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바이올린 재판매 '하나, 안하나'

일반입력 :2012/10/30 08:31    수정: 2012/10/30 08:49

HP의 바이올린(Violin)메모리 재판매 중단 보도 후 열흘이 지났다. HP는 줄곧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그동안 협력자로 보였던 HP와 바이올린메모리가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HP는 당분간 바이올린메모리의 SSD 스토리지 재판매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최대 2년이란 시한에서 유지될 전망이다.

현 상황은 HP의 바이올린메모리 재판매 유지가 시한부일 확률을 높이고 있다. HP 내부 사업조직 간 관계와 외부 요인들이 HP의 단독 행보쪽에 힘을 실어준다.

■HP-바이올린, '타도 오라클'로 의기투합했는데…

HP가 바이올린메모리의 SSD 스토리지를 판매하기 시작한 건 1년전이다. HP는 지난해 바이올린과 ‘하드웨어제품구매협약(Hardware Product Purchase Agreement)’을 맺고 7월 이후 SSD 스토리지 제품을 재판매해왔다.

HP는 바이올린의 VMA 3000을 프로라이언트 DL980 G7 모델과 결합해 판매하기도 했다. HP서버와 VMA3000의 조합은 데이터베이스매니지먼트(DBMS) 환경을 위한 제품으로 HPDBS라 불린다. 이는 ‘오라클 엑사데이터 킬러’란 별칭으로도 통했다. 작년 비슷한 시기 한국HP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HPDBS를 소개하는 등 시장 공략에 열의를 보였다.

HP의 열의는 이후 미묘하게 뒤틀렸다. HP는 올해 7월 3PAR P10000의 SSD 어레이 제품을 출시했다. SSD 512개만 사용하는 대형 제품이다. 또 레프트핸드 P시리즈도 SSD 어레이 모델인 P4900가 새로 나왔다. 3PAR가 하이엔드 제품이라면 레프트핸드는 미드레인지 제품이다.

최근 보도에서 HP는 “3PAR 스토리지가 SSD 스토리지의 전략적 방향”이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바이올린메모리보다 자사의 스토리지 제품에 더 힘을 싣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충분하다. 언론 보도는 HP 내부 관계자를 통해 재판매 계약 중단계획을 전했다.

뒤이어 나온 바이올린 입장은 정반대였다. 바이올린 측은 22일 성명서를 통해 “VMA3000을 HP 비즈니스크리티컬시스템(BCS) 사업부와 협력해 판매하는 것엔 변함없다”라며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인 6000의 추가적인 HP 인증을 위한 POC가 현재 활발히 진행중”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HP의 관계자는 “바이올린 재판매 계약은 2년간 유효하지만, 확대나 추가적인 연장은 없을 것”이라 설명했다.

■HP가 3PAR를 '밀어야 하는', '밀어도 되는' 이유

현재까지 나온 보도에서 HP의 공식입장은 없는 것과 같다. 다만 HP 대변인의 발언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HP의 VMA3000 재판매와 HPDBS를 담당하는 곳은 BCS 사업부다. 그동안 VMA 공급을 맡아온 사업부가 BCS란 점과, HP가 집중하겠다고 밝힌 3PAR는 스토리지 사업부 관할이란 점이 시선을 끈다.

BCS와 스토리지사업부 모두 엔터프라이즈그룹(EG)의 데이브 도나텔리 총괄부사장의 소관이다. 하위 조직으로 스토리지 사업부는 데이비드 스콧 수석부사장, BCS는 마틴 핑크 수석부사장 관할이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올린 측 관계자는 “그동안 단 한번도 HP ISS나 스토리지사업부 쪽과 일하지 않았다”라며 “한번도 거래한 적 없는 쪽에 대해 보도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바이올린메모리와 HP가 협력을 맺을 당시만 해도 HP엔 SSD 스토리지 제품이 없었다. 오라클이 엑사데이터X2를 이용해 HP BCS의 매출을 갉아먹어갈 때 HP는 특별한 카드를 쥐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라클은 엑사데이터X2의 성능우위 중 하나로 SSD 카드를 사용하는 점을 들었다.

SSD 어레이를 갖지 못했던 HP는 바이올린메모리와 협력해야 대항마를 만들었다. 엑사데이터의 공략시장이 미션크리티컬 시장이었던 탓에 해당 영역을 담당했던 BCS가 바이올린메모리 재판매도 담당했던 것이다.

외신 보도에서 한 HP 관련업체 관계자는 “HP는 바이올린메모리 제품을 BCS에 밀어 넣었고, 스토리지 영업팀은 그들의 사업기회가 멀어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라며 “때문에 스토리지 영업 인력은 어디서든 바이올린메모리를 헐뜯었다”고 전했다.

이번 보도는 HP 내부적으로 전략적 결정이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업계 전반의 상황이 바이올린메모리 재판매를 유지할 이유를 점차 희박하게 만드는 탓이다.

HP는 현재 오라클 엑사데이터와 정면 대결할 제품을 절실히 원한다. 오라클은 올해 공개한 엑사데이터X3에 플래시 어레이를 메모리 영역에 투입해 속도와 성능을 더 높였다고 강조했다.

HP가 새로운 엑사데이터에 대응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현 HP 앱시스템에 SSD나 플레시 스토리지 어레이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HP가 SSD 어레이를 앱시스템에 통합시키는 건 무의미하다. HP 파트너이자 오라클과 경쟁하는 데이터웨어하우징(DW) 솔루션업체가 SSD 어레이를 무의미한 존재로 여기는 탓이다.

SAP HANA가 대표적이다. SAP HANA는 스토리지 디스크 대신 서버의 메모리 영역에서 데이터 프로세싱을 처리한다. 결과값은 메모리 영역에 상존하며, 스토리지 어레이는 백업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HANA를 위한 HP 앱시스템에 SSD 어레이를 넣어도 백업 속도 개선 외에 특별한 혜택이 없다.

대규모로 인프라를 확장한다면 차라리 VMA보다 한번에 대용량을 지원하는 3PAR가 나을 수 있다. 3PAR P10000은 프로라이언트 서버 Gen8의 스마트 캐싱을 지원한다. 서버와 PCI익스프레스로 연결돼 3PAR 스토리지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서버 SSD 캐시에 옮겨 놓는다.

현재 인텔 샌디브릿지 제온 기반 프로라이언트 Gen8은 2소켓과 4소켓 제품으로만 나온 상태다. 8소켓 모델인 DL980의 경우는 인텔 샌디브릿지 아키텍처를 사용할 수 없다.

제온 E7이 웨스트미어 기반이고, 인텔이 8소켓 샌디브릿지 제품을 내년에나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HP는 샌디브릿지 기반의 DL980 Gen8을 내놓을 수 있는 내년까지만 바이올린메모리에 의존하면 된다.

HP는 서버에 장착하는 플래시 카드를 퓨전IO OEM 제품으로 공급하고 있다. 퓨전IO와 HP의 관계도 바이올린메모리 이후 비슷한 시기 맺어졌다. 바이올린과 정반대로 퓨전IO와 HP 관계는 매우 돈독해 보인다. 퓨전IO가 HP 매출을 위협하지 않는 탓이다.

최근 퓨전IO의 데이비드 플린 CEO 겸 회장은 분기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HP와 바이올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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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 CEO는 “바이올린과 HP 사이의 관계는 오랜 시간 긴장관계였고 퓨전IO는 그 수혜자였다”라며 “HP와 바이올린은 실제로 좋은 파트너 관계를 만들지 않았는데, 그들의 바이올린이 HP의 현재 포트폴리오와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바이올린메모리와 퓨전IO는 SSD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전혀 다른 행보를 걸어왔다. 바이올린메모리가 SSD 스토리지 박스를 생산한 것과 달리, 퓨전IO는 PCI 익스프레스 카드 제품만 판매한다. 데이비드 플린 CEO는 “우리는 ‘프랑켄 박스’를 판매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