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가 잇단 정부 규제에 멍들고 있다. ‘셧다운제’와 같은 콘텐츠 접근 제한 정책뿐 아니라 업계 수익을 기금화하자는 논의가 거듭 불거지고 있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쿨링오프제’ 등 게임 규제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게임중독기금 법제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 관계자는 “다양한 안을 협의 중이나 확정된 것은 없다”며 “내달 6일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내놓을 때 게임규제나 기금에 대한 내용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크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학교폭력과 게임의 인과관계는 물론 상관관계 또한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는데다 이미 업계가 자발적으로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의미로 기금을 조성해 게임문화재단을 설립했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인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자율이 존중되어야 하는 공헌사업을 제도화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은 성명을 통해 “정부가 정책실패를 오로지 문화산업에게만 전가해 책임을 면피하려고 한다”며 “무슨 일만 발생했다고 하면 문화산업을 들먹이고 남 탓을 하는 정부의 탁상행정에 참을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게임정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교과부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이미 시행 중인 셧다운제의 규제 영향과 실효성에 대한 평가도 하기 전에 새로운 게임 규제를 추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관계부처의 의견 청취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기금 조성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산업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재원을 마련한다면 민간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이 맞다”고 했다.
곽영진 문화부 1차관은 내달 1일 문화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힐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최관호 한국게임산업협회장도 참석한다.
문제는 이 같은 ‘때려잡기식 정책’이 계속 반복되고 있단 것이다. 지난해에는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과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이 각각 게임 관련 기금 조성을 추진했다. 당시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은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 반대 서명에 이어 입법에 참여한 국회의원 낙선 운동으로 번지기도 했다.
셧다운제와 같은 규제책은 기금을 강제 징수하려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게임 규제를 추진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청소년 보호지만 잇따라 기금 조성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결국 재원 확보가 목적 아니겠느냐”며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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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도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한 누리꾼(expen****)은 “게임이 만만해뵈는가보다. 지들 할 일 안하고 돈 뜯을 궁리만”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리꾼(agile****)은 “일진이 빽 믿고 삥 뜯는거랑 뭐가 달라”고 비아냥댔다. 지난해 게임 업체 매출 1% 강제 기금화 법안 반대 안건에 대해 온라인 서명을 진행했던 누리꾼(lifed****)도 서명활동을 재개했다.
한편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올해 정부와 정치권이 학부모들의 표심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교과부가 관련 규제를 추진할 경우 의원입법에 의존해야 한다”며 “선거철을 맞아 학부모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이 게임 규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