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변태 하일권 "만화, 재미+알파 하면..."

일반입력 :2013/11/04 16:00    수정: 2013/11/04 19:40

남혜현 기자

하일권 작가는 이발병 출신이다. 미대를 나왔단 이유로 이발병으로 발령 받았다. 2년여 시간동안 수천명의 머리를 깎았다. 그 경험이 데뷔작 <삼봉이발소>의 모태가 됐다.

만화가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린다. <목욕의 신>을 연재하기 전엔 찜질방에 자주 갔다. 직접 세신을 배울까 고민했지만, 대신 연재 기간 자주 씼으러 다니며 '어떻게 밀어야 시원할까'를 고민했다.

물론 마술도 배웠다. <안나라수마나라>를 그릴 때 일이다. 마술 도구를 엄청나게 많이 샀다. 인터넷 카페나 동영상을 보며 동작을 연구했다. 마술 하는 하일권, 꽤 어울리는 그림이다.

만화가가 경험한 것에 상상이 덧붙여지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다. 만화가의 머리와 손 끝에선 태어나지 못할 우주가 없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학교'와 '전쟁'이라는 하일권의 기호가 상상력을 만나 생겨났다.

올해 우리 정부는 만화를 '예술'로 인정했다. 만화를 집중 육성해야할 콘텐츠로 지정해 정부 지원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만화 한 번 안 보고 자란 사람이 있을까.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만화가 예술이 된 올해,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받은 하일권㉝ 작가를 3일 '만화의 날'에 부천만화박물관에서 만났다. 수상작은 <방과 후 전쟁활동>이다. 심사위원들은 '탁월한 심리묘사'를 이 만화의 백미로 꼽았다.

학원물도 좋아하고 전쟁물도 좋아해서 학생들이 전쟁을 하게 되면, 한 반 친구들이 같이 전쟁에 나가게 되면 재미있는 일이 발생할 것 같아서 그렸어요.

<방과 후 전쟁활동>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지구 종말 위기로 입대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하늘 위 세포처럼 떠 분열하는 괴 생명체들과 싸우면서 학생들은 나와 공동체,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성찰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지만, 하일권 특유의 유머는 살아 있다. 예컨대 하늘 위 떠 있는 세포들을 보며 감시 받는 것 같다고 우울해지다가도 곧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빼앗길까 노심초사 하는 고딩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렸다.

■ 만화는 '병맛'이어야 한다

그가 꼽은 만화의 핵심 코드는 '재미'다. 만화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하일권 만화는 일명 '병맛'으로 일컬어진다. 병맛은 재미있다, 기발하다, 한심하긴 한데 웃긴다 등을 통칭하는 속어다.

그런데 단순히 재미만 있었다면 '믿고보는 하일권'이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팬카페 회원 수는 1만2천602명. 최근 인기 있는 아이돌 팬카페에 3만~5만명이 활동하는 것과 비교하면 하 작가의 팬층은 두텁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만화가 그런거에요. 물론 재미가 제일 중요하고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도 뭔가 마음 한켠에 계속 생각나고 좋든 싫든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을 제가 좋아해요.

독자의 반응은 댓글로 살핀다. 최근엔 포털 베스트댓글을 주로 본다. '베댓'엔 악플이 없으니 더 좋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댓글은 'ㅋㅋㅋㅋㅋㅋ'다.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만화가에 최고의 칭찬이다.

자신이 가장 즐겁게 작업했던 작품은 <삼봉이발소>이고, 그리면서 가장 '웃기다!' 라고 생각했던 작품은 <목욕의 신>이다. <삼봉이발소>는 연극 무대에 올랐고 <삼봉이발소>는 영화로 판권이 팔렸다.

<목욕의 신> 캐스팅은, 시작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다. 몸 좋고 잘생긴 세신사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게다가 무대는 '남탕'이다. 주인공인 허세 역에 팬들은 장근석을 추천하는 등 관심이 크다.

■ 하일권의 별명은 '유희열'...슈퍼모델 몸매 지녀(?)

인터뷰 말미에 별명이 무어냐 물었다. '유희열'이라 했다. 외모냐, 감성 변태 쪽이냐 되물었다. 둘 다라고 했다. 스스로를 '슈퍼모델' 몸매라 불렀다. 큰 키에, 마른 몸이 유희열과 닮았다. 변태쪽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 만화계 변태라 불린다고 설명했다. 이유는 하일권 만화 안에 있지 않을까.

하일권은 이날 수상을 기념해 동료 작가 들과 사인회를 가졌다. 사인회 주제는 '저작권 보호'다. 웹툰이 만화 시장을 넓게 키웠지만, 그만큼 쉽게 퍼나를 수 있다. 저작권 사각지대인 셈이다.

공짜다, 무료다 라고 보는 만화에서 작가들이 힘들게 고생해 창작한 하나의 저작물, 창작품이라는 걸 인식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동청소년보호법(아청법)에 대해서도 취지는 중요하지만, 자기 검열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19금 딱지를 달고 그리지만, 수위를 생각한다. 아청법의 취지를 살리면서 작가와 독자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적정 선'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19금이 달렸지만 그래도 잔인한 표현이라든지, 그런 장면을 그리다 보면 한번씩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효과적인 장면을 연출해야 하지만 혹시나 악영향을 끼칠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딜레마가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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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데뷔한 그는 벌써 7년차, 어느덧 신인 타이틀을 뗐다. 선배님들이 들으면 웃으시겠지만이라면서 그는 이제 웹툰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겐 열정이 있다면 충분히 해볼만하다라고 조언했다.

만화 그리는 환경이 정말 많이 좋아진거 같아요. 정말 만화가가 하고 싶다면 기회는 많이 열려 있어요. 다만, 경쟁도 치열해졌죠.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그 외의 다른 것들을 희생할 각오가 있다면요, 만화가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