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 "네트워크 처리속도 경쟁 끝났다"

일반입력 :2012/10/22 11:50

“아무리 좋은 차를 가졌다고 해도, 도로가 막히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얼마전 기자와 만난 손일권 시스코코리아 기업&금융산업본부 부사장이 한 말이다. 손 부사장은 최근 출시된 신제품 ‘시스코 넥서스 3548’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국내외 네트워크 장비 시장엔 초저지연(로레이턴시)이란 유행이 불었다. 성능보다 같은 시간동안 트래픽을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느냐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아리스타, 멜라녹스 등이 로레이턴시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들은 나노초란 처리속도를 앞세워 금융권의 초단타매매(HFT) 시스템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 처리속도 경쟁은 '로레이턴시'를 넘어 '울트라로레이턴시'란 말까지 만들어냈다.

넥서스 3548의 190나노초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처리 속도다. 세계서 가장 빠른 초고속 자동차를 내놓은 셈이다. 그런데 손일권 부사장은 “처리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래속도가 중요하다”며 190나노초 너머의 주제를 말했다. 자동차와 도로에 대한 비유는 그에 대한 언급이었다. 손 부사장은 “넥서스3548이 처리속도 관점에서 경쟁을 종식시키겠지만, 처리속도를 시스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라 볼 수 없다”라며 “HFT에서 중요한 건 전체 거래속도를 높이는 것이지 처리속도를 높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넥서스3548은 190나노초의 대기시간(레이턴시)을 제공하는 10기가비트(Gb) 이더넷 스위치다. 지난 11일 출시된 이 제품에 대해 시스코는 200나노초 벽을 깨뜨렸다고 강조했다. 고성능컴퓨팅(HPC), 금융 트레이딩 시스템, 데이터센터 등 속도에 민감한 시스템에 적합하다는 점도 언급됐다.

증권사의 HFT는 눈깜짝할 사이에 거래가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얼마나 좋은 가격에, 원하는 거래를 완료하느냐로 이익과 손해가 갈린다.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 중 네트워크 장비의 처리속도는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장비의 처리속도가 빨라진다고 전체 시스템이 빨라지고, 거래속도까지 빨라지는 건 아니다.

손 부사장은 “HFT의 빠른 거래속도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처리시간이다”라며 “처리시간을 개선하는 것과 함께 네트워크의 가시성을 확보해야 궁극적으로 HFT 이용고객의 거래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네트워크는 시간과 시점에 따라 속도차이가 변화한다. 같은 대역폭에 많은 사용자가 몰리면 느려질 수 있다. 이때 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는 방안이 로레이턴시 장비라면, 그에 더해 네트워크 요소요소에 나타나는 병목현상을 빠르게 해소시켜야 전반적인 속도개선을 달성할 수 있다. 인프라 운영자 입장에서 가시성 확보가 중요한 이유다.

손 부사장은 넥서스 3548에 투입된 신기술인 ‘알고리즘 부스트’가 단순히 처리속도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알고리즘 부스트는 패킷 검토작업을 병렬로 처리해 처리속도를 높이는 ‘워프(WARP) 모드’와, 스위치 실사용 시 성능에 대한 가시성을 제공하는 트래픽 관리 ‘프레임워크’로 구성된다. ‘액티브 버퍼 모니터링’이 성능 현황을 보여주기 위해 도입된 기술이다.

액티브 버퍼 모니터링은 스위치의 버퍼 영역을 모니터하는 기술이다. 성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알려준다.

손 부사장은 이중 액티브 버퍼 모니터링을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 액티브 버퍼 모니터링이란 기술 자체도 나노초로 처리한다는 게 중요하다”라며 “운영자에게 가시성을 확보해주는 기능이 빨라질 때 전체 거래속도 자체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넥서스3548은 가시성 부분까지 ASIC 기반으로 새로 구현했다는 게 핵심적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같은 메시지를 두고 IT솔루션이 비즈니스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 측면으로 접근했다. 그는 “고객 비즈니스가 IT의 인프라나 기술의 한계에 종속될 수밖에 없어 발전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라며 “넥서스3548은 비즈니스의 지향점을 기술이 인에이블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시스코의 핵심 전략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가시성을 언급한 이유는 ‘캐즘’이란 용어로도 설명됐다. 그는 “얼리어답터가 새 기능에 환호하더라도, 사업적 관점에서 유용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구매로 연결되기까지 캐즘이 존재한다”라며 “지엽적 기능만으론 캐즘을 넘지 못하며, 고객의 사업목적에 부합하는 솔루션을 내놔야 캐즘을 넘어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넥서스3548 출시를 발표한 후 금융권을 비롯한 고객사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밝혔다. 18일 진행한 금융권 고객 대상 세미나에도 국내 금융, 증권 고객 대부분이 참석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로레이턴시는 빠른 거래속도를 구현하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새로운 기술을 사업에 정말 유용하고 실용적인지, 사업에 어떤 변화를 주느냐를 넥서스3548 발표 후 고객이 보낸 반응에서 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손 부사장은 넥서스3548의 시장이 금융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금융산업 외에 차세대 데이터센터 시장에도 큰 가능성을 봤다.

그는 “넥서스3548은 금융권이란 특정 시장을 위해 개발된 게 아니라 차세대 데이터센터란 큰 관점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개발된 것이다”라며 “서버와 서버 간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는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분야에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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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자동차와 도로에 대한 비유를 들었다. 넥서스3548의 총소유비용(TCO) 절감효과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시중엔 연비 좋은 자동차가 많이 나오지요. 하지만 목적지까지 가는데 빨리 달리지 못하면 연비가 아무리 좋아도 기름을 많이 쓰게 됩니다. 같은 기름의 양으로 얼마나 긴 거리를 가느냐는 자동차뿐 아니라, 막히지 않고 잘 뚫린 도로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