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친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유산 상속 다툼을 다룬 2차 공개재판이 27일 서울지방법원 민사32부(서창원 부장판사)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에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을 비롯한 원고측이 언제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남긴 차명주식의 존재를 알았는지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재판의 핵심 '제척기간'
재판의 핵심은 원고측이 이병철 선대회장의 차명주식 존재를 언제 알게 됐는지 여부에 집중됐다. 유산 상속이 발생한 시기, 상속 당사자가 유산의 존재를 인지한 시점 등에 따라 원고측 상속 청구가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측은 피고 이건희가 소송요건인 제척기간에 관한 심리단계에서 민법 제999조가 정한 '참칭상속인'에도 해당되므로 원고들의 청구는 반드시 민법이 정한 제척기간 내에 제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 측이 제척기간을 강조한 것은 이유가 있다. 만약 원고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사망 시점에 차명주식을 인지했거나, 지난 삼성 특검 당시 알게됐다면 유산 상속 청구 소송이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본안 심리 전에 제척 기간 다툼만으로 재판부가 사건을 기각할 가능성도 크다.
때문에 이 회장 측은 원고들이 이미 차명주식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을 뿐더러 피고 이건희는 선대회장과 같은 방식으로 그룹 비서실을 통해 이 사건이 말하는 차명주식을 점유, 관리해 왔다며 이같은 사실을 원고들에 숨긴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원고측은 차명주식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을 그동안 형제들 몰래 숨겨 왔으며, 실명 전환 이후에도 은닉해 왔다는 것이다. 원고측 변호인은 몰래 숨기고 오래 감추면 자기것이 되는가, 그것은 '도둑놈의 논리' 아니냐고 반박했다.
또 이건희 회장이 참칭상속인으로서 외관을 갖추려면 대외적, 대사회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야 했다며 주식의 경우 최소한 명의개시라도 했어야 하는데 이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모두 법리 공방의 대상이 된 차명 주식이 상속으로 발생한 것임에 동의했다. 그러나 피고 측은 이병철 선대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만든 차명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단독 상속인'으로 물려받았음을, 원고측은 이 회장이 공동상속분을 홀로 가로챈 것임을 주장했다.
이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 그룹을 경영하던 시절부터 차명주식은 존재했고 이를 그룹 경영에 관여한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며 지난 1976년 증권거래법이 개정되면서 1대 주주가 10%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지 못하게 됐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업들이 공공연하게 차명주식을 운영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맹희 씨 측은 이건희 회장 측이 '공동 상속' 분인 차명주식을 가로챈 것이라 반박했다. 단독 상속이 되려면 유언이나 상속포기, 또는 상속재산분할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상속 당시 이같은 요건이 하나도 성립되지 않았다는것이다.
공방이 이어지자 서창원 부장판사는 피고 측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남긴 차명주식의 '단독 상속자'라는 법리적 근거를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서 부장판사는 원고측엔 만약 이맹희 씨나 유족들이 차명주식의 존재를 몰랐다면, 이병철 선대회장 사후에 이건희 회장이 어떠한 방법으로 삼성 그룹을 경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지 밝혀달라고 말했다.
■삼성생명 차명 주식 비율 공개.. 삼성전자는?
이날 피고측은 1988년 5월 열린 삼성생명 정기 주주총회 보고서를 바탕으로 당시 발행된 주식 60만주 중 28%에 해당하는 16만8천주가 차명주식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08년 특검 당시에도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특검도 밝히지 못했던 과거 차명주식 보유량을 삼성이 먼저 공개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그간 참칭상속인으로서 꾸준히 상속분을 점유하고 관리해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피고측은 삼성생명 외에 삼성전자의 차명 주식 보유분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피고측 법률대변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윤재윤 변호사는 삼성전자 주식은 중소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래량이 많다면서 이건희 회장은 물론 삼성전자 쪽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차명에서 실명으로 전환한 시기도 논란거리가 됐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008년 12월 31일에 지분변동 신고를 통해 차명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했으나, 당사자인 이건희 회장이 이를 공시한 것은 2009년 2월 18일이다.
원고측은 이를두고 특검이 수차례 압수수색을 할 때도 나오지 않던 자료가 이제야 나왔다. 자기 주장을 하기 위해서 꺼낸 것 아닌가라며 이건희 회장 측은 차명주식 관련자료를 실명 전환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은닉, 관리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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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부장판사는 상속재산 협의분할의 사실관계, 주권 점유에 대한 법리 주장, 차명주식의 배타적 점유에 관한 법리 해석 등을 다음 변론기일까지 제시할 것을 양측에 명령했다. 아울러 변론 기일이 끝난 후 원고측이 주장한 삼성 특검 당시 사건기록 열람 등 증거 조사를 결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삼성가 차명주식 상속다툼을 다룬 3차 공개재판은 내달 25일 열릴 예정이다. 이날 핵심이 됐던 '제척기간'에 대한 판결도 다음 공판서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