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20년, 뮤직 플레이어 20년

일반입력 :2012/04/10 12:48    수정: 2012/04/11 15:27

남혜현 기자

1992년을 빼놓고 대중음악의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 우피골드버그가 '오 해피 데이'를 불러 국내서도 영화 OST가 팔릴 수 있다는 걸 알린 '시스터액트'가 개봉한 그 해, '요시키 편' '히데 편'을 갈랐던 일본 록밴드 '엑스재팬'이 미국에 진출했던 그 해, '스텝바이스텝'의 뉴키즈온더블록이 한국을 방문했고, 공연을 보던 10대들이 집단 실신해 충격을 던졌던 그 해가 바로 1992년이다.

임진모씨가 나는 대중음악 평론가다를 선언한 것도, 영원한 청년 한대수가 몽골계 러시아인인 옥사나 알페로바를 만나 결혼한 것도, 본 조비가 '킵 더 페이스'로 복귀한 것도, 대중음악은 아니지만 저 유명한 '4분33초'를 작곡했던 우연성 음악의 대가 존 케이지가 눈을 감았던 것도 바로 1992년이다.

지금 30대는 기억하겠지만, 5인조 혼성 그룹 '잼'이 '난 멈추지 않는다'로 인기를 얻고, 강수지의 절대 경쟁자 하수빈이 '노노노노노'로 남심을 흔들고, 김건모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하고, 노이즈가 '너에게 원한 건'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고, 현진영이 '흐린기억속의 그대'로 히트치고, 신승훈이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심지어 원더걸스 소희가 태어난 해가 바로 1992년이다.

그리고 1992년 4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그 자체가 충격이었다. TV 화면 너머, 상표를 떼지 않은 옷을 입고 회오리 춤을 추며 난 알아요라고 한국어 랩을 하는 모습은 10대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데뷔 앨범은 첫 해에 170만장 가량 팔렸는데, 그 중 상당수는 '태지 오빠, 태지 형'의 노래를 듣기 위해 음반 가게에 달려간 10대가 구매한 것이었다. 10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워크맨이나 마이마이를 들고 다니며 카세트 테이프로 그들의 노래를 듣고 춤을 따라 췄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지 올해로 20년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 이후 '하여가'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 10대들에 메시지를 던지는 앨범을 매해 출시하며 무서운 인기를 누렸다. '하여가'가 담긴 2집은 국내서 처음으로 앨범 판매 200만장의 시대를 열었다. 서태지는 '문화 대통령'이란 칭호를 얻으며 밀리언셀러 황제가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던 10대들은 어느새 30대가 됐다. 물론, 세월이 지나서 들어도 서태지와아이들의 노래는 좋다. 가끔은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마치 10대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다.

주목할만한 점은 지난 20년간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듣게 한 휴대용 음악 재생기 역사도 함께했다는 점이다. 서태지가 그룹 활동을 하던 시절엔 워크맨이나 마이마이 같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대세였다. 이 시절엔,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녹음하려 카세트 플레이어에 공테이프를 넣고 좋아하는 음악을 기다리던 게 일상이던 때다.

서태지와아이들이 본격 해체를 선언했던 1996년은 휴대용 음악 재생기의 대세가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CD플레이어로 넘어가던 시점이다. 이 때는 소니, 아이와, 파나소닉 등 일본제 CD플레이어가 인기를 얻었다. CD는 한 때 전 세계적으로 2천억장이 넘게 팔리며 음악 재생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카세트 테이프보다 음질이 좋고, 많이 재생해도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인기의 요인이었다.

서태지가 솔로 음반을 발표했던 1998년은 CD플레이어의 숙명적 경쟁자가 국내서 첫 선을 보인 해기도 하다. 1998년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정보통신박람회에서 새한정보통신이 국산 MP3플레이어인 '엠피맨10'을 공개했다.

이후 국내선 아이리버, 코원 등 중소업체들이 디자인과 기술력을 앞세워 MP3플레이어 시장을 선도했다.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으면서 MP3플레이어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커졌다. 애플이 밝힌 아이팟 판매량은 지난해 기준 2억7천500만대다. 그만큼 MP3플레이어의 인기는 날로 늘었다. 용량만 된다면, 원하는 곡을 무한전 조그마한 단말기에 넣어 다닐 수 있다는 점이 큰 호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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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성장한 MP3플레이어 시장은 그만큼 빠르게 저물었다. 서태지 싱글 앨범이 나온 2008년은, 미국서 아이폰 3G가 나온 해다. 아이폰은 2009년 한국에 상륙하며 스마트폰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사람들은 MP3플레이어를 별도 구매하기보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지난 20년간, 세대는 변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올해 20주년을 맞아 음반제작사 예당컴퍼니는 서태지와 차기 신보 발매시 음반 유통의 우선 협상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기간 서태지의 음악을 듣는 통로는 달라졌다. 카세트에서 CD로, CD에서 MP3플레이어로, 다시 스마트폰까지. 서태지 30주년을 기념하는 2022년에는 또 어떤 음악 플레이어가 등장할지 두고 봐야 할 일이다.