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필벌(信賞必罰)’
‘신상’은 삼성전자, ‘필벌’은 금융 계열사의 몫이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성과중심 인사가 또 여실히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실적 파티에 이어 승진 파티를, 금융 쪽은 비교적 어두운 분위기다.
특히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카드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삼성전자를 배워라” 식의 이 회장 뜻으로 해석된다.
삼성그룹은 사장 승진 8명과 이동 및 위촉업무 변경자 8명의 총 16명 사장단 인사를 2일 발표했다.
■전자 부사장→타 계열사 사장으로
사장 승진자 8명 가운데 삼성전자 부사장이 무려 5명으로 절대 비중이다. 잇달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해왔기에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다.
올 들어 3분기까지 삼성전자의 누적 영업이익은 28조4천700억원. 이미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29조500억원)에 근접했다. 올해 30조원 돌파는 기정사실이고 40조원 고지를 밟을 가능성도 적잖다. 사내 승진보다 다른 계열사 사장으로 옮긴 이들이 3명이나 되는 것도 주목된다. 조남성 부사장이 제일모직 대표이사 사장, 원기찬 부사장은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이선종 부사장은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자리를 옮긴다.
전동수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직급 승진은 아니지만 삼성SDS로 옮겨 대표이사 사장을 맡게 됐다.
삼성 수뇌부는 경영난에 빠진 삼성엔지니어링에 삼성전자 출신 임원들을 지난달 급파하는 등 ‘삼성전자 DNA’의 전 계열사 전파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번 인사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김영기 부사장이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 김종호 부사장은 세트제조담당 사장과 무선사업부 글로벌제조센터장을 겸임한다.
삼성 측은 “사상 최대 경영성과를 달성한 전자 계열을 중심으로 성과주의 인사를 구현했다며 삼성전자 성공경험 전파를 통한 사업 일류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카드 최치훈 시대 막 내려
금융 쪽은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이 삼성물산 사장으로 이동한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업계에서는 ‘충격적’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최 사장은 삼성카드의 상징으로 불려왔다. 지난 2010년 12월 삼성카드 사장으로 취임해 다양한 시도로 시장 점유율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카드 부문 중위권에 머물렀던 삼성카드를 1위를 넘보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다만, 올 들어 실적이 지속 감소하면서 삼성카드에 대한 그룹 수뇌부의 평가가 꽤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3분기 당기순이익은 701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15.8% 줄었다.
최 사장을 대신할 인사는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이다. 삼성전자 부사장이 사장 승진과 함께 삼성카드를 이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 사장 내정자는 지난 2010년부터 삼성전자 본사 인사팀장을 역임해왔다. 핵심인력 확보와 조직문화 혁신에서 전문성을 보여왔다. 삼성 그룹이 삼성카드에 이 부분을 주문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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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은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으로 옮긴다. 지난 2011년 사장, 지난해 부회장에 임명됐으나 사회공헌 분야에 주력하게 됐다.
이건희 회장은 올 들어 종종 “금융계열사 중에는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왜 탄생하지 않느냐”고 질책해왔고 당사자들의 긴장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인사에 이 회장의 장고가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