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인터넷 소통 흐름이 위협에 처해 있다. 정부가 인터넷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곧 전쟁을 의미한다.”
수잔 크로포드 하버드 로스쿨 교수는 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하자센터에서 열린 ‘인터넷 통제를 둘러싼 권력 전쟁’ 포럼에 참석해 이렇게 경고했다. 크로포드 교수는 오바마 정부에서 기술 특보를 지낸 인물로 민간기구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 (ICANN) 이사회 멤버로도 일한 바 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의 배경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서 폐막된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12)에서 1988년 이후 24년 만에 채택된 새 국제통신규약(ITR)이다. 이 회의에선 ICANN의 인터넷 관리 권한을 유엔 산하의 ITU로 이양하는 것을 포함한 인터넷 통제 조항 신설이 논의됐었다. 중국·러시아 등은 여기에 적극 찬성한 반면 미국과 유럽은 정부의 인터넷 개입을 통한 검열을 우려하며 이에 반대하는 등 대립 양상을 보였다.
결국 총 151개국 중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20여개국이 서명에 불참했고 40여개국이 보류의 뜻을 표명하면서 해당 조항은 최종 반영안에서 제외됐다. 크로포드는 “미국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인터넷 규제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독점해선 안된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인터넷에서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기 위해서 정부가 수직상하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반민주적이자 위험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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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지난 WCIT-12 회의가 인터넷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를 정당화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크로포드 교수는 “2014년 부산에서 열리는 ITU 전권회의에서 후속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라며 “인터넷 기술과 시민들의 인터넷 참여 성숙도가 높은 한국이 인터넷 거버넌스 논의에 리더로서 역할을 다해줘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선 WCIT-12 회의에 한국 대표단 자격으로 참여했던 박윤정 한국뉴욕주립대학교 기술경영과 교수가 “이번 회의는 오픈 인터넷과 이에 반하는 인터넷 통제의 대립 프레임이 아니라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했던 인터넷 통제 모델을 유엔으로 가져가서 국제화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갈등 프레임으로 보는게 맞다”는 반박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인터넷은 늘 개방돼 있어야 한다”는 미국 등 선진국의 표어 아래 숨겨진 패권 수성이라는 이면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