 등장한 마운트 곡스와 같은 온라인 거래소, 개인 PC에 저장되는 비트코인을 관리하는 전자지갑의 보안취약성 등이 거론된다.

나카모토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전자지갑에 저장된 거래 내역은 암호화 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되죠. 때문에 PC 보다는 USB와 같은 별도 저장매체를 사용해 관리해야 합니다.

트로이목마 등 악성코드에 감염된 PC에서 비트코인 거래 내역을 담은 전자지갑이 유출되지 않도록 별도 저장 매체에서 관리하는 것이 안전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혹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이라을 구현하면서, 참여와 협력을 통해서 일종의 거래장부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한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해당 시스템을 응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 몫이다. 그는 소스코드를 모두 공개했으며 비트코인이 가진 단점이나 한계 역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통해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암호화 기술로 모든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비트코인이 제대로 돌아기가만 한다면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존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통화를 관리해 온 중앙정부, 발행기관에 대한 비판을 비트코인 거래 원본데이터에 메모로 남겨놓기도 했다. 당시 그는 '<타임스>2009년 1월 3일자 보도, 재무부 장관, 은행들을 위한 두 번째 구제 금융 결정 임박.'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와 관련해 개발자들이 흔히 그러듯 무책임한 구제 금융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를 지적하고 싶었다고 했다.

싸이월드 도토리와 다를 게 뭐냐, 해킹 되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등의 비판속에도 비트코인은 4년째 살아있다. 중앙정부나 발행기관 통제 없이도 사용자들의 합의를 통해 보증되는 가상화폐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나카모토는 마치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인터넷 도감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 창시자인 줄리안 어샌지처럼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면서도 조용히 새로운 실험을 지켜보는 중이다.

인터뷰에 나온 나카모토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파악하기 힘든 장치로 자신의 얼굴을 절묘하게 가렸다. 기자는 그의 정체가 너무너무 궁금했다. 그의 정체를 둘러싼 다양한 추측들을 한번에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돌아가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상대로 침묵이었다. 그는 때가 되면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때가 언제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와의 (가상) 인터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기자는 비트코인이 등장한 배경과 각종 논란을 정리하는 기사를 기획하면서, 창시자인인 사토시 나카모토와의 가상 인터뷰 방식을 취했다.

소설을 쓴 건 아니다. '넥스트 머니 비트코인', 비트코인 재단, http://bitcoin.org/bitcoin.pdf, 위키피디아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베일속이다. 그는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람들일 수도 있다. 기자는 그가 때가 되면 자신의 신분을 공개하겠다는 그의 발언을 인터뷰에 담았으니, 사실이 아니라 희망사항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기자가 지금까지 알아낸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은 정도다.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새로운 가상화폐를 구현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4개 글로벌 IT 기업이 배후에 있는 가상인물이라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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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나카모토(samsung+toshiba+nakamichi+motorola)라는 이름이 이들 기업의 앞글자들을 따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처음 주장한 테드 넬슨은 일본 교토대 교수이자 천재수학자로 알려진 모치즈키 신이치를 지목하기도 했다.

나카모토는 2008년 비트코인 논문 발표 뒤 포럼을 통해 비트코인 프로젝트 관련 프로그램을 배포하고, 수정작업을 거친 뒤 2010년 프로그래머인 개빈 앤드리슨을 후임으로 지목했다. 여전히 그가 1명인지, 공동인물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 가지 명백한 것은 그의 말처럼 모든 사용자들이 직접 참여해 관리하는 가상화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검증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