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게임업계는 ‘최대 수출 실적 갱신’과 ‘셧다운제’라는 호재와 악재를 한꺼번에 만났다. 기회와 위기의 양면을 모두 맛본 셈이다. 올 초에는 학교폭력사태에 휘말리면서 위기감이 더욱 커졌다. 진흥과 규제의 균형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계기다.
게임문화재단이 25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개최한 ‘게임의 사회적 문화적 위상제고를 위한 심포지엄’에선 학계, 업계, 정부부처, 법률계, 시민단체가 모여 이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눴다. 이들 전문가는 게임문화 정책을 진단하면서 문제점을 공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게임 규제 중복 심각…“법제 합리화 위한 다이어트 해야”
먼저 법률계는 현재 게임 관련 정책이 획일적인 규제 중복으로 나타나는 점을 지적했다.
법무법인 한결의 박주민 변호사는 “현재 시행 중인 선택적·강제적 셧다운제나 추진되고 있는 쿨링오프제 모두가 청소년 이용가 등급을 받은 게임의 이용 시간을 다시 제한하는 것으로 규제 층위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나 중복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게임규제는 급변하는 사회 상황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보장해야 하는 게임산업의 특수성과 부합하지 않으며 부모의 양육권이나 청소년의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규제는 게임 사업자와 이용자가 구성하는 시민적 기구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타당하다”며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선진국은 게임산업 규제 주체가 국가가 아닌 시민사회이며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도 최근 자율규제로 전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만약 자율규제로의 전환이 단번에 곤란하다면 적어도 현행 규제제도의 중복성과 과잉성을 해결하기 위해 규제의 통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법무법인 정진의 이병찬 변호사도 “정부부처가 규제를 경쟁적으로 추진하기 앞서 연령대별, 시간대별, 게임종류별, 플랫폼별 게임 이용 실태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선행이 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게임은 문화, 산업 논리 탈출해야”…예술 영역 접목 시도 필요
게임 규제 개선에서 나아가 게임 자체를 문화로 바라보는 통합적 관점의 정책 지원 방안도 논의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권오태 연구원은 “그동안 게임 관련 정책은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게임 과몰입 예방·치료, 청소년 게임 이용시간 제한 등과 같이 매우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대책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동안 진행돼 온 모든 게임 정책이 의미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권 연구원은 ‘게임산업진흥 중장기계획’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으로 통합된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출범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물론 이러한 과제들 역시 적극적인 게임문화 확산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산업 활성화와 연계되는 것에 그쳤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 와중에도 게임리터러시 대한 교육 프로그램 강화, 게임문화총서 및 게임비평상 공모전 추진 등 문화진흥 지원정책이 나왔다”고 강조했다.
권 연구원은 이러한 일련의 성과를 바탕으로 더욱 다채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게임을 활용한 문화적 향유의 영역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넓다”며 “가령 ‘게임음악제’, ‘게임 영화제’ 등을 만드는 방식으로 게임문화와 일상의 접점을 넓혀가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도 “문화로서의 게임에 대한 연구 부재가 게임과 관련한 사회적 부정론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라면서 “게임 문화연구가 영화나 대중음악 연구에 준하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공격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예컨대 게임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교육, 게임 창작워크숍 등의 프로그램 개발, 학교 교과목 내 게임교육 편입, 게임을 주제로 한 공공문화기반시설 설립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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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혜준 부천문화재단 대표는 “게임, 만화, 방송 등 규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다양한 콘텐츠 영역이 문화적 연대를 이뤄 지속적인 토의를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한국사이버대학교 곽동수 교수는 “공장처럼 아이돌을 찍어내던 시대에 배출된 1세대 가수 이효리가 최근 다양한 사회 참여를 하는 행보에서 게임산업이 고민의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업계의 보다 적극적인 태도와 인식을 주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