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사람처럼 걷는 휴머노이드 로보레이(Roboray)를 선보인지 1년여가 지난 가운데 현재까지의 성과와 발전 방향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회사측은 구체적인 현황에 대해 함구 중이지만, 그간 삼성종합기술원에서 해당 팀을 이끈 연구원은 현재도 임원 직급으로 연구를 지속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10일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수행하는 연구개발이나 국책과제는 (경쟁사에게만 유용한 정보를 넘겨주는 셈이 될 수 있어) 확인해줄 수 없다며 (지능형로봇연구팀 맡아온) 노경식 '마스터'가 계속 일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언급했다.
노경식 마스터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수석연구원 시절인 지난 2004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나란히 휴머노이드로봇 개발에 매진, 지난해 12월12일 지능로봇과 3D내비게이션 기술을 갖춘 최고전문가로 마스터가 됐다. 마스터는 삼성전자가 임원으로 대우하는 기술직군 최고 연구원이다.
로보레이는 삼성전자가 2002년부터 인간형 로봇 연구개발에 투자한지 10년만인 지난해 처음 공개됐다. 당시 겉모습은 5년전 만들어진 '마루3'와 비슷했지만, 고도의 로봇공학 기술을 집약해 사람에 가까운 걷기 동작을 선보인 로봇으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삼성종합기술원의 휴머노이드 로보레이
로보레이는 삼성전자 노경식 연구팀이 지난 2004년부터 개발해온 휴머노이드로봇 '마루' 시리즈의 최신 모델로 추정된다. 체격은 150cm 신장에 62kg 무게, 관절은 손가락을 제하고 32개다. 마루라는 이름은 로봇 개발에 앞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연구 초기부터 만들어온 모델에도 쓰였다.
로보레이는 사람처럼 무릎을 완전히 편 채 걷는다. 고도화된 하체 관절 제어기술 덕분이다. 구부정한 무릎으로 걸어다녔던 선대 로봇들과 달리, 유연한 관절이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 로봇의 걸음걸이에 자연스러움과 효율적인 움직임을 구현해준다.
앞서 KIST의 마루 시리즈나 로봇기술 강국으로 알려진 일본의 혼다, 도요타 등이 선보인 로봇들은 무릎을 구부린 채 걷는다. 다리를 앞으로 내디딜 때에도 쭉 뻗지 않게 된다. 이 자세가 로봇에겐 무게 중심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걷게 해주는 반면, 보는 사람에겐 불편하고 어색한 게 사실이다.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걸음을 보여줄 수 있는 로보레이의 다리는 '하모닉드라이브(harmonic drive)' 및 '유연한 와이어구동(compliant tendon-driven)', 2가지 구동기(actuators)의 조합으로 움직인다. 엉덩이, 무릎, 발목 부위에서 각 위치의 긴장과 이완 정도를 조절한다.
또 로보레이는 경사면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몸을 밀쳐졌을 때 자세를 바로잡으며 보행능력 자체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로봇산업계에선 휴머노이드의 이런 능력을 가리켜 '회전력 제어 2족보행(torque-controlled bipeds)' 로봇이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람을 닮은 걷기동작-사물인식 원리 공개
로보레이의 움직임을 위해 동원된 기술의 원리는 올하반기 들어서야 정식으로 공개됐다. 삼성종합기술원 지능형로봇연구팀 명의로 게재된 논문 동적 보행 휴머노이드로봇용 리얼타임 3D 동시 위치 및 지도구성이 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전자저널 식별자(DOI) '10.1080/01691864.2013.785379'로 등재된 논문은 지난해 4월 접수돼 거의 1년만인 지난 5월 배포되기 시작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의 연구원들은 로보레이에 적용된 핵심기술을 사람을 닮은 걷기 동작과 일정 공간 안에서 사람처럼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 2가지로 설명한다.
로보레이는 사람처럼 '중력'을 이용해 걷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의 무게중심을 전방으로 쏠리게 만들어 상대적으로 작은 에너지로 이동할 수 있다. 이는 로보레이가 여느 로봇들처럼 무릎을 굽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편 채로 발을 뻗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로보레이는 이동할 공간이나 다뤄야 할 물체를 인식하기 위해 시각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입체(3D) 비주얼맵을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로보레이가 뭔가를 보면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길이나 건드릴 수 있는 물체를 인식해 움직임에 활용 가능한 정보를 저장, 그 주변 공간의 지도를 만들어낸다.
로보레이가 눈으로 본 공간과 사물은 디지털 입체 공간으로 재구성돼 스스로 길을 찾아 움직이는 능력을 만들어 준다. 로보레이는 수시로 달라지는 사물과 공간에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브리스톨대학에서 개발한 시각인지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한 방식인데, 기존 GPS 기술론 불가능했다.
■사람 흉내에서 인간과의 교감으로
지난해 로보레이를 공개한 이후 노경식 연구팀의 연구개발 목표는 사람을 흉내내는 것에서 '교감'할 수 있는 기본 기술을 탑재하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이들은 로봇용 안면 및 음성인식 SW를 개발해 이를 통한 신기능이 어떤 이점을 발휘할 것인지 연구한다.
안면인식과 음성인식 자체는 스마트폰이나 PC 등 일반 컴퓨팅 기기나 TV 등 가전제품에도 일부 활용되고 있다. 상대를 알아보고 말소리를 알아들음으로써 특정 사용자에게 알맞게 지정된 동작을 수행하는 식으로 쓰이는 추세다.
그러나 로보레이의 경우 정형화되지 않은 기능과 자율적인 행동을 전제하는 휴머노이드로봇이다. 단순히 일정한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안면인식과 음성인식을 탑재할 대상은 아니란 얘기다. 어쩌면 로보레이가 얼굴과 목소리로 사람을 알아보고 친근함을 표현하도록 만드는 연구가 진행될 수도 있다.
지난 7월 로보레이가 움직이는 원리를 풀어 쓴 IT전문사이트 기코시스템의 마이아 브라운 잭슨은 연구자들은 로봇들이 이런 사람같은 특징을 키워 더 많은 이들이 로봇을 받아들이길 원한다며 과학자들이 곧 기계의 지능을 개발해 꺼림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인간과 상호작용케 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에 따르면 로보레이처럼 인간을 닮은 로봇의 외형과 움직임은 사람들로하여금 '일상적으로 의미있는 도구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로봇'을 시험할만한 본보기가 된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로봇연구
삼성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연구가 지난 2002년 본격 시작됐다고 밝혔지만 두드러진 도약은 지난 2005년 APEC 정상회의서 시연할 목적으로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2004년부터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기반기술팀은 그해 11월 이전까지 지능형 차량시스템, 수술용 보조 로봇, 스마트 인풋 디바이스, 바이오오토메이션 등 지능형 로봇연구에 매진 중이었다. 그런데 2005년 11월 부산전시컨벤션센터(BEXCO) APEC 정상회의에서 시연할 수 있도록 준비해 보라는 정보통신부 특명이 떨어졌다.
사실상 경험해보지 못한 휴머노이드로봇 개발을 1년 안에, 이미 '마루1'을 만든 경험이 있는 KIST을 경합 상대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팀을 이끌던 노경식 수석은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로봇을 만들었고, 이듬해 5월과 9월 2차례 시연을 거치면서 빠른 발전을 이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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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5년 11월 삼성전자가 만든 '마루2'가 BEXCO의 IT전시관 입구에서 21개국 정상을 맞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앞에서 아리랑에 맞춰 춤을 췄다. 행사에 참석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지난 2010년 삼성전자는 국책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로봇관련 특허 60여건을 취득했고 2006년 이후 그간의 문제점을 도출해 1년반동안 98%에 해당하는 대안을 확보, '마루3'를 제작하면서 운용에 필요한 시간과 인력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3년 이상 로보레이 연구개발 과정이나 지적재산 확보 현황은 추가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