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희미한 실루엣
1922년 겨울 영국 남부 헤이스팅스시 링컨 크레센트21번가. 건강상(갑상선항진증)을 이유로 고향 헬렌스버러에서 공기좋은 이곳으로 이사해 온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이곳 퀸스아케이드의 사무실을 빌어 작업장을 만들었다. 그 곳은 라디오가게 1층이었다.
이전에 그는 베어드 언더삭스(Baird UnderSocks)란 회사를 차려 영국군대에 군화,비누 등을 납품했으며, 베네수엘라 오른쪽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까지 갔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별스런 사업가였다. 그는 따뜻한 중남미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으로 가서 잼을 만드는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하지만 결국 말라리아에 걸리자 결국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귀국하기에 이른다.
이 사나이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좀더 괴짜같고 별스러운 데가 있었다. 아이디어가 떠 오르면 식당의 식탁보에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그리곤 하다가 음식값과 함께 테이블 보 값까지 내고 이를 들고 오고 일쑤였다. 1917년 네온등이 발명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이 청년 사업가는 TV를 만들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독일의 니프코프라는 청년이 이미 1884년 자신의 셀레륨을 이용해 빛을 감지하는 (감광) 회전 원판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원격전송하는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청년사업가의 이름은 존 로기 베어드(John Logie Baird, 1888~1946)라고 했다.
그는 물리학,전기공학, 기술을 전공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는 과학자나 발명가라고 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1923년 그는 더타임스에서 한 컬럼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무선으로 보다(Seeing by Wireless)’라는 제목으로 된 한 개인이 쓴 글이었다. 그는 무선으로 보는 기계를 발명하는데 돈을 댈 사람을 찾고 있다며 사서함번호를 타임스에 올렸다.
“그래, 원거리에서 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면 큰 돈이 될 거야.”
그는 아버지와 친구들로부터 250파운드의 사업자금을 빌려 니프코프가 1884년 개발한 회전 원판을 이용한 기계식 텔레비전시스템 제작을 시작했다. 이 기계TV화면에 피사체를 재현시키려면 물체를 스캐닝해 주사선으로 재현해 줄 니프코프의 원형 회전판 발명품을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는 연장을 넣어두던 낡은 상자로 기계식 전송장치인 TV용 모터의 받침대를 만들고 빈과자상자로 네온등을 넣는 케이스를 만들었다. 못쓰는 자전거에서 전등렌즈도 떼어내 이미지를 전송하는 기계를 만들 준비를 마쳤다.
앞서 1907년 아서콘(Arthur Korn)이란 사람이 이미지 전송을 위한 신호조절회로를 개발해 놓은 것도 그에게는 도움이 됐다. 콘의 발명품은 이미지 증폭기능을 하는 진공관 없이도 희미한 톤의 정지화면을 전화선이나 무선으로 전송시킬 수 있게 해 주는 보상회로였다. 이는 이미지를 보내더라도 전송 시간차로 인해 파괴되는 이른바 지연효과(lag effect)를 상쇄시켜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기계식텔레비전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역시 파울 니프코프가 발명한 회전원판과 렌즈를 통해 이미지를 분할해 보여주는 스캐닝 기술이었다.
이렇게 해서 흉물스럽게 태어난 텔레비전은 30라인의 주사선을 가진, 1초에 12번씩 번쩍이는 초당 5장의 사진을 보내는 기계로 세상에 등장했다.
로기 베어드의 TV카메라에서 빠른 속도로 도는 회전원판의 렌즈는 촬영대상인 피사체로부터 나오는 빛을 빨아들였다.
이렇게 분해된 피사체에서 나온 빛의 조각들은 빛을 전기로 바꿔주는 이른바 광전소자(photo electric cell)를 때리게 돼 있었다.
흡수된 좀더 밝은 빛의 조각들은 좀더 많은 전기를, 어두운 빛의 조각들은 적은 전기를 발생시켰다. 이렇게 회전판에서 받아들여진 피사체의 빛의 양에 따라 발전된을 하는 전기는 무선을 타고 TV수신기를 가진 가정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TV수신기의 네온벌브로 하여금 급속히 밝게, 또는 어둡게 피사체의 각 영상조각(bit)을 깜빡여 내보내 주었다. 그러면 TV는 신호수신부에 있는 니프코프 원판을 송신 카메라의 원판 속도와 똑같이 회전시켜 빛의 밝고 흐린 부분을 재현해 주었다. 이 조각난 영상을 직소 퍼즐 조각을 맞추듯 모아 원래 피사체의 모습을 TV영상으로 재현해 냈다.
1923년 2월 헤이스팅스. 로기 베어드는 라디오판매상인 집주인 빅터 밀스의 2층방문을 두드렸다.
“이제 그림을 전송할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로기 베어드의 동영상 전달장치에 팔을 흔들어보았다.
검은 실루엣으로 된 그의 팔이 화면에 비쳤다.
베어드가 놀라움과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여기 나오네, 여기 나와!!(It’s here! It’s here!)”
전세계에서 최초로 동영상이 전달되는 역사적 모습은 이처럼 손의 희미한 검은 실루엣 동작을 전송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베어드는 2년여 동안 이 기계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가 1천볼트의 전기쇼크에 팔을 다치자 집주인 빅터 밀스는 위험한 실험을 하는 그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런던 소호지역에 있는 한 건물 2층으로 이사해 새 작업장을 차리게 됐다.
이제는 손의 실루엣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이 나와야 했다. 그는 이런 목표를 잡고 기계 성능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1925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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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의 로기 베어드는 종이로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실험을 성공한 데 이어 무서운 빌(spooky Bill)이라는 이름을 가진 복화술용 인형의 머리를 전송하는데 성공했다. 희미한 회색 실루엣 이미지로 전송되긴 했지만 사람얼굴모양으로 보이는 것만은 분명했다.
베어드는 이를 텔리바이저(Televisor)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