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을 나는 그림...TV의 발명④:진화의 채비

일반입력 :2013/01/31 06:00    수정: 2014/07/23 17:56

이재구 기자

6■니프코프원판 기계식 TV에서 전자식TV로 진화채비를 하다

1873년 셀레늄(Se)이라는 이상한 물질이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이 물질은 신기하게도 빛을 받으면 전기의 성질을 띠는 광전효과(Photo Electric Effect)를 갖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발명가들은 이 물질의 성질을 전신(텔레그래프)기술과 결합하면 움직이는 그림을 볼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셀레늄은 초기 TV발명가들의 기계식 TV의 발명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셀레늄 셀은 광진공관(phototube)의 발전에 따라 기계식 회전원판 방식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드디어 1926년. 존 로기 베어드와 젠킨스가 각각 영국과 미국에서 기계스캐닝 방식의 디스크를 통해 TV영상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보스턴에 사는 공무원 존 케리 역시 영상을 옮기려는 시도를 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셀레늄으로 수많은 광전지를 만들어 네모판에 붙이고 각각의 광전지에 전선을 연결했다. 다른 쪽에는 전구를 매달았다. 그리고 셀레늄 광전지판 앞에 여러 가지 모양의 물건을 세우고 렌즈로 초점을 맞춰갔다.

그러자 셀(cell)로 된 광전지판은 전구의 점멸에 의해 광전지판 앞에 세워놓은 것과 똑같은 윤곽을 그려냈다. 영상을 멀리 전달하는 최초의 텔레비전을 제작하려는 미국에서의 노력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좋은 영상을 전달받으려면 동일한 면적에 화소가 더 많아져야 했다. 케리의 영상전달기(Telectroscope)는 화소마다 각각 전선을 연결해야 했기에 좋은 화상을 얻으려면 너무 많은 전선을 사용해야 했다. 번거롭고 불편했다.

케리의 발명이 안고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사람은 독일 전기기술자 파울 고틀리브 니프코프(1860-1940)였다. 1884년 그가 개발한 것은 회전식 감광 원판이었다.

니프코프는 셀렌 광전지판 앞에 24개의 구멍을 뚫은 회전할 수 있는 원판을 만들고, 이를 모터로 돌렸다. 구멍을 통해 물체의 이미지를 담은 빛이 순차적으로 광전지에 도달하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하는 신호역시 순차적으로 나온다는 원리에 착안했다.

그 결과 수많은 광전지에서 발생한 신호를 한 개의 전선으로도 다른 곳에 보낼 수 있었다.

이 전기신호를 수신하는 쪽에서는 그 반대 방식으로 이미지를 재생하면 됐다.

니프코프는 “시차를 두고 영상신호를 보내더라도 잔상효과 때문에 전체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영화의 원리를 차용했다. 그가 개발한 주사(走査· scan)방식은 이미지를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니프코프의 이 영상전달장치는 전기망원경(Electric telescope)으로 불렸다.

하지만 불편했다. 이 역시 원판과 모터 이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으로 이뤄져 마치 라디오방송 초기에 사용됐던 불꽃방전 무선통신기를 줄여놓은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전구빛의 밝기에 의존해 물체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는 제약이 많았다. 1884년 당시는 전기신호를 증폭하는 진공관이 발명되기(1906) 이전이었기 때문에 약한 전구의 빛을 전달해 희미한 영상 밖에 볼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음성증폭용 진공관이 실용화된 지 5년만인 1917년 전구보다 강력한 네온등이 발명됐다. 약한 신호에도 불구하고 밝았으며 전기신호의 강약에 따라 밝기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도 있었다. 존 로기 베어드에게 뭔가 영감을 떠오르게 해 준 실마리를 제공해 준 또다른 발명이었다. 마침내 로기 베어드가 만들어 낸 것은 캐비넷 형태의 둔탁하고 커다란 청동 외관을 가진, 누가 봐도 거추장스런 기계장치인 TV였다. 그러나 이 장치는 오늘날까지도 그를 '무선을 통해 이미지를 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명한 사람으로 기록하게 해 주었다.

그를 포함한 이후 기계식 TV 발명가들은 기껏해야 60선에서 100선의 주사선을 가진 TV를 만드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기계식TV는 움직이는 그림을 못본 사람들이 많은 당시 상황에서는 경쟁력이 있었다. 가격은 25파운드였다.

1929년 11월 베어드와 네이던은 프랑스최초의 TV방송국인 텔레비전베어드네이던(Televisoion Baird Nathan)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어 1932년 베어드는 영국에서 최초로 초단파 TV전송에 성공한 발명가가 됐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영국 BBC는 베어드의 30라인 주사선 방식TV를 이용해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BBC에는 이 기술을 대체할 보다 간단하고 정밀도가 높은 방법인 전자식 TV기술이 이미 소개되고 있었다. 1932년 11월2일 BBC는 런던 북쪽 알렉산드라 궁(Alexandra Palace)에서 세계최초로 베어드의 240라인 기계식 TV를 사용했다. 하지만 아이작 셴베르크 EMI-마르코니사 사장은 RCA특허 에미트론기술를 이용한 전자스캐닝 방식 TV시스템(405라인)을 들고 나왔다.

이는 그보다 5년이나 앞선 1931년. E. T. S. 월튼이란 사람이 “만일 텔레비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반드시 음극관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기계적 방식은 실패하게 돼 있다”고 예언적 선언을 한 그대로였다. 로기 베어드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전자식TV는 인쇄물의 페이지를 읽는 눈의 역할을 하는 방식, 즉 오늘날의 주사선 방식으로서 눈으로 줄에서 줄로 책을 읽어가며 책 전체를 읽어 내려가듯 화면을 읽어내는 기술이다. 복잡한 수직 및 수평 편향코일은 이 주사선 움직임을 조절하면서 전자빔이 광전기셀 모자이크의 뒷부분을 스캔하도록 해 준다. 초당 30번 지그재그로 525개의 주사선을 형성하게 된다.

브라운관의 원리를 보면 아주 정밀하게 초점이 맞춰진 전자빔이 전자총에 의해 발생되면 약 1500볼트이상인 전압이 발생하는 전자총 옆의 아노드(Anode)에 의해 전자가 가속된다. 일단 전자총에 의해 빔이 만들어지면 빔은 다이오드에서 타깃(화면)의 뒷쪽으로 가게 된다. 빔의 전자는 속도를 잃고 이 지점에서부터 수직 편향코일에 의해 편향(굴절)돼 효율적으로 타깃(화면)을 스캐닝하게 된다. 물론 전자식 TV역시 발명 초기에는 초당 40~50프레임이어서 흐린 화면이긴 마찬가지였지만 꾸준히 성능이 개선되고 있었다.

1934년 러시아 엔지니어 출신인 EMI의 아이작 셴베르크가 내놓은 실용적인 전자식 TV카메라 에미트론은 즉각 베어드의 기계식TV를 위협했다. 1936년 BBC가 셴베르크 시스템과 베어드 시스템을 격주로 방송한 이래 BBC의 기계식 주사선TV는 점차 쇠퇴해 갔다. 6개월도 안돼 베어드의 시스템은 폐기됐고 전자식시스템이 더욱더 발전성 높은 무선 동영상 전송수단임이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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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1월2일. 알렉산드라궁에서의 전자식TV시연은 결국 향후 TV시장이 전자식TV로 갈 수 밖에 없음을 웅변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결국 베어드TV는 방송한 지 불과 1년 만에 마르코니EMI사의 405라인 전자식TV방송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 엄청난 전자식TV기술을 생각해내고 실제로 만들어낸 전자식 TV의 아버지란 영예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원리와 기술을 발명한 미국의 판즈워스가 자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