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소송 핵심, '이디스커버리' 주목해야

일반입력 :2012/09/27 09:03    수정: 2012/09/27 15:57

손경호 기자

#지난 23일 SK하이닉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북부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램버스와의 특허 침해 소송 환송심에서 유리한 결정을 받았다. 램버스가 재판 기간 소송에 불리한 증거를 파기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2009년 3월 1심에서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램버스의 악의적인 증거파기가 인정돼 1심의 환송심이 결정됐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패소하게 된 요인 중 하나는 '구글과 삼성 간의 회의록', '삼성과 애플을 비교한 내부 메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애플, 스마트폰 양대 거인 간 세기의 특허 대결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서도 이디스커버리(e-discovery)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더해지고 있다. 27일 국내 보안업계에서는 갈수록 늘어나는 글로벌 특허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이디스커버리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내에 유통되는 모든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위 사례와 같은 판결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미국 내에만 존재하는 디스커버리(증거개시제)가 있다. 이는 미국 법원에서 소송이 벌어질 때 상대방에게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는 제도로 만약 재판기간 중 요청한 자료가 삭제됐거나 은폐하려는 시도가 발견됐을 때 당사자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진다.

종이문서보다 이메일, 워드, PDF 등 전자문서가 회사 내 문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제도는 전자문서를 포함해 '이디스커버리 제도'로 진화했다.

글로벌 기업들 간에 특허 소송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디스커버리 제도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기존에 확보하고 있는 자료 중 중요한 정보를 수집, 분석,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재검토할 수 있는 기록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만건 이상 오가는 문서들 중에서 특허와 같이 중요한 내용을 다루는 전자문서의 경우는 별도로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소송 과정에서 문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다면 사전에 내부 문건에 대해 보다 발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디스커버리 어떻게 쓰이나...전문 솔루션 필요

이디스커버리는 기업, 기관이 산업이나 업무에 적용되는 규정에 대해 준수하고, 내부조사나 법적대응의 증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전자적으로 저장된 정보를 구분, 수집, 보관, 조회, 생산하는 일련의 절차로 미국에서만 적용된다.

일단 미국 내에 특허 관련 민사소송이 벌어지면 각 기업 변호사들은 법적 소송 과정에서 상대 변호사에게 소송쟁점과 관련, 언제까지 어떤 데이터를 내놓으라고 요청한다. 이런 내용이 받아들여지면 두 기업은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데이터에서 요청한 사항을 수집해 제공해야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이메일 등 전자문서가 오가는 상황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내고,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이디스커버리 솔루션이다.

신수정 인포섹 대표는 EMC나 시만텍 같은 기업들은 일찌감치 이디스커버리 분야에 진출해 소송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감사, 정보 유출 로깅과 분석 등에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국내 준비상황은 미흡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EMC의 경우 이미 3년전에 아카이빙, 이디스커버리, 컴플라이언스 지원을 통해 기업 내 유통되는 모든 콘텐츠를 중앙집중식으로 관리하는 'EMC 소스원'을 통해 전자저장정보를 찾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밖에 EMC 소스원 이디스커버리 카제온이라는 솔루션을 통해 기업 내 전자 문서에 대한 소송이나 법적인 검토가 필요할 때 필요한 문서들을 수집하고 분류한다.

시만텍은 작년 5월 이디스커버리 전문기업인 클리어웰 시스템즈를 인수해 기존에 엔터프라이즈 볼트와 함께 이디스커버리 솔루션 사업을 강화해왔다.

이디스커버리 준비 필요성에 대해 시만텍 코리아 윤광택 이사는 미국에만 해당되는 법이지만 미국과 비지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다며 이메일 등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아직 준비 미흡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이 제도에 대한 준비가 마련돼있지 않다. 미국법에 따른 제도에 굳이 한국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냐는 시각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더존정보보호서비스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소만사)이 이메일 등을 관리하는 이디스커버리 관련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디스커버리 자체에 대응한다기보다는 기업 내 문서의 외부유출을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이찬우 더존정보보호서비스 대표는 이디스커버리는 빅데이터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며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한 이메일만 관리하는 방식은 단편적인 얘기에 불과하고, 앞으로는 기업 전체에 유통되고 있는 서류를 손쉽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이디스커버리 대응을 포함한 지식행정시스템(KMS)을 실무에 적용할 때라고 밝혔다.■이디스커버리 긍정적인 부분 봐야

간혹 이디스커버리 제도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두고 소송에서 불리한 자료는 흔적없이 잘 지워야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긍정적인 측면을 먼저 봐야한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한 기업이 3년동안 수집한 이메일만 수십, 수백만개에 달한다며 자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말은 바꿔 말해 중요한 기록을 언제 어느 때나 쉽게 꺼내 볼 수 있도록 잘 관리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수백 개의 방에서 필요한 문서파일을 수집해 필요할 때마다 파일을 확보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을 이디스커버리 대응전략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남들이 방마다 일일이 열어보고 숨어있는 문서를 찾는 것에 비해 효율적이다.

구글검색을 예로 들 수도 있다. 키워드를 입력하면 이슈가 되는 사안을 검색결과 제일 앞쪽에 올리는 검색 알고리즘처럼 회사 내에서도 정보를 잘 갈무리하는 방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이 제도에 대응한다는 의미는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베이스(DB) 자체를 풀백업한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특허 분쟁과 같은 이슈가 터졌을 때 필요한 자료를 잘 찾아 낼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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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기업 내 유통되고 있는 문서들이 중앙 집중형으로 사내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 이상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PC에만 남게 된다. 미국 내 특허 소송 과정에서 필요한 3년치 특허관련 자료가 이 임직원의 PC에만 있었는데 PC를 분실했다고 가정하면 이디스커버리 제도에 따라 증거불충분으로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디스커버리 제도는 죄를 지어서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는 특허 소송과 같은 이슈가 생겼을 때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주요 대응 전략의 하나로 고려해야 하는 시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