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프린팅이 저작권 침해와 같은 실정법 저촉사례로 비화될거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한 팬이 3D프린터로 유명 RPG '파이널판타지(FF)7' 캐릭터 인형(피규어)을 제작했다가 게임 개발사 스퀘어에닉스의 철퇴를 맞았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문제의 FF7 피규어는 전문업체 '셰이프웨이즈'가 제작을 대행해 만들어졌다. 셰이프웨이즈는 설계도면과 재료 등을 의뢰받아 3D 모델을 실물 제작해주는 3D프린팅 서비스업체다.
앞서 셰이프웨이즈가 선보인 FF7 캐릭터 인형이 세계 각지에서 게임 팬들의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해당 콘텐츠의 저작권자인 스퀘어에닉스가 그 인형의 제작과 판매를 금지시키기에 나섰던 것이다. 스퀘어에닉스도 FF7 관련 콘텐츠를 활용한 여러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문제의 FF7 피규어를 만든 디자이너 요아킨 볼드윈과 그가 피규어를 만들어 팔 자리를 제공한 셰이프웨이즈, 그리고 게임 제작사 스퀘어에닉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국 씨넷 기자 닉 스태트가 산업계의 필요로 출발했던 3D프린팅이 점차 취미 영역으로도 확대되면서 불거진 현상의 한 갈래로 약 1개월 전 심층 보도한 내용을 소개한다.
■무슨 일 있었나
FF7의 보수적인 애호가들이 당초 셰이프웨이즈로 몰려든 까닭은 애니메이션 및 독립영화 감독이자 디지털아티스트로 알려진 요아킨 볼드윈이 게임에서 널리 사랑받았던 캐릭터들의 고품질 피규어를 만든 주인공이란 점 덕분이다. 볼드윈은 이전부터 셰이프웨이즈 소속 디자이너로 회사 공식사이트에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형태의 반지, 컵, 액세서리 및 아이폰 케이스 등을 팔고 있었다.
볼드윈이 디자인한 FF7 캐릭터 피규어는 팬들이 게임을 즐길 때 게임 속에서 조작하게 되는 가분수형 3D 캐릭터와 흡사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관심사가 대형 온라인커뮤니티 레딧을 통해 확산됐고 이후 기술과 긱(geek) 문화를 다루는 블로그를 통해 '환상적'이라느니 '완벽하다'는 식의 칭찬 대상으로 회자됐다.
하지만 모든 좋은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었다. 저작권법이란 존재 탓이다. FF7을 개발한 일본 게임업체 스퀘어에닉스, 엄밀히 말해 게임을 발매한 1998년 당시 '스퀘어'는 셰이프웨이 측에 요아킨 볼드윈이 디자인한 FF7 캐릭터 피규어 제작을 그만두라는 경고장을 보냈다.
셰이프웨이즈는 즉각 볼드윈의 상품목록에서 FF7 캐릭터 피규어를 빼버렸다. 볼드윈도 자신에게 이미 대금을 결제하고 자기 차례의 피규어가 3D프린터로 만들어질 때를 기다리던 구매자들에게 주문을 취소하며 환불 절차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창립돼 뉴욕에 본사를 둔 셰이프웨이즈는 3D프린터로 찍어낸 물건을 판매하는 사업뿐아니라 자신의 3D프린터 인프라를 외부 의뢰자들이 제품 생산에 쓸 수 있도록 서비스하기도 했다. 법적 시비 가능성이 제기될 경우 이런 경고성 철회 요청을 즉각 따를 수밖에 없었다.
볼드윈은 스퀘어에닉스로부터 제기된 문제가 드물지 않은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스퀘어에닉스의 경고에 따라 피규어 판매를 중단한 일을 두고 유튜브에 올린 비디오가 저작권 음원을 포함하고 있을 때 게재를 중단당할 수 있는 것처럼 표준적인 절차라고 언급했다.
이어 최근 전체 피규어 세트 한 벌을 만든 이후 내가 엄청나게 인기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 이틀전 2번째 캐릭터 풀세트를 만들어 온라인에 게재했다며 (직후 들어온 스퀘어에닉스 측의 문제제기 같은 것이) 매우 빠르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프린트범죄(Printcrime)'가 현실로?
FF7 캐릭터 피규어에 대한 셰이프웨이즈와 스퀘어에닉스의 일화는 3D프린팅 영역이 급성장할 경우 잠재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복잡한 일들의 본보기로 평가된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어떤 콘텐츠의 팬으로서 누군가 물리적으로 제작해 파는 상품을 사고 싶어 했고, 결국 원 저작권자의 철퇴를 맞았다.
이전부터 저작권법과 3D프린팅은 분명 상충해왔는데, 물건 제작 비용이 떨어지고 창작자들이 그 기술을 활용하거나 그걸 매개로 창의성을 빌려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이어가면서 관련 사안에 대한 논의를 더 오래 끌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FF7 개발사 스퀘어에닉스는 저작권 침해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내세워 왔으며 종종 그 충성스러운 팬들에게조차 관련 사안에 대한 경고를 보낸 일로 유명하다. 이후 FF 시리즈에 관한 광범위한 생태계가 형성됐고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아마도 게임사상 가장 유명한 RPG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았다.
이 생태계에는 다양한 플랫폼에 걸쳐 있는 4개의 파생 게임뿐아니라 여러차례 발매와 재발매를 거듭한 애니메이션 영화와 짤막한 얘기를 담은 시리즈들이 포함된다. 또 스퀘어에닉스는 자체 생산판 고급 액션피규어와 봉제인형과 다른 기념품들도 만들었다. 휴대폰케이스부터 의상까지 아우른다.
적극적인 지적재산 보호 조치는 스퀘어에닉스가 15년 이상 된 플레이스테이션(PS) 게임 하나로 광대한 콘텐츠 상품 시장을 꾸려낸 비결이다. 최근 사례는 소셜펀딩사이트 킥스타터에서 빚어졌다. 지난달초 사이트에서 자발적으로 2만5천달러까지 모금된 FF7 기반 실사 영화 제작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지난해에는 FF 게임의 음원에 기반해 리믹스 사운드트랙으로 제작한 온라인그룹 '오버클럭드리믹스'는 당초 킥스타터에서 그 활동에 대해 목표한 모금액을 넘어선 뒤 완전한 비영리캠페인 모금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CD를 전달받을 이들에게 성의 차원에서 50달러 이상을 받는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돈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셰이프웨이즈 디자이너 볼드윈은 3D 모델 정보를 열어보고 추출하는 프로그램 '바이턴(biturn)'과 '언매스(unmass)'를 동원해 1998년 출시된 PC판 FF7 게임파일에서 3D 캐릭터 데이터를 직접 끄집어내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는 게임속 캐릭터들을 다양한 형체로 프린트할 수 있게 됐다.
볼드윈은 몇년 전 클라우드(FF7 주인공 캐릭터 이름) 피규어를 갓 만들었을 땐 별로 인기가 없었고 딱히 세간의 주목을 받지도 못했다며 그건 다른 게임속 데이터나 어떤 자산을 추출하지 않고 내가 직접 만들어낸 모델이라, 나중에 만든 것처럼 정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볼드윈은 FF7 게임속에서 플레이중 조작하게 되는 3D 캐릭터를 실물로 표현할 재료로 색을 칠한 사암 덩어리를 골랐다. 이는 15년전 PS판 게임에서 처음 그려진 저화질 그래픽 내지 저해상도 폴리곤 3D 모델을 그대로 표현하기에 알맞았다. 이게 등장인물을 실사처럼 멋드러지게 표현한 스퀘어에닉스의 정품 피규어만 쳐다보던 팬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볼드윈이 FF7에서 3D 캐릭터 데이터를 추출해 실물로 제작하기 위해 동원한 장비는 컬러 3D프린터 제조업체 Z코프의 6만달러짜리 프린터였다. 볼드윈은 3D그래픽 편집소프트웨어 '마야'를 사용해, 해당 3D 데이터를 실물로 제작했을 때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을만한 수준의 모델로 개선시켰다. 스퀘어에닉스가 금지시키기 전까지 클라우드 피큐어가 셰이프웨이즈 사이트에서 개당 18달러에 팔렸다.
그가 하고 많은 게임 타이틀중에 FF7을 고른 까닭은 단순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볼드윈은 FF7에 대해 등장 당시 혁명적인 게임이었으며 자신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했다. 자신이 즐긴 게임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많은 팬들이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게임에서 나온 음악을 듣거나 등장한 인물들을 볼 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은 일종의 향수를 느낀다고 했다.
볼드윈은 이틀동안 자신이 만든 피규어들을 크기에 따라 14~30달러씩 받고 판매했다. 특별히 비싼 것이 하나 있었는데 60달러짜리 말 위에 탄 신상이었다. 하지만 이건 테스트용으로만 제작됐고 사이트에 내걸린 2일간 실제 판매된 것중엔 없었다.
볼드윈은 가능한 모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간을 들여서 피규어 속을 비우고 부피를 줄였다며 바렛트같은 덩치 큰 인물의 피규어에 들어가는 비용도 최소화해 사람들이 전체 피규어세트를 더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일개 '팬'들은 아직 무력하다
셰이프웨이즈 사이트에 볼드윈의 FF7 피규어들이 판매용으로 올라온 주간에 그는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엄청난 주문량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이건 볼드윈이 어떤 회사의 저작권 보호대상에 해당하는 다른 누군가의 디자인에 기반한 제품으로 이익을 보려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볼드윈은 완벽한 물리적 형상을 얻어내기 위해 쏟은 엄청난 노력, 이를테면 힘겨웠던 시험 과정과 몇시간동안의 CG 작업 등은 최초에 그런 가격을 제시할만한 이유가 됐다고 주장했다.
셰이프웨이즈는 3D프린팅에 관련된 첨예한 법적 분쟁의 대상에 놓여 있는 입장이라 최근 FF7 피규어 판매를 금지한 스퀘어에닉스의 조치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다만 셰이프웨이즈 공동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 페터르 베이마르스하우선(Peter Weijmarshausen)은 우리는 다른 디자이너들의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커뮤니티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MCA)을 준수하며 지적재산권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콘텐츠 정책에 포함된 엄격한 (상품) 게시중단절차를 따른다며 대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도구는 어떤 기술이든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지만 셰이프웨이즈는 창작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커뮤니티라고 강조했다.
볼드윈은 직접 스퀘어에닉스 측과 파트너십을 맺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난 사업가가 아니라 그냥 팬일 뿐이라, 스퀘어에닉스와 제휴한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그런 거대 기업을 상대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같다며 난 영업이나 영수증 처리를 포함한 일은 안 하려고 셰이프웨이즈를 이용하는 거고, 뭔가 디자인을 해서 만들 수만 있으면 됐지 그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FF7 피규어를 출력할 수 있는 모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중이다. 온라인커뮤니티 레딧 사이트에 대고 과연 '스퀘어에닉스의 법적 제재를 피하면서 FF7 피규어 모델 데이터를 온라인에 게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NASA, 우주에 3D프린터 쏜다...엘리시움 첫발2013.09.19
- 게임 ‘파이널판타지’, 실사 영화로 제작2013.09.19
- 파판7 캐릭터, 3D 프린팅으로 재탄생2013.09.19
- '생각만으로 물건만드는' 3D프린터 나왔다2013.09.19
볼드윈이 만든 피규어를 둘러싸고 요란한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 과정은 최종적으로 제작자들의 혁명과 3D프린팅의 법적 파급효과에 대한 역사의 일부로 기록될 전망이다. 볼드윈은 자신의 제품들이 인터넷을 떠들썩케 했던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만든 피규어 전체 한 벌은 그 사무실 창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볼드윈은 매일 내가 일하는 내내 나를 지켜봐 주는 이 피규어들은 내가 항상 원했던 것들이라 난 이 작품들이 자랑스럽다며 이 피규어들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것을 갖지 못할 거라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