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출판사-유통사 공존하려면…"

일반입력 :2012/06/24 09:48    수정: 2012/06/25 10:32

남혜현 기자

교보문고 본사가 왜 파주로 이전했는지 아십니까? 살벌한 위기의식을 느끼는 겁니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변환(Shift) 속도가 아직은 느리지만 곧 빨라질 겁니다. 그런 상황이 갑자기 오면 대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준비하라는 겁니다.

전자책에 관한 관심은 뜨거웠다. 22일 오후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전자책 생태계 전략 세미나'엔 400명이 넘는 참관객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컨퍼런스룸 뒷쪽엔 서있을 자리도 부족했다. 열어놓은 문 때문에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발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발표자들은 최근 전자책 시장 흐름을 설명하며 생태계 구성원들의 적극적 참여를 촉구했다. 올해 전자책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맞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정확한 현실 인식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다.

성대훈 교보문고 디지털콘텐츠 팀장은 교보문고도 지금 살벌한 위기의식을 느낀다라며 그런데 출판사들은 플랫폼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 정확히 무엇을 해야할지는 판단하지 못하고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자들은 이미 종이책과 전자책을 소장과 소비의 가치로 나누어 구매하고 있다면서 출판사들이 어떤 책을 출간해야 하는지 그 목적과 가치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유통업체와 출판사간 뿌리깊은 불신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짚었다. 출판사들이 애플이나 아마존 등엔 전자책 판매를 꺼리지 않으면서 국내 유통업체의 결제 시스템은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펭귄 등 해외 유명 출판사들은 특정 조건만 맞으면 유통업체에 차별없이 도서 판매를 맡긴다는 사례도 들었다.

전자책 가격에 대한 합의도 서둘러야 할 부분으로 언급했다. 종이책과 가격이 같거나 비슷하다면 소비자들이 굳이 전자책을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값 할인 이벤트에선 전자책이 수천권씩 팔리다가도 행사가 끝나고 나면 판매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현실이 이를 방증하다고 성 팀장은 설명했다.

그는 출판사들이 아마존이나 애플엔 책을 주면서 국내 유통업체를 못 믿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도서 유통, 적정한 전자책 가격 책정, 각 출판사에 맞는 전자책 카테고리 설정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가 지나친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도서를 한 권 구매할 때마다 매번 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모바일ISP를 실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시장 성장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유통사마다 모두 다른 DRM을 채택하는 현실도 시장 활성화엔 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병훈 유페이퍼 대표는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고 법과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애플이나 아마존은 카드 번호를 한 번만 저장하면 클릭 한 번으로 도서를 구매하게 하는데 이는 편의성 면에서 엄청난 경쟁력이라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 소비자들이 도서를 한 권 사면 자신이 소유한 여러 단말기서 두루 보고싶어 한다면서 유통업체, 출판사, 단말기마다 모두 다른 DRM을 채택하면 결국 도서 판매량도 줄어 독자와 콘텐츠 생산자 모두에 불이익이라고 말했다.

전자책 시장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가까운 시일내에 애플이나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전자책 유통업체들이 국내 진출할 가능성도 점쳤다. 그러나 이날 발표자들은 겁먹을 것 없다. 오히려 환영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이병훈 대표는 오히려 박수치며 환영하자면서 다양한 사업 제휴와 콘텐츠 제공으로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한열 북잼 대표는 해외 플랫폼이 국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크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면서 예컨대 구글 같은 경우엔 기존 국내 대기업들의 경쟁력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망했다.

다양한 시장 참여자가 늘면서 전자책 시장도 이젠 수익성을 고려해봐야 할 시기란 분석도 나왔다. 과거에는 익지도 않은 벼를 급한 마음에 수확해 밥을 지었다면, 이젠 밥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한 품종 개량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남지원 북큐브네트워크 이사는 올해 유료 판매된 전자책의 비중은 16% 라며 배를 곯는 시기는 지났지만, 이제 막 끼니 걱정을 벗어난 정도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설명했다.

국외 시장 진출 필요에 대한 공감도 형성됐다. 질의응답 중 객석에서 국외 교포를 겨냥한 전자책 유통도 고려돼야 하지 않느냐, 실제로 이 시장을 살펴볼 수 있는 구체적 사례가 없나라고 묻자 김원중 이니셜커뮤니케이션즈 팀장은 실제로 판매량을 보면 해외서 전자책을 구매하는 비율이 꽤 높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벤트를 하는 등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성대훈 팀장도 미국선 도서 한 권의 가격이 한국보다 3배나 비싸다. 한국서 1만원짜리 책이 미국선 3만원인 셈이다. 그런데 1만원짜리 종이책을 전자책으론 4천원에 판다. 전자책 가격은 미국이나 한국이 같기 때문에 외국 시장서 전자책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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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자리엔 ▲이병훈 유페이펴 대표 ▲조용보 SK플래닛 팀장 ▲김병희 예스24 팀장 ▲임세원 인터파크 팀장 ▲남지원 북큐브네트워크 이사 ▲김원중 이니셜커뮤니케이션즈(리디북스) 팀장 ▲조한열 북잼 대표 ▲성대훈 교보문고 팀장이 참여해 전자책 시장의 현주소와 비전을 논했다.

사회를 맡은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8개 유통업체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긴 처음이라며 전자책 생태계 전반을 조망하고, 향후 주요 이슈를 두루 점검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자리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