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네트워크업계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의 격랑에 출렁거렸다. 패러다임 교체의 조짐에 최근 10년 중 가장 격동의 시기였다고 볼 정도다. 연구실 속에 머물렀던 SDN은 시장으로 나오자 거함 시스코시스템즈를 떨게 만들었다.
지난 1월 IBM이 돌연 오픈플로 카드를 전면에 꺼내들었다. 일본 NEC와 협력해 오픈플로 컨트롤러와 스위치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IBM은 네트워킹의 새 흐름을 앞서가겠다고 공언했다.
2월 HP도 오픈플로 스위치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업계 최초의 오픈플로 스위치가 등장한 순간이다. HP도 시스코 중심의 네트워크 시장을 뒤바꿀 때가 왔다며 전보다 한층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SDN은 네트워크 장비의 컨트롤 플레인과 데이터 플레인을 따로 분리시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구현 모습은 컨트롤 플레인을 한곳에 집중시킨 중앙의 컨트롤러와 단순 트래픽 전송을 담당하는 여러 데이터 포트들이 연결하는 형태다.
이때 컨트롤러와 데이터 플레인이 상호 통신하는 프로토콜이 필요한데, 현재 가장 많이 개발된 게 오픈플로다. 또 컨트롤러 상위에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해,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리소스를 통합 관리한다.
오픈소스로서 오픈플로와 SDN을 표준화하는 작업은 현재 여러 조직에서 이뤄지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오픈네트워킹파운데이션(ONF)이다. ONF는 지난해 설립돼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으며, 오픈플로 표준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오픈플로는 1.3 버전까지 나와 있다.
오픈플로는 작년까지 미국의 대학교 및 IT기업 연구소 내부에서 주로 연구됐다. 일본, 한국 등의 대학교와 일부 연구소에서 오픈플로 개발에 열중하고 있었다. 브로케이드 같은 네트워크 장비업체도 일찌감치 오픈플로를 강조하는 중이었다.
조용한 혁명을 준비하던 오픈플로와 SDN은 거물급 IT업체의 입을 빌려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브로케이드의 고군분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관심을 끌어모은 것이다. 그러나 그 열기는 네트워크업계 내부에 머물렀다.
4월이었다. SDN과 오픈플로를 마침내 IT시장 중심에 세울 사건이 터졌다. 구글이 오픈플로를 상용망에 적용하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우르스 휄즐 구글 수석부사장은 오픈네트워킹서밋 연설에서 G스케일 네트워크에 오픈플로를 적용한 사례를 발표했다.
구글의 사용사례가 공개되면서 SDN은 마침내 대중 눈앞에 섰다. 그리고 비로소 시스코가 움직였다. 시스코는 6월 시스코 오픈네트워크환경(ONE)이란 개념을 발표한다. 오픈플로와 SDN을 끌어안은 더 큰 소프트웨어 중심의 네트워크가 시스코ONE의 내용이었다. 시스코 개발자 출신들이 설립한 SDN 개발업체인 인시에미 투자 계획도 함께 발표됐다.
8월. 세계 서버 가상화 시장을 석권한 VM웨어가 니시라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니시라는 그동안 오픈플로와 SDN 관련 기술개발을 주도하던 벤처였다. SDN 컨트롤러와 그를 통할하는 관리툴, 애플리케이션을 다수 개발해 사실상 시장 선두주자였다. VM웨어는 니시라를 무려 13억달러에 인수했다. VM웨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 지불이었다.
구글이 SDN을 대중 앞에 세웠다면, VM웨어의 니시라 인수는 시장의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VM웨어의 니시라 인수는 서버 가상화를 커머셜 영역에 안착시킨 VM웨어가 네트워킹 가상화인 SDN을 상용화한다는 걸 의미했다. 이전까지 SDN이 미성숙한 기술이란 업계의 불안감에 다소의 확신을 불어넣은 사건이다.
VM웨어는 SDN을 넘어 데이터센터 전체를 소프트웨어로 정의한다는 'SDD'란 말을 사용했다.
이후 네트워킹 시장은 빠르게 SDN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국내외 통신업체와 인터넷포털업체들이 열심히 숨겨왔던 SDN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시범적용을 넘어 상용망에 적용했다.
한국의 경우 NHN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픈플로를 연구중이었다. KT와 SK텔레콤이 지난 3월부터 검토작업에 돌입했고, 하반기 연구개발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연말에 이르러 국내의 SDN 실력자들이 하나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쿨클라우드는 국내 첫 오픈플로 컨트롤러 개발에 성공했다.
10월 HP의 멕 휘트먼 CEO가 SDN을 공개석상에서 주요 전략으로 발표하며, 시장주도를 선언했다. 시스코는 SDN 역시 자신들의 몫이라 강조했다. 수많은 네트워크장비업체와 컨트롤러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가 연합과 통합을 이어갔다. 명망있는 개발자의 이직이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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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업계와 데이터센터 분야 전체가 내년을 SDN의 시장확산을 기대하고 있다. 시장의 대형 업체들이 SDN을 밀어붙이고, 정부기관과 연구소 중심의 SDN 연구가 상용화 단계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SDN은 시스코가 구축했던 네트워크 장비업체 중심의 시장을 고객 주도로 바꾸는 완전한 혁명으로 이해되고 있다. 패러다임의 교체기를 맞아 시스코는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