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관리하는 정부는 법이 허용하는 규제를 이용한다. 가계통신비가 화두인 지금 보조금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규제가 시장을 정상적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정부는 이에 새로운 규제안을 만들고 있고, 찬반 의견에 부딪히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어떤 규제가 필요하고 불필요한지 고민할 때다.
정부의 현행 이동통신 보조금 제재는 전기통신사업법을 따른다. 보조금을 허용하고 과징금, 신규 가입자 모집금지(영업정지) 등으로 다스리는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지난 2008년부터다. 이 법의 제50조에 따르면 과도한 보조금 지급은 금지행위에 해당한다. 일부 가입자에게 집중된 보조금은 다른 가입자에게 비용을 전가시켜 부당한 차별로 판단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동통신사가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특정 스마트폰에 보조금을 집중 살포하고 소비자는 결국 싼값의 단말기를 살 수 있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 보면 보조금 제재가 소비자 입장에선 무척 나빠보인다. 문제는 이통사가 휴대폰을 항상 싸게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이 말하는 이용자 차별이다.
사업자의 관리 감독을 맡아야 하는 정부로서는 적절한 제재를 통해 시장 구조를 잡아야 한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다섯차례의 과징금과 두 번의 영업정지라는 규제를 내렸다. 그럼에도 이동통신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통신사의 가입자 유치전, 제조사의 기기 판매 매출과 재고 처리, 유통 일선 대리점의 판매 수수료 등 각자의 처지에 보조금 규제가 무색해졌다.
규제가 통하지 않는 시장에 이용자 차별이 늘어나자 국회에선 여러 의원들이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하려 했다. 나아가 현재 논의가 진행중인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 제정안이 나왔다.
단통법을 살펴보면, 규제 범위 확대가 주요 특징이다. 찬반 논리의 쟁점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래부는 “이동통신사만 규제해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왜곡된 유통 시장이 되버렸기 때문에 말 그대로 유통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통사 넘어 제조사도 규제 받아야”
현재 이동통신 판매 시장은 ‘통신비’와 ‘단말기 구입가’의 결합으로 요약된다. 고가의 단말기 값은 보조금과 약정 기간 동안의 할부 등으로 소비자가 지갑을 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
보조금을 직접 집행하는 주체는 통신사다. 이 때문에 휴대폰 이용자는 단연 이동통신사와 접점이 크다. 하지만 소비자가 받는 보조금은 통신사만이 아니라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과 대리점의 자체 보조금이 실린다. 간혹 제조사가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자체 유통망에 보조금을 싣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이통사만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없던 규제를 받으라는 제조사는 반발한다.
반대 입장이 뚜렷한 제조사는 단통법 수정안 제12조에 따라 정부에 제출하라는 휴대폰 판매량, 매출액, 출고가, 장려금 등 네가지 항목은 영업비밀이라고 반발한다. 산업통상자원부까지 나서 영업기밀 제공은 국제 경쟁력 약화를 낳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는다.
미래부는 이에 시장 과열시 비밀로 유지되는 방통위 조사 자료제출 뿐이라는 반박을 거듭해왔다.
■대리점 판매점도 규제 대상, 과태료 1천만원
이통사에서 제조사로 규제 범위를 넓힌 것은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의 쏠림 현상 때문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유통 일선까지 규제 범위를 넓혔다.
휴대폰 유통구조에서 대리점과 판매점이 서비스 약정 요금할인액을 단말기 보조금으로 선전한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소비자가 단말기 가격을 정확히 알지 못하게 하는 판매 수법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행위가 발각될 때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해 이용자를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판매점을 선정하는 대리점과 통신사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 소재를 밝힌 점도 단통법의 주요 내용이다. 현재 이통사 직영 대리점 4천여개에서 약 10배에 해당하는 4만여 판매점도 규제 관할 대상이 된다.
통신사가 직영하는 대리점이 하부 구조에 판매점을 선임할 때 이통사가 사전 승낙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즉 판매점의 위법 행위가 이통사와 별개가 아니라는 조항이다.
법안 논의 초기에는 판매점들은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통사와 제조사에 끌려가는 말단 조직에 규제 잣대를 두겠다는데 반발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단통법에 대한 찬성의 뜻을 보내고 있다.
박희정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장은 이달 초 열린 단통법 관련 간담회에 참석해 “골목마다, 시시각각 다른 가격 정책으로 잃게 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며 유통구조 개선에 동참한다는 뜻을 밝혔다.
■규제 확대가 능사? 주사위는 국회로
여전히 찬반이 엇갈리는 단통법은 결국 규제 범위 확대가 골자다. 이통사 관리 감독만으로는 보조금 전쟁에 따른 이용자 피해를 막을 길이 없다는 정부의 판단을 뜻하기도 한다.
현행 규제에서도 방통위가 규제 뜻을 밝힌 당일, 과다 보조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때문에 형사처벌 조항이 없이는 규제 범위가 늘어도 소용없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에 장대호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장은 “(규제가 효용없다는데) 어겨도 처벌 안 받을거니 법이 필요없다는 논리”라며 “법을 지킬 수 있도록 보완하는게 맞다”는 답을 내놨다. 제도를 개선해 규제를 통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취지를 담은 법안임은 분명하다. 누구도 법안 취지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실제 법 적용 이후 일어날 상황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히 반대하는 쪽의 잘못이 아니다. 장시간 합의에도 각자의 이해관계를 좁히지 못한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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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에 따라 새로 추가되는 피 규제 대상자 가운데 제조업계의 반발이 심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국회로 넘겨졌다. 당장 법 소관위인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이제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연내 처리할 뜻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다. 또 법안 처리 과정 가운데 국민을 대변하는 이들이 각자의 입장을 얼마나 반영할지가 숙제로 남겨졌다. 당장 통과된다 하더라도 6개월이 지나야 법이 실제로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