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 외엔 딴 짓 못하네 '크레마'

일반입력 :2012/10/12 13:12

남혜현 기자

서점이 만든 전자책 단말기는 어떻게 다를까. 열흘간 예약판매만 4천대, 지난 한 달 반 사이 8천대 가까이 팔린 '크레마'를 일주일간 써봤다.

화려한 색상, 빠른 응답 속도에 익숙한 스마트폰, 태블릿 사용자라면 적어도 하룻 동안은 크레마에 적응이 어렵다. 흑백 화면은 어색하고,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드는 '깜빡'하는 시간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첫 두세페이지를 넘길때는 '로딩중(loading)' 에서 한참 머무른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사람들엔 어색한 침묵이다.

크레마의 진가는 인내심을 가지는 순간 나타난다. 열페이지를 넘겨보면 서점들이 왜 돈들여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려 하는지 알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깜빡임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손가락에 침 묻혀 종이를 넘기는 시간이나 페이지 전환하는 '깜박'하는 시간이 엇비슷해 독서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정도다.

우선, 크레마는 그간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더 적합하다. 스마트폰만 들여보는 아들에, '세계문학전집' 같은 양서를 읽히고 싶은 부모들에 추천한다. 연초, 일주일에 최소한 한 권 정도는 책을 읽겠다고 다짐한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볼 만 하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독서 외에는 도무지 활용도가 없는 기기라서다. 그 흔한 게임도 지원하지 않는다. 와이파이로 접속, 인터넷에 연결되긴 하지만 반응속도가 느리다. 인터넷을 실행하면 포털 사이트가 '흑백'으로 표출되는 재밌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크레마로 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다른 책 구입에도 선뜻 지갑을 열 확률이 크다. 스마트폰과는 달리 책을 읽는 기분이 난다. LCD 창을 오래볼 때 나타나는 눈부심이나 어지럼증이 없다. 침대나 쇼파에 몸을 기대고 누워 크레마로 소설을 읽는데, 반 권을 읽을 때까지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밖에서 책 읽기도 편하다. 지하철에서 두꺼운 종이책을 한 손에 잡고 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본 사람은 안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도록 엄지와 새끼 손가락으로 책의 양 페이지를 힘주고 눌러줘야 한다. 그래도 종이를 넘기는 덴 다른 손이 필요하다. 손이 작은 사람이면 이같은 자세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크레마는 그런 면에서 종이책보다 편하다. 오른손잡이라면, 왼손 네손가락으로 단말기를 가볍게 쥐고 엄지로 페이지를 쓸어 넘기면 된다. 오른손은 자유다. 커피를 들고 마셔도 되고, 다른 짐을 들고 있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무게다. 215g 무게로 손목에 부담이 되지 않을 만큼 가벼운데 약 3천권의 책을 담을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꿈같은 상황이다. 6만종 이상의 전자책을 판매한다곤 하지만, 구매시 마음에 드는 책을 3천권이나 고를 만큼 가짓수가 풍부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희망적인 부분은 전자책 출간이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이책 베스트셀러 100권 중 현재 35권 정도가 전자책으로 발간된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동시 발간되는 경우도 늘었다. 전자책이 종이책 판매량을 갉아먹기 보다는, 동시 발간으로 독서 인구를 늘리는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출판사도 하나둘씩 증가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지원한다는 점도, 반가운 소식이다. 크레마서 읽던 도서 페이지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서도 그대로 이어 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문구는 SNS를 통해 친구와 공유할 수 있고, 형광펜 표시를 하거나 페이지를 저장해 놓는 것이 가능하다.

전자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얼마나 책을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는가다. 크레마는 생각보다 편리하다. 온라인 쇼핑몰 결제 시스템이 도입됐다. 휴대폰 소액 결제도 가능한데, 와이파이가 연결된 상황에선 언제든 도서를 구매할 수 있다. 책 한 권을 골라 구매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 걸리지 않는다. 이 책을 내려받아 단말기에 저장하는덴 30초 안팎이면 충분하다.

다만 예스24에서 구매한 단말기는 예스24에서만, 알라딘서 구매한 단말기는 알라딘 온라인 서점에서만 책을 사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각 서점서 산 책을 한 단말기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구매는 어려워도 '동기화' 기능을 통해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영풍문고, 대교리브로, 대교북스 등 6개 서점서 구매한 책들을 불러올 수 있다.

팔렸다고 끝은 아니다. 크레마는 아직 완성된 기기는 아니다. 한국이퍼브 측은 내달 15일을 기점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 책을 읽는 사용자환경(UI)를 개선하고 PC에 저장한 텍스트나 한글 파일을 불러와 읽을 수 있는 뷰어를 지원할 예정이다. 여기에 사전 기능을 도입, 활용도를 높인다는 생각이다.

배터리 시간이 오래가는 것도 덕목이다. 기자는 지난 일주일간 하루 한두시간 이상 사용하면서 단 한번도 충전하지 않았다. 한국이퍼브쪽에 따르면 크레마는 완전 충전시 400시간 이상 사용이 가능하다. e잉크 단말기 특성상, 화면 보호기 모드에선 배터리가 소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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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흡족하진 않지만 터치로 동작이 가능하다는 점, 가격이 12만9천원으로 저렴하다는 점 등은 매력적이다. 스마트폰 외에 두번째 모바일 단말기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만족 여부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으나, 2만여종의 무료 도서를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다. 예스24 도서관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은 전자책을 대여해 볼 수 있다.

적은 돈 들여 책을 읽고 싶은 사람, 가방이 무거워지는게 싫은 사람은 크레마를 써볼만 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빠른 응답시간에 익숙해진 사람, 단말기에서 게임을 하고 싶거나 인터넷을 쓰고 싶은 사람은 e잉크보다는 태블릿을 선택해야 한다. 크레마는 완벽하진 않지만, 전자책에 친숙해질 기회를 주는 단말기로는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