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을 나는 그림...TV의 발명⑤: 발명의 씨앗

일반입력 :2013/02/01 06:00    수정: 2014/07/24 10:16

이재구 기자

7■20세기 이전부터 싹터 온 전자TV발명의 씨앗

1926년 9월 30일 로기 베어드가 기계식TV 텔레바이저로 방송을 시작했을 때 이미 전자식 TV발명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던 상황이었다.

1897년 독일의 칼 페르디난드 브라운박사가 음극선관, 즉 브라운관을 발명했다. 전자총에서 나온 빛이 스크린에 닿으면 그곳에 미리 발라놓은 감광도료가 번쩍였다.

이 변형된 진공관 (Vacuum Tube)의 빛이 통하는 중간 길목에 자기 코일을 감으면 전자빔을 화면의 상하좌우로 보낼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스크린에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현대의 브라운관TV의 원시적 원리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화답하듯 1912년 미국의 리 드 포레스트는 영국 앰브로즈 플레밍교수가 만든 2극진공관을 개선해 소리를 크게 나오게 하는 증폭 기능의 3극진공관(오디온)을 발명 6년만에 실용화 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수신기능을 하는 음극선관(브라운관 원형),신호증폭기능을 하는 3극진공관이 만들어진 만큼 마지막 관문인 사물을 촬영해 보낼 수 있는 TV카메라(촬상관)과 TV수신관(수상기 브라운관) 발명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사실 파일로 판즈워스가 최초로 전자식TV를 내놓기 이전에 이미 한 영국인이 전자식TV의 원리를 연구해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놓고 있었다.

TV전송기와 수신기의 동기화의 어려움과 함께 이미지를 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큰 데이터를 전송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각 이미지 데이터(픽셀)는 16000~15만엘리먼트(오늘 날의 픽셀)정도는 돼야 하며 최소한 초당 10회의 주사율(scan rate)을 보여야 한다”

1908년 6월 4일, 셸포드 비드웰(Shelford Bedwell)이라는 남자가 네이처지에 글을 올려 주사선을 늘린 보다 또렷한 TV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촉구했다.

그러자 2주일 후인 18일 앨런 아치볼드 캠벨 스윈튼(Alan Archbold Campbell Swinton)이 기계적 장치대신 CRT를 이용해 적절한 TV이미지 신호(주사선)를 뽑아내는 해법을 제시했다. 역시 네이처지에서였다.

그는 ‘원격 전기 비전(Eistant Electric Vision)'라는 제하의 글에서 전자식 TV의 원리를 예언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벽걸이)TV나 LCDTV가 나오기 직전까지 사용되던 브라운관TV의 원리를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었다.

스윈튼은 “이 문제는 2개의 CRT(브라운관)에서 나오는 빔을 동시에 2개의 변화하는 전자석 자기장에 굴절되게 하고 광범위하게 다른 주파수의 교류전류를 사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썼다.

그는 또 “이를 통해 2개 빔이 움직일 수 있는 최대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사람의 눈이 잔상을 기억하는 10분의 1초 동안 화면위를 휩쓸고 지나가게 할 수 있다”는 전자식 주사선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또 “사실 수신장치에 관한 한 움직이는 음극선 빔은 그에 상응하는 형광물질이 발라진 스크린에 충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충돌의 세기 정도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브라운관 TV의 정확한 원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아이디어는 단지 제안 수준에만 머물고 있었다.

전세계 발명가들은 이처럼 라디오에 이은 새로운 발명품, 즉 무선을 통해 음성만 방송되는 라디오방송 외에 그림, 즉 화면도 무선으로 날아다니게 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완성시켜 가고 있었다.

“그것은 빛을 전류로 바꾸는 장치, 전류를 빛으로 바꾸는 장치, 이미지를 나누어 작은 요소(Element 또는 픽셀)로 나누는 주사선장치, 약한 화상신호를 높여주는 전자식 증폭기능 등이었다.”

BBC는 당시 기계식 TV, 전자식TV가 발명될 수 있었던 4가지 상황을 그렇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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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기반으로 해 초기형태로나마 전자식TV가 등장하려면 아직 2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미 영국의 학자 스완슨이 네이처지에 예언했었음에도 이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 이론을 전혀 모르는 가운데 독창적으로 이를 실용화한 주인공은 미국의 한 어린 천재 발명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