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 X박스 사업은 오랜 동안 논란거리였다. SW 하나로 전세계 IT를 평정했던 MS가 뜬금없이 게임콘솔을 내놨는지, 사업성은 있는지 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스티브 발머는 X박스의 초기 제안을 승인하고 현재까지 이끌어온 사람이다. 그리고 X박스의 개발부터 2010년까지 이 사업을 이끌었던 사람은 로비 바흐 전 MS 부사장이다.
스티브 발머는 MS전문기자인 마리 조폴리 지디넷 기자와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X박스에 대한 아쉬움을 들었다. 좀더 이른 시기 안에 X박스를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마리 조폴리 기자는 발머에 이어 로비 바흐 전 MS 엔터테인먼트&디바이스 사업부 총괄 부사장과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티브 발머가 X박스에 보인 애정과 정열에 대한 로바 바흐의 기억을 기사에 담았다.■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X박스를 지지했다
1990년대말 빌 게이츠는 X박스에 대한 초기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몇몇 핵심 엔지니어로부터 접하게 된다. 이에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에게 게임콘솔 아이디어의 사업성 판단을 일임했다.
발머는 이후 6개월에 걸쳐 콘솔게임의 사업성을 분석했다. 그리고 1999년이 끝날 무렵에 X박스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발머가 빌 게이츠에게서 MS CEO직을 넘겨받기 직전이다.
발머는 인터뷰에서 (빌 게이츠가) 나에게 CEO 지위를 이전하는데 있어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라고 당시 X박스계획이 가진 비중을 묘사했다.
당시 MS의 엔터테인먼트&디바이스사업부 총괄이었던 로비 바흐 부사장은 발머에게 X박스 계획에 대한 전권을 얻었다. 로비 바흐는 당시 자신에게 일을 맡기던 발머의 말을 전했다. 그 자리엔 빌 게이츠도 함께했다.
로비 바흐는 발머는 내게 '오케이, 당신(로비 바흐)이 이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발머와 게이츠)는 당신을 지지할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다르게 일할 것이란 점을 이해하며, 그 일 뒤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일을 맡겼다고 전했다.
그는 이후에도 발머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만큼 발머가 로비 바흐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얘기다.
로비 바흐에 따르면 2000년 이후 1년반동안 X박스 프로젝트는 MS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X박스팀은 MS 본사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1999년의 MS는 매우 거대한 PC소프트웨어 회사였다는 점을 기억하라라며 누군가가 1천100개의 칩셋과 하드웨어를 만진다는 생각은 MS에서 새롭고, 최첨단인 얘기였다라고 말했다.
X박스의 소프트웨어 커널은 윈도NT커널의 극히 작은 서브셋이었다. 로비 바흐에 따르면 X박스는 MS에서 야생의 콘셉트였고, 1999년에도 완전한 콘셉트가 아니었다.
바흐는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MS가 왜 X박스를 하는가에 의문을 품었다고 밝혔다. 손해볼 사업이 될 것이란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서 스티브 발머는 X박스 사업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불만을 품은 이들에게도, 로비 바흐와 자신이 함께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각인시켜주려고 했다.
로비 바흐와 스티브 발머는 인텔과 다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회사들과 특별한 만남을 주선해 X박스팀을 도왔다. 빌 게이츠는 케이블TV 사업자와 관계를 형성했고, 발머는 수많은 통신사업자들과 자주 만났다. 발머는 통신사업자에게 MS X박스가 전화모뎀 대신 브로드밴드를 채택할 것이란 점을 주지시켰다.
바흐는 스티브는 MS가 온라인 게임에서 성공하게 될 거라 말했고, 브로드밴드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고, 생태계를 이해하자고 주장했다. 통신사업자들은 X박스에 대해 시스템 부담이 아니라 고객군을 확장시키게 해줄 것이란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발머의 사업적 질문이 X박스360을 만들다
로비 바흐는 빌과 우리 팀 사이에는 기술적인 상호작용이, 스티브와 팀 사이에는 사업적인 상호작용이 있었다라며 스티브의 손길은 X박스 모든 곳에 미쳤다라고 표현했다.
X박스팀과 스티브 발머 사이에 마찰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발머는 X박스팀에게 재무적인 부분과, 사업 재예측, 예산획득, 계획 수정 등에 대한 압박을 가했다. 로비 바흐는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는 X박스 사업이 당초 계획보다 훨씬 더 거대해졌다는 점을 인정했다.
바흐는 그의 메시지는 X박스가 중요하더라도 밑바닥없는 구덩이는 되지 말라는 얘기였다라며 그는 모든 것을 계산할 것을 강요했고, 일단 재예측한 계획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발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라며 처음의 큰 투자를 한 후 발머는 X박스팀이 매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알기를 원했다라고 덧붙였다.
MS가 X박스360을 준비하기 시작할 무렵 발머와 바흐는 사업적인 통계와 기여도를 주로 토론했다. X박스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에서 얼마만큼의 달러가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X박스팀은 사업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변화로 하드웨어를 새로 디자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재고품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재고품 사용이 비용을 절감시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흐는 더 맞춤화된 디자인을 만들어야 했고, 자체적인 칩 디자인을 가져야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콘솔의 크기조차 생각해야 했고, 모두가 X박스가 더 작아지길 원했다라며 패키지의 크기는 컨테이너에 얼마나 많은 패키지를 쌓을 수 있느냐, 그리고 컨테이너가 선박에 얼마나 실릴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라고 덧붙였다.
결론은 X박스라는 하나의 선박용 컨테이너에 더 많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사업적 측면을 고려해 전면적인 재설계가 이뤄졌다.
■키넥트는 엄청 멋진 게 될 거야
X박스팀은 X박스360을 설계하며 5년의 라이프사이클을 생각했다. 바흐는 그래픽 칩셋이 X박스360의 라이프사이클 동안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와 팀에겐 새로운 게 필요했다. 그렇게 키넥트 센서가 고안됐다. 키넥트 센서는 X박스360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길이었다.
발머는 이를 위해 회사와 그 밖의 존재를 연결하는데 도움을 줬다. 키넥트 기술의 일부는 X박스팀에서 만들어졌지만, 상당부분 MS연구소와 외부의 다른 회사들에서 만들어졌다.
바흐는 우리는 이스라엘의 한 회사를 사야했으며, 캘리포니아의 한 회사에선 장기 라이선스를 해야 했는데 결국 그 회사를 인수했다라며 스티브는 이사회 수준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모든 것에 관여했다라고 말했다.
이때 스티브 발머는 '이봐, 이것은 엄청 멋진 게 될 거야'라며 투자를 단행했다고 한다.
키넥트 개발에 빌 게이츠도 참여했다. 빌 게이츠는 X박스팀에게 탁월한 기술적 질문을 던졌다. 발머의 역할은 가치 제안에 있었다.
바흐는 스티브는 칩 아키텍처 미팅엔 참석하지 않았지만, X박스 라이브 사업에 바람을 불어넣는데 얼마나 지출해야 하는지 논의하길 원할 때 팀과 만났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의 역할분담을 보여주는 장면이 언급된다. 빌게이츠는 언젠가 X박스팀과 가진 한 미팅에서 ID 인증시스템에 대해 열띤 강연을 펼쳤다. X박스팀이 썩 잘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반면, 스티브 발머는 월정액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의 가치는 무엇이라 보는지 등을 토론했다.
바흐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것은 빌과 하는 미팅과 같은 느낌이었다라며 같은 열정, 같은 열망, 같은 약속, 정확히 같은 기억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빌과 스티브가 X박스에 헌신적일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현재 MS는 이사회와 투자자들로부터 X박스 사업의 포기를 종용받고 있다. 스티브 발머의 은퇴 후 이사회와 후임 CEO가 X박스사업을 매각하거나 폐기할 것이란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상황이다.
스티브 발머는 X박스사업의 손익분기점 도달 시점이 늦어지는 것에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X박스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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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바흐는 회사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들은 당신들 진지한거냐고 물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X박스를 비로소 내놓을 준비가 됐을 때 게임퍼블리싱 파트너에게 해야 했던 첫번째 답변은 'MS는 정말로 진지하다'는 것이었다라며 그들이 빌과 스티브가 X박스에 헌신적이란 생각자체를 머릿속에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