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어느 날, 열네 살 소년이 친구와 장난스럽게 시작한 웹사이트는 대박을 쳤다. 이 사이트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미래라는 뜻의 아브니르(avenir). 기업간에 제품 재고 등을 교환 판매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만 해도 전자상거래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때였다. 인터넷 무역이라는 방식을 앞장서 제시했던 이 사이트는 GE, 지멘스, 필립스, 웨스팅하우스 등의 유명 대기업을 단번에 고객사로 확보했고 패트릭 라벨 당시 캐나다 국책은행 BDC 회장으로부터 초기투자를 유치했다. 하루 아침에 돈방석에 앉은 열네 살 소년은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이 꿈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계 캐나다인 데이비드 리㉝다. 아브니르는 이름처럼 그의 미래를 밝혔다. 이 회사는 1998년 아이텍스(ITEX)라는 나스닥 등록 캐나다 무역업체 업체로부터 인수됐다. 매각 당시 데이비드 리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는 스물 한 살이 되던 2001년까지 아이텍스 사외이사로 일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데이비드 리는 한국에서 쉐이커미디어라는 스타트업 기업을 설립했다. 쉐이커미디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슈퍼 엔젤’로 불리는 데이브 맥클루어의 ‘500스타트업’이 처음 투자한 한국 회사로 최근 업계서 주목 받고 있다. 500스타트업이 투자한 곳으로는 구글이 3천500억원에 사들인 와일드 파이어, 링크드인에서 1천200억원에 인수한 슬라이드쉐어 등이 있다.
500스타트업 외에도 존 라거링 구글 글로벌 파트너십 총괄이사,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김병기 애플민트홀딩스, 최환진 이그나잇스파크 등 쉐이커미디어 투자자 면면은 화려하다. 데이비드 리 쉐이커미디어 대표는 “2년여 동안 담금질 끝에 탄생한 ‘쉐어커’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출시된 쉐이커는 개인 맞춤형 영상 제작 플랫폼을 표방한다. 데이비드 리 대표는 “영상 콘텐츠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어렵고 비싸다고 인식된다”며 “쉐이커는 쉽고 저렴하게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쉐이커에선 다양한 테마의 영상 템플릿이 제공돼 10분 내외의 시간만 투자하면 5분 분량의 동영상을 완성할 수 있다. 모든 편집 과정이 별도 프로그램 설치 없이 웹브라우저 안에서 가능하다. 저화질 영상은 무료고 고화질 영상은 1만원의 비용만 내면 된다.
이 같은 혁신적 서비스 방식은 투자자들 뿐 아니라 파트너사들의 참여도 이끌어냈다. NHN 쥬니버, 이랜드 코코몽, CJ오쇼핑 등 대기업 뿐 아니라 세이베베(아기의 초음파사진 및 영상을 볼 수 있는 앱), 키즈노트(스마트기기용 어린이집 알림장), 맘스 다이어리(태교·육아일기 무료출판 서비스) 등 육아 모바일 서비스 선두주자들을 초기 파트너로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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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 대표는 “시장에서 성과를 거둘 자신이 있다”면서도 “이제 시작”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그가 자신감을 자만으로 연결하지 않는 데는 한번의 실패 경험이 작용했다. 그는 아이텍스서 나와 2004년 ‘튜토피아(TUTOPIA)’라는 두번째 창업을 시도했다가 “철저하게 망했다.” 튜토피아는 온라인에 접속하면 국가나 시간에 관계없이 강사와 학생간 일대일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일종의 영상 과외 서비스였다.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우쭐대 이를 밀어붙이기만 했지 고객의 반응은 외면했었다”고 했다. 앞선 성공으로 자만했다가 겪은 실패가 그를 성숙하게 만든 셈이다. 때문에 그는 도전 끝의 실패를 값진 경험으로 여긴다.
그는 학력 등 한국 사회에서 중시되는 소위 ‘스펙’도 도전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직원 11명의 쉐어커미디어에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단 3명 뿐이다. 데이비드 리도 중졸이 최종 학력이다. 그는 아브니르 창업 이후 고등학교를 거의 나가지 않았다. 튜토피아를 접은 이후에도 학교 대신 큰 회사로 들어가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데이비드 리 대표는 “배움은 학교 뿐 아니라 현장에도 있다”며 “겁없이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쉐이커미디어는 그의 겁없는 제2 인생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