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스토리지업계의 마케팅 논쟁이 벌어졌다. 소프트웨어정의스토리지(SDS)가 그 주인공이다.
논쟁에 불씨를 당긴 건 EMC다. EMC가 지난 5월 SDS제품 바이퍼(ViPR)를 공개한 뒤, 넷앱, HP, IBM, 히타치데이터시스템(HDS) 등 주요 스토리지업체들이 SDS를 앞세웠다.
EMC는 바이퍼를 세계 최초 SDS 제품이라 강조하지만 여타 스토리지업체들은 저마다 이미 SDS를 제공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각 업체마다 설명하는 SDS의 개념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경쟁사의 주장을 허위나 과장이라 반박하면서 자신의 제품이야말로 진짜 SDS라고 설파하는 양상이다. 이에 업체마다 제각각 SDS를 정의하면서, 사용자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EMC 바이퍼, 스토리지 가상화보다 자원관리SW
EMC 바이퍼는 네트워킹 분야에서 대두된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의 개념을 차용했다. 스토리지의 컨트롤 플레인을 데이터 영역에서 추출해 범용 x86서버 가상화 환경에 SW형태로 제어환경을 꾸린 형태다. 바이퍼는 ‘바이퍼 컨트롤러’와 ‘바이퍼 데이터 서비스’ 두 요소로 구성된다.
바이퍼 컨트롤러는 서버와 스토리지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계층이다. 기존 스토리지 제어SW를 가상머신(VM)으로 생성하는 것과 같다.
이를 통해 파일, 블록, 오브젝트 등 이기종 스토리지 환경을 제어한다. EMC의 VMAX, VNX, 아이실론, 아트모스 등 자사 스토리지뿐 아니라, 써드파티 제품과 서버 내장디스크(DAS)까지 관리한다. 프로비저닝, 모니터링, 리포팅, 셀프서비스포털, 대시보드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바이퍼 데이터 서비스는 컨트롤러 상위에 존재하는 서비스 레이어다. 하둡분산파일시스템(HDFS), 아마존웹서비스(AWS) 심플스토리지서비스(S3), 오픈스택 스위프트 등 오브젝트 스토리지를 서비스 형태로 제공한다.
스토리지 하드웨어 상의 변화는 없다. VMAX나 VNX 컨트롤러 등이 그대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바이퍼 컨트롤러와 각 어레이의 컨트롤러가 바이퍼 커널 BIOS와 SMI-S, XML, REST 등의 API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EMC는 스토리지 가상화와 SDS를 구분한다. 수년간 판매돼온 스토리지 가상화 제품과 지향점이 다르다는 얘기다.
바이퍼의 제공기능을 보면, 스토리지 가상화보다 스토리지 자원관리SW에 가깝다. EMC의 아미타브 스리바스타바 어드밴스드시스템사업부 사장의 설명도 맥을 같이 한다.
스리바스타바 사장은 바이퍼를 통해 고객들은 수많은 이기종 스토리지 관리를 집중시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라며 바이퍼의 체크박스에서 31단계에 이르는 프로비저닝 작업을 자동화해준다라고 설명해 스토리지 디바이스 관리에 주안점을 뒀음을 밝혔다.
■애플리케이션 중심 '무중단 운영, 민첩성, 확장성'
바이퍼와 비교되는 경쟁사 제품은 IBM SAN볼륨컨트롤러(SVC), 넷앱 V시리즈, HDS 버추얼스토리지플랫폼(VSP) 등이다. 모두 스토리지 가상화 제품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모두 시장에서 수년째 판매됐던 제품들이다. 이들 역시 스토리지 컨트롤러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해 서버단에 설치하는 형식을 취한다. 차이점은 자사의 제품과 메이저를 제외한 써드파티의 범용 스토리지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바이퍼를 스토리지 자원관리SW로 구분할 경우 대응되는 제품은 HP가 2005년 소개했던 앱IQ다. 스토리지리소스매니지먼트(SRM) 소프트웨어였던 앱IQ는 다른 벤더의 스토리지 어레이를 SMAI-S 표준을 이용해 관리할 수 있게 했다.
최근 EMC의 행보에 대응해 SDS를 강력히 내세우는 회사는 넷앱이다. 현존 스토리지전문업체 중 EMC의 유일한 경쟁자임을 자처하는 회사답다.
넷앱은 FAS시리즈의 운영체제인 클러스터드데이터온탭8.2를 내놓으면서 SDS를 말했다.
넷앱은 무중단 운영, 무한 확장, 검증된 효율성 등을 SDS의 개념에 끌어들였다. 비즈니스 및 애플리케이션 요구사항에 따라 스토리지 인프라를 중단 없이 조정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SAN과 NAS에 신경쓰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에 따른 제반 설치 및 설정이 자동화된다.
데이터에 대한 압축 및 중복제거 기능을 기반으로 한 스탭볼트 D2D 백업 솔루션을 지원해 기업의 비용 절감 효과를 제공하며, 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셋, 애플리케이션, 가상 머신을 즉시 복원할 수 있도록 했다.
제이 키드 넷앱 선임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클러스터드데이터온탭8.2의 SDS비전은 탁월한 민첩성으로 IT의 운영 및 리소스 효율성을 향상시킴은 물론 여러 플랫폼에서 구현 가능한 유연성까지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P의 SDS는 넷앱에 가깝다. 표준 x86기반 아키텍처, 확장성과 통합 관리 등이 HP판 SDS의 개념이다. HP는 스토리지제품군의 명칭을 스토어서브로 바꾸고 3PAR, EVA 등을 단일 아키텍처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넷앱과 HP 같은 회사의 SDS는 관리보다 운영에 초점을 둔다. 무중단과 재해복구 측면을 강조하고, 그에 따른 온라인 마이그레이션 같은 기능을 부각시킨다.
때문에 이기종 스토리지 통합관리의 성격은 희박하다. 기능적으론 관리SW의 기본 기능들이 스토리지OS에 대부분 통합돼 있어 바이퍼와 차이를 찾기 어렵다.
한국넷앱 관계자는 회사마다 SDS에 대한 입장이 달라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라며 어느 누가 맞느냐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는 양상인데 하드웨어 디펜던시를 제외하면 바이퍼의 기능 대부분이 클러스터드데이터온탭에서 제공된다라고 설명했다.
■설득당하기보다, 필요한 것부터 찾아라
경쟁사들은 EMC의 바이퍼가 이미 존재하던 것을 SDS란 마케팅 용어로 포장해낸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굴든 EMC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시장의 가상화 모델은 스토리지 어레이 단을 소프트웨어로 포장만 바꿨다고 볼 수 있다라며 바이퍼는 구글같은 서비스 회사처럼 여러 데이터센터 의 정보를 가장 싼 하드웨어에 저장하고, 고객의 기존 스토리지 환경도 같이 가동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쟁사들은 SW 번들을 가상화해서 그 자체를 가상화된 스토리지라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반박했다.
EMC가 바이퍼에서 경쟁사와 차별점을 두는 부분은 벤더 종속이다. 사용자 선택권 보장이란 점과 특정 하드웨어 구매없이 바이퍼만 있으면 자동화된 SRM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굴든 COO는 고객에 중요한 게 넓은 선택의 폭이다라며 고객의 우리의 스토리지와 VM웨어 가상화만 사용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것이 우리를 경쟁사와 차별화하는 것이며, 고객이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스토리지 시장의 SDS 논쟁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네트워크 시장의 경우 오픈네트워킹파운데이션 같은 비영리재단에서 SDN 개념을 정의하고, 표준화를 주도한다. 여러 솔루션기업들이 모여 SDN 표준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는 오픈데이라이트 같은 연합체도 존재한다. 그만큼 메시지가 명확하다. 무엇보다 고객이 절실하게 원하는 공통의 요구사항을 자신들의 주도로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시작단계부터 개념정리가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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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해 SDS는 벤더 각각에서 주장하는 개념을 정리해줄 조직이 없다. 사용자 측에서 먼저 SDS를 제기한 게 아니라 벤더가 먼저 제시한 것이라 초점에 따라 고객 요구사항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유명 시장조사업체나 컨설팅회사의 개념 정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IT관리자는 솔루션업체의 주도에 따라 SDS를 수용하기보다, 현재 자기 회사의 IT인프라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무엇이냐를 먼저 따져 그에 맞는 솔루션을 찾는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